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카트' 염정아, 동탄 아줌마의 아주 특별한 외출
[SS인터뷰] '카트' 염정아, 동탄 아줌마의 아주 특별한 외출
  • 승인 2014.11.1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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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TV l 김나라 기자] “저 생활비 벌러 나와요, 반찬값 아니고”라고 호소하는 배우 염정아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데뷔 이후 처음 시도한 생활밀착형 연기가 ‘카트’에서 여과 없이 드러났다.

13일 개봉된 영화 ‘카트’(부지영 감독)는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부당해고를 당한 이후 이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상업 영화계에서는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슈에 국한되지 않고 너와 나의 이야기, ‘우리’를 떠올리게 하는 전개로 공감을 이끌어 내면서 시사회 이후 호평세례를 받았다.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염정아는 ‘카트’ 속 조합원으로 활약한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다시 화려한 여배우의 자태로 돌아왔지만 왠지 모를 기분 좋은 내면의 변화가 느껴진다.

   
 

◆ 생활이 녹아있는 영화 '카트'… 오버 금물!

“‘카트’ 시나리오를 엄청 재밌게 읽었는데 영화에서도 같은 감동을 느꼈어요. 스크린으로 잘 옮겨진 거 같아요. 부담감이요? 있었더라면 출연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오히려 요즘 들어 그런 질문을 많이 받으면서 ‘부담스럽게 보일 수 있는 영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상업 영화 최초 비정규직 타이틀은 인기 아이돌그룹 엑소 멤버 도경수(디오) 캐스팅 소식보다 화두로 떠올랐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 이랜드 계열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당해고 투쟁을 밑바탕으로 그려 자연스럽게 ‘사회고발성 영화’라는 장르가 떠오르지만 염정아를 비롯, 출연진과 부 감독은 한 목소리로 “과하지 않게 표현했다”고 자신하며 ‘상업영화’임을 강조했다.

염정아는 ‘카트’에 대해 “비정규직 얘기를 담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 얘기를 다뤄 실제 있을 법한 일처럼 생활이 녹아있는 영화다. 이게 ‘카트’가 가진 장점”이라고 전했다. 영화를 관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설명이다.

   
▲ 염정아 주연 '카트' 한 장면.

“소재를 떠나 그냥 단순히 이야기가 주는 힘 때문에 하고 싶었어요. 선희라는 인물의 성장과정이 오버스럽지 않게 잔잔하게 와 닿았죠. 서로 같은 직장에서 일하지만 옆 계산대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어떻게 보면 삭막하게 느껴지는 현실에서 진짜 동료가 되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아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게 감동이잖아요. 또 안 해본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물론 있었고요. 남편은 제가 이 작품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거에 칭찬해주더라고요. 예쁜 역할만 고집하지 않는, 진짜 연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읽어 준 듯해요.”

화려한 외모 탓에 어떤 여배우보다도 ‘예쁜’ 역할이 잘 어울리는 염정아는 ‘카트’에서 두 아이의 엄마이자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선희 역을 맡았다. 그는 톱스타(내사랑 나비부인), 재벌가 며느리(로열패밀리) 면모는 온데 간데없이 대한민국 보통 아줌마로서 드라마틱한 성장을 보여준다.

“선희의 성장과정이 과하지 않게 표현돼야만 관객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해서 절대 오버하지 않고 연기하려 처음부터 노력했어요. 이 캐릭터를 쭉 가지고 감정을 연결해야 한다는 게 촬영할 때마다 숙제로 남았죠. 그래도 다행히 몇 개월 동안 집, 세트장만 왔다갔다하며 지내 온전히 선희로 살 수 있었어요. 다른 생활이 없어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던 힘이에요. 촬영도 거의 대본 순으로 진행돼 크게 도움이 됐죠. 안 그랬으면 아마 복잡해서 머리가 터졌을 거예요(웃음).”

   
 

◆ 민낯에 기미까지? 염정아 도시적 이미지 과감하게 던져… “배우로서 밉지 않다”

혹여 억지로 캐릭터를 꾸미게 될까 봐 우려돼 촬영 전 다큐멘터리 등 관련 자료를 참고하지도 않았다. 이는 선희에게서 나 자신을 보는 듯한 착각 혹은 엄마, 이웃의 얼굴이 아른거릴 수 있었던 이유로 생각된다. 연기는 대본에 충실했다면 겉모습은 철저히 억지로 꾸며냈다. 미스코리아 선 출신으로서 자타공인 축복받은 외모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사실 기존 염정아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삶에 찌든 아줌마 선희는 도저히 매치가 되질 않는다.

