[SS인터뷰] ‘사도’ 이준익 감독 “변질되느냐 변화하느냐”
[SS인터뷰] ‘사도’ 이준익 감독 “변질되느냐 변화하느냐”
  • 승인 2015.09.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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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인터뷰] 영화 ‘사도’, 이준익 감독 “변질되느냐 변화하느냐”

이준익 감독이 변한 건 ‘소원’부터다. 과감함이 주는 새로움에서 진지함이 주는 묵직함을 택했다. ‘소원’에서 이준익 감독은 아픔을 들추거나 상상력을 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전했고, 가족을 향한 배려가 담긴 따스한 손길로 현상을 그렸다. 그런 그가 차기작으로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택했다. 이준익 감독은 250년 전 조선왕조사의 비극인 임오화변의 인과관계를 정치가 아닌 가족의 이야기로 바라봤다.

“‘사도’, 시간을 살리는 세이빙타임 영화”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속된 말로 ‘단물 빠진’ 이야기다. 그만큼 오랜 기간 드라마를 통해 다뤄진 이야기고 많은 사람에게 공부된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익 감독은 ‘사도’를 선택했다. 팩트가 90%이라고 말할 정도로 상상력은 개입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장르는 재미를 우선해 관객들과 만난다. 이준익 감독 역시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사도’를 그리는 것은 그에게 사명이었다.

“영화를 찍다 보니 재미도 중요하지만, 의미가 더 중요할 수 있는 소재들이 있다. 영조, 사도, 정조에 걸친 56년 3대에 걸친 이야기를 2시간에 담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선택이다. 하지만 관점이 분명하다면 위험하지만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사도’는 ‘그들에게는 비극이었으나 후대에 살아있는 우리에게는 그 비극이 유가치한 의미로 남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의미를 승화시켜야한다’라는 관점으로 시작했다.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다 보면 둘 다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이를 앎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킬링타임(Killing Time) 영화, 재미있는 영화는 킬링타임 영화라 한다. 워낙 재미있어서 시간이 죽어 없어진 거다. 반대로 의미를 추구하는 영화는 세이빙타임(Saving Time) 영화라고 한다. 시간을 살리는 거다. 영화를 보는 동안 수많은 생각을 하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의미에 대해 되새김질한다. 영조, 사도, 정조에 이르는 비극의 대서사를 킬링타임으로 찍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후손인 우리, 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변질되느냐 변화하느냐”

‘사도’는 이준익 감독 이전까지 그려온 사극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황산벌’과 ‘왕의 남자’로 이어지는 이준익 감독의 사극에는 현상을 뒤트는 위트가 있었다. 이준익 감독이 던지는 변화구는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미트에 꽂혔고 흥행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평양성’이라는 자기복제를 낳고 은퇴 선언까지 하며 위기가 찾아왔다.

“사람은 결국 변한다. 변하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 변질되느냐 변화되느냐. 이전 사극들에는 퓨전, 팩션 등 상당히 과감한 시도를 했다. 대표적으로 ‘황산벌’, ‘왕의 남자’ 등인데 과감함이 주는 새로움도 있지만 진지함이 주는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 사도라는 소재는 자칫 진지해지려다 진부해줄 수 있는 소재다. 그래도 진부함을 진지함으로 전달하는 것이 갈 길이라 생각했다. ‘변질이 아닌 변화를 통해 진지해 보자’는 생각이 전작 ‘소원’부터 시작된 것 같다. ‘소원’의 연장 선상을 가되 사극이라는 장르 안에서 구현하고 싶었던 바람이 있었다.”

이준익 감독의 말마따나 그는 변화했고 ‘소원’을 통해 변화구가 아닌 묵직한 돌직구를 던졌다. ‘소원’과 ‘사도’로 이어지는 변화 속에서 감독은 불필요한 상상을 덜어내고 가족이라는 가치를 담았다.

“모든 인간이 가정에서 태어나고 길러지다 사회라는 더 큰 단위의 공동체로 진입한다. 집을 떠나 먼 길을 돌아다니다 50대가 넘어가면 ‘내가 언제 이렇게 멀리 왔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멀리 온 것 같은데 왜 여전히 제자리지?’라는 생각이 든다. ‘소원’과 ‘사도’는 멀리 왔음에도 제자리이며 그 자리는 결국 내가 태어나고 길러진 가족이라는 것, 그 본질을 조금 알게 된 지금 50대의 내 모습이다. 과연 60대가 되면 어떻게 변화할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적어도 변질되진 말아야지.”

