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허삼관' 연기파 배우 하정우가 신인 감독 하정우를 만났을 때
[SS인터뷰] '허삼관' 연기파 배우 하정우가 신인 감독 하정우를 만났을 때
  • 승인 2015.01.2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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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TV 김나라 기자] “‘허삼관’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동안 활동하며 무감각해졌던 것들이 다시 살아났다”

지금의 충무로 대표 연기자가 되기까지 하정우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시절 연극 무대를 거쳐 2002년 본격 연예계 입성 후 주·조연을 막론하고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 연기에 매진하며 쉴 틈 없이 달려왔다. 필모그래피에 올린 작품 수는 출연 예정작까지 더하면 무려 39. 다작 행보로 관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해온 배우 하정우가 최근 영화인으로서 게을러졌음을 고백했다.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이 경우 흔히 공백기로 이어지는 것과 달리 ‘감독’으로 눈길을 돌렸다. 못 말리는 천상 영화인이다. 쉼표 대신 터닝포인트를 찍고 돌아온 배우이자 감독 하정우를 ‘허삼관’ 개봉 이틀 전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 '허삼관'에서 연출과 주인공 허삼관 역을 맡은 하정우

신인 감독과 베테랑 연기자, 신구 조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허삼관’은 가진 것 없는 남자 허삼관(하정우 분)이 마을 최고 절세미녀 허옥란(하지원 분)과 결혼한 뒤 11년 동안 남의 자식을 키우고 있었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 하정우, 역시 믿고 보는 연기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배우 하정우와 ‘허삼관’의 인연은 2011년부터 시작됐다. 16년 전 중국 소설가 위화의 대표작 ‘허삼관 매혈기’ 판권을 획득한 영화제작사 두타연 안동규 대표가 하정우를 남자주인공 허삼관 역으로 눈여겨 본 것이다. 한평생 피를 팔아 가족을 위기에서 구하는 아버지 허삼관. ‘부성애’를 총각 하정우가 선뜻 도전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터. 결국 당시 34세 하정우는 “나이가 어려 못할 것 같다”며 캐스팅 제안을 거절한다.

“‘허삼관 매혈기’ 판권을 산 대표님이 그동안 판권계약을 세 번 연장했다고 들었어요. 그분한테는 일 년, 일 년이 애가 탔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애 아빠 연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거절의사를 전했죠. 이후 계약 만료가 임박해 오면서 마지막 제안이라는 말에 1년 뒤인 37세 때를 약속했어요. 한 살이라도 더 나이를 먹어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주름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연기에 유리하니까. 하지만 당시 ‘하겠다’라고 결정했다기보다는 그렇다면 한번 도전을 해보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아마 판권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는 마흔 살 하정우가 연기하는 허삼관을 만났을 것이다. “어른의 시작”이라고 표현한 마흔의 허삼관 연기가 물론, 더없이 기대되지만 특유의 유머 코드를 연기 내공과 버무려 독보적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스포트라이트가 ‘인기 원작’ ‘감독 차기작’에만 집중된 것 같아 아쉬움이 들 정도다. 그간 살인마, 조직 보스, 비밀요원 등 남성적 역할로 스크린을 압도한 하정우는 ‘탈 가부장적 아버지’라는 새 옷을 위화감 없이 소화,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영화에서 아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대화하는 게 좋았어요. 부모 자식 간에 대화만큼 좋은 게 없는 거 같아요. 대화하다 보면 뭔가 서로 상처 주는 말도 분명 많이 하겠죠. 그런데 얘기 할수록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지금 처한 고민을 알게 되면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될 거라 생각해요. 영원히 배신하지 않는 친구 말이에요. 그래서 허삼관의 모습이 참 좋았나 봐요.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아니라 남자 대 남자로서 얘기를 나누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러고 보면 하정우와 허삼관은 ‘화려한 말빨’부터 독특한 매력까지 닮은 구석이 많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아닌 척하지만 마음 깊숙한 데는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인물”이라고 허삼관을 소개하는 모습이 자신을 가리키는 듯하다.

“저희 집안은 아들만 둘인데 굉장히 무뚝뚝해요. 마음은 그렇지가 않은데 낯간지러워서 표현이 잘 안되더라고요. 근데 제가 부모입장이 됐을 때 저나 동생처럼 무뚝뚝한 자식이 있으면 되게 심심할 거 같아요. 그래서 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아들 둘, 딸 둘을 계획하고 있어요. (미래의 아내를) 잘 설득해서 자식을 많이 낳고 싶어요(웃음). 그러려면 앞으로 더 열심히 벌어야겠죠.”