“원래 마트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단정하고 화장도 예쁘게 하고 계시는데 저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하면 기존 이미지를 도저히 벗어나기 힘들 거 같아서 앞머리도 순해보이게 자르고 그냥 아줌마 파마를 한 뒤 전혀 손질을 안했어요. 이런 얘기를 워낙 많이 들어 저도 제가 차갑게 생긴 걸 알고 있는데 도시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하면 순화시킬 수 있을까 해서 외적인 변화를 줬죠. 연기로만 커버하기 힘든 것들이 있잖아요. 제가 아무리 연기를 잘했다 해도 겉으로 보이는 것들이 역할에 맡게 안 받쳐 주면 느낌이 영 안 나요.”

염정아는 화장할 시간에 분칠하는 대신 기미를 그렸다. 그저 연기자로서 최선을 다해 열연하는 데 의의를 둘 뿐, 대형 스크린화면 속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치든 개의치 않는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투쟁신에서 물대포를 맞은 그의 몰골은 ‘헉’ 소리가 나올 정도지만 염정아는 연신 “괜찮아요”라고 답하며 “망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현실적인 연기?”라고 너스레를 떤다.

“너무 못나게 나와도 괜찮아요. 얼굴이 못생기게 나오기는 했지만 배우로서 미워 보이지는 않는걸요. 작은 부상도 빈번하고 추위로 고생도 하고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카트’는 저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었어요. 저도 무심히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던 일들이 있을 테고 반대로 상대방이 나쁜 의도로 그런 게 아니라 해도 제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사람을 대할 때 말 한마디 따뜻하게 건네는 게 잘 안되지만 누구나 다 이런 입장이 되니까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많이 하게 됐어요.”

   
 

◆ 염정아 무려 25년째 비정규직 종사 ‘굵고 길게 가는 여배우’

비정규직 계산원 선희는 입사 후 5년간 연장 근무도 마다치 않고 무(無)벌점을 자랑하며 성실하게 일했지만 정직원 전환을 눈앞에 두고 일방적인 계약해지 통보를 받는다. 배우 염정아 역시 작품을 앞에 두고 캐스팅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등 비정규직으로서 ‘갑질’에 휘둘리기도 하며 을의 설움을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캐스팅 탈락하는 거는 비일비재한 일들이에요. 기분 나쁘지만 어쩌겠어요. 제가 갑이 아닌데(웃음). 하지만 워낙 금방 잘 잊어버리는 스타일이라 몇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요. 힘든 걸 힘들게 안 받아들이고 좋게 생각하고 잘 참는 편이기도 하고요. 연예계 생활을 오래 하면서 터득한 저만의 노하우죠. 신경 써봐야 저만 손해니까 그럴 필요 없어요.”

‘카트’에서 25년 연기내공이 돋보였지만 처음 맡아본 역할인지라 아쉬움도 크다. 의미 있는 도전을 마친 염정아는 “영화 보신 이후에는 선희 같은 연기를 제안하시는 분들이 있었으면”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스펙트럼을 넓힐 기회가 더 많아지는 거니까 좋아요. 늘 보면 제가 원하는 역할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차기작 계획은 아직 없지만 ‘카트’가 선물처럼 왔듯이 또 다른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있을 거예요.”

   
 

◆ 염정아의 이중생활… 여배우 vs 동탄 아줌마

2006년 정형외과 전문의 허일 씨와 결혼한 염정아는 슬하에 일곱 살 딸과 여섯 살 아들을 두고 있다. 품절녀 대열에 합류한 이후 ‘동탄 아줌마’ ‘워킹맘’(일하는 엄마를 자칭하여 부르는 말)으로 통한다. 거주 중인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서 거리낌 없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면서 동탄 주민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동탄 아줌마와 배우 사이에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욕심쟁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제가 정말 필요 이상으로 일일이 다 신경 써주면서 손을 많이 대고 있어요.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한테 부족하게 해줬다고 느끼는 건 없어요. 아이들도 제가 TV에 나오는 연기자라는 걸 알고는 있는데 별 관심은 안 가져줘요. 오히려 딸 친구들이 ‘저 이모 TV에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과정에서 나름의 고충도 겪었다. 촬영 초반에는 완벽하게 역할 분리가 안 돼 혼란스러워했지만 방법을 터득하면서 이제는 이 생활이 자연스럽다. 그는 “다른 방법은 없고 마인드컨트롤 할 수밖에 없어요. 제가 역할을 끌어안고 집에 간다 해도 공감대 형성이 안 되니까 ‘엄마 왜 그래’라며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걸요. 가끔은 섭섭할 때도 있는데 이걸 식구들한테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예전처럼 활발하게 활동하고 차기작을 기다리고 이런 상황이 아니라 요즘은 더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거 같아요. 이제 한 작품 끝났으니까 저는 다시 동탄 아줌마로 돌아갑니다. 오늘도 인터뷰 마치면 바로 집으로 가서 엄마 생활을 해야죠(웃음).”

SSTV 김나라 기자 sstvpress@naver.com

사진 = 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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