   
 

“‘사극의 어투’라는 허상과 고정관념 벗었다”

정공법으로 그린 ‘사도’에서 뜻밖에 관객들에게 웃음을 안긴 장면이 있다. 영조의 말투와 행동이다. 영화 속 영조는 어린 사도에게 ‘너 일 년 중에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몇 번이나 드니?’ 등과 같은 현대어를 구사한다. 관객들은 영조의 모습을 보며 공부에 소홀한 아들을 타박하는 답답한 여느 아버지의 모습을 투영하며 웃음을 터트린다. 전통 사극을 표방하는 ‘사도’에서 현대어는 자칫 잘못하면 집중을 흩트릴 수 있는 모험이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오히려 ‘전통 사극’, ‘사극의 어투’라는 허상을 거둬낸 결과라 말한다.

“사실 찍으면서 관개들이 웃을 거란 생각을 못 했다. 이미 전작들에서 그런 시도는 많았다. ‘황산벌’에서는 심지어 왕이 사투리는 물론이며 욕을 한다. 왕은 신분이지 왕도 결국 인간이다. 인간이 가진 원초적 근성을 어떤 격식에 가두지 않고 그냥 표현하는 건 그전부터 과격하게 해왔다. ‘왕의 남자’도 마찬가지다. 광대랑 놀아나는 왕의 행위를 보면 이건 뭐 동네 망나니다. 그런 영화에 비해 ‘사도’는 상당히 온건한 영화다. ‘사극의 어투’라는 것은 허상이다. 오랫동안 틀에 박힌 전형을 사극의 양식화라고 단정 지어 전제로 하는 것은 오류일 수 있다. 사도의 대사는 그런 생각에서 나온 것들이지 현장에서 ‘여기선 현대어로 웃겨줘야지’라는 생각은 배우나 나나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다.”

   
 

“비극은 정화되고 승화해야 한다”

‘사도’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날부터 숨을 거두는 날까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비극이 시작된 원인과 과정을 파헤친다.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오며 8일의 기록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하지만 영화는 끝이 아니다. 영조와 사도 모두 죽고 난 후, 살아남은 정조의 기록은 사족일까? 비극은 비극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것이 이준익 감독의 생각이다.

“‘사도’라는 소재가 지닌 가치는 의미를 향해야 한다. 최근 영화는 재미를 추구하는데 극한을 가고 있어 감독으로선 불리한 선택을 했다. 상업적으로 불리하더라고 사도 이야기를 상업적 도구로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있던 실화고 그분들이 살아있는 동안 그렇게 처절하고 치열하게 살았는데 재미만 추구할 순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애통과 할아버지와의 지켜야 할 의리 사이에서 분리된 삶을 살았던 정조라는 인물을 짧게나마 표현해야 했다. 사도의 비극을, 오열하며 힘들어하던 장면을 정조는 춤으로 승화시켰다. 비극에 머물러 있으며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면 또다시 비극을 낳는다. 엄청난 비극이 두 번 다시 재연되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정화해서 승화해야 한다. 그 장면이 길다는 사람이 20% 정도 되는 것 같다. 그 신의 의미에 동의하시는 80%에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 동의하시지 못하는 분들에겐 ‘죄송합니다. 사과합니다’라는 말 외엔 할 말이 없다.”

   
 

‘베테랑’과 ‘암살’이 쌍천만을 넘어 1200만 관객 수를 돌파했다. 한국영화의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16일 ‘사도’가 개봉했고 이어 ‘서부전선’과 ‘탐정: 더 비기닝’이 개봉한다. 인터뷰 말미에 이준익 감독은 “풍성한 추석처럼 풍성한 영화들이 관객들과 만나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영화인이 같은 마음이다”라며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시간 많으니 고스톱 치는 시간에 한 편 더 봤으면 좋겠다는 게 내 마음이다”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50대 이준익 감독의 변화는 따뜻함이 묻어있었다.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영화 ‘사도’ 이준익 감독 인터뷰 / 사진 = 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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