   
 

◆ 신인감독 하정우, 믿고 볼 수 있을 때까지 '도전'

본인 스스로도 “신인 감독 하정우는 배우 하정우에게 빚을 졌다”고 표현할 만큼 감독 데뷔 약 2년 여 만에 대작을 선보였다. 7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데뷔작 ‘롤러코스터’(2013)에서  70억원을 들인 ‘허삼관’으로 관객과 만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족한 경험 등 감독으로서 빈공간은 10배 그 이상의 열정과 노력으로 채웠다.

“머릿속에 든 생각들은 다 시도해봤던 거 같아요. 시나리오 작업한 버전이 11가지 정도 되는데 그 사이사이 계속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마음을 흔들었던 아이디어는 다 적용해봤어요. 예를 들어 중간에 등장하는 장면이 마지막신이 되는 시나리오도 있었고, 한 장면을 두고 삭제하거나 다시 추가하는 등 이길 저길 다 갔다와봤죠. 시나리오 회의를 정말 많이 했어요. 이렇게 심도 있게 고민해보니까 아주 흐릿하게나마 어떤 객관성이 생기더라고요.”

크랭크 인 4개월 전부터 세밀한 리허설을 진행했다. 이 과정을 통해 하정우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는데 있어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는 “만드는 사람들끼리 의견을 주고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은 시나리오, 오래 쓰고 고민 할수록 좋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소설을 시나리오로 옮겨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설에서 재밌는 장면이 영화적으로 표현 됐을 때는 감흥이 떨어지는 등 정말 달랐다.

“상업영화 러닝타임 안에서 원작 전체를 다 담아내는 게 참 많이 힘들었던 부분이었어요. 정말 아쉬웠던 점은 소설에서 심장부와 같은 장면을 영화적 재미를 위해 도려내야 했던 거예요. 두 편 분량을 한 편에 담기 위해 문화혁명 부분을 과감하게 쳐냈죠. 영화에서는 허삼관과 허옥란이 11년밖에 점프를 못했는데 마음 같아서는 노인이 된 허삼관도 보여주고 싶었지만 불가능했어요.”

   
 

‘병맛 코드’를 어떻게 보편화 시킬 수 있을까. 이는 앞으로가 기대되는 하정우 감독의 숙제다. ‘허삼관’ 역시 전작 ‘롤러코스터’처럼 ‘병맛 코드’가 녹아들어 있기는 하지만 상업영화 범주 안에 담아냈다. 하정우 감독은 자신의 ‘병맛 코드’를 관객들이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강약조절을 하는 센스를 발휘했다.

하 감독은 블랙코미디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 삶 자체가 블랙코미디라 볼 수 있다. 자신한테는 상처인데 남한테는 웃음이 될 수도 있는 등 다른 시각으로 보일 수 있지 않으냐. 이건 아마도 감정과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 배우의 삶과도 연관되는 거 같다. 찰리 채플린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이런 감정들이 내 안에 자리 잡힌 듯 하다”고 말했다.

“‘롤러코스터’도 그렇고 이번 ‘허삼관’도 그렇고 블랙코미디 느낌들을 부각하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부각됐네요. ‘허삼관’ 후반에는 이런 코드가 많았는데 마지막에 편집하면서 조금 더 드라마틱하게 보이도록 했어요. ‘허삼관 매혈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분명 아쉬움이 남을 거예요. 영화만의 허삼관, 캐릭터들로 원작과 분리해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영화에서 굳이 만족감을 찾는다면 소설에서 만난 허삼관 가족과 주변 인물들이 영상으로 구현되는 점. 그 정도로만 봐주시면 감사해요. 아쉽더라도 그래도 즐겁게 재밌게 봐주시길 당부와 부탁 말씀드려요.”

   
 

2015년 을미년 포문을 ‘허삼관’으로 연 하정우는 “영화인으로서 살아가는 부분에 환기가 된 경험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당분간 하 감독은 충전의 시간을 갖지만 하 배우는 이 기세를 몰아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 ‘아가씨’(감독 박찬욱) 두 작품에 연달아 참여한다. ‘어른의 시작’(마흔 살)을 맞이할 때가 다가와서인지 영화인 하정우는 눈부신 성장을 보이며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의 중심에 서 있다.

사진= 고대현 기자, '허삼관'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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