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연가시’ 문정희 “아름답게 살다간 사람으로 기억되고파”
[SS인터뷰] ‘연가시’ 문정희 “아름답게 살다간 사람으로 기억되고파”
  • 승인 2012.07.0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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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역할이 그립다는 문정희 ⓒ SSTV 고대현 기자

[SSTV l 유수경 기자] 착하다. 아니, 착해도 너무 착해서 답답할 정도다. 경순은 그랬다. 남편이 재산을 다 탕진해도, 집에 와서 갖은 짜증을 부려도 순순히 받아들인다. 늘 일에 짓눌려있는 남편을 좀 도와보겠다고 “나가서 일이라도 할까” 물었다가 된통 꾸중만 듣는다. 버럭, 호통을 치는 남편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그냥 돌아선다.

바야흐로 2012년이다. 시대가 어느 땐데, 이런 가부장적인 남편이 아직도 있다니. 그걸 다 받아주는 아내가 있다니? 영화 ‘연가시’(감독 박정우) 경순을 연기한 문정희를 만나 이같은 얘기들을 쏟아냈더니 예의 그 착한 눈빛으로 기자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는다.

“기자님, 결혼 안 하셨죠?”

그렇다고 하자 문정희는 “결혼을 해서 살아보면 생각이 좀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경순은 착한 게 아니라 그냥 현실인 것 같아요. 속은 오죽하겠어요. 남편이라는 존재가 밖에서 가족들 먹여 살리고 잘 해보려고 한 거지, 상습적으로 도박을 한 것도 아니고. 그거 다 아는 와이프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라’고 남편이 말할 때 뭐랄까…. 동정? 연민? 불쌍함으로 출발한 거죠. 가여워 보이더라고요. 만약 남편이 아니라 엄마가 그랬다고 생각해보세요. 분명히 짜증은 나지만 이해가 되거든요. 물론 캐릭터를 극대화시키려고 장치적으로 설정한 면도 있겠지만요.”

   
첫사랑 역할이 그립다는 문정희 ⓒ SSTV 고대현 기자

◆ ‘첫사랑’ 역할 그리워

조곤조곤한 말투로 경순의 입장을 대변하는 문정희의 말을 듣고 보니 왠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참 여성스럽고 단아하다. 그런데 문정희는 한 남자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다. 지난해 방송된 KBS 2TV ‘사랑을 믿어요’ 속 영희 캐릭터가 지나치게 셌나보다. 그런데 이번에 또, 엄마이자 아내다. 게다가 너무 수수한.

“예뻐야 할 역이면 살렸겠지만 이 캐릭터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면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어차피 얼굴로 승부하는 배우는 아니니까요. 예쁜 걸로 어필을 하면 재수 없을 수도 있죠.(웃음) 갭을 줄이고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역이면 친근하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겸손한 발언이다. 사실 문정희는 실물이 훨씬 예쁜 여배우 중 하나다. 많은 이들이 그를 직접 만나보면 깜짝 놀란다. 하지만 배우에게는 그렇게 좋은 칭찬만은 아니란다. 스크린에서도 좀 더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것이 모든 여배우의 소망일테니. 그에게 지난 2006년 히트했던 드라마 ‘연애시대’ 얘기를 꺼냈다. 당시 감우성의 첫사랑으로 출연했던 이가 바로 문정희다.

“‘연애시대’에서 첫사랑 역할 그립죠. 그런 역할을 또 하고 싶고. 기회가 되면 반드시 어필할게요.(웃음) 사실 전 팜므파탈 역할도 하고 싶어요. 너무 지고지순한, 혹은 억척스러운 아내 이미지가 강한 것 같아서 아쉬운 점도 있고요. 그렇지만 과거에 한 역할들을 후회하진 않아요. 언젠가 또 로맨틱한 역할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연애시대’는 최근에 다시 봤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작품 자체가 워낙 좋았으니까요.”

   
첫사랑 역할이 그립다는 문정희 ⓒ SSTV 고대현 기자

◆ 목소리 좋다고? 원래는 ‘콤플렉스’

잠시 회상에 잠긴 문정희의 눈빛에 애틋함이 스며있었다. 그는 이번 영화 ‘연가시’에서 변종 연가시에 감염돼 발작도 하고, 정수기 생수통을 벌컥벌컥 들이키는가 하면, 감염자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기도 한다. 감독이 좀 원망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감독님과 저는 ‘9년 지기’죠. 이번이 (함께하는) 세 번째 작품이니까요.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신인이었고 성실함밖에 보여드릴 게 없었어요. (이)성재 오빠랑 정말 열심히 춤추고 안무를 짰죠.(그는 2004년 영화 ‘바람의 전설’에 출연했다) ‘쏜다’ 때도 그런 의리로 만났고요. 세 번째 작품에 또 불러 준 건 감독님이 저에 대한 애정과 신뢰, 그런 것들이 복합돼 있다는 건데, 그렇게 믿어주고 찾아준 감독에게 우는 소리를 못 하겠더라고요. 감독님만큼 저도 너무 절실했어요. 좋은 그림이 나오는 게 최우선의 목표였죠.”

'집에 오니까 무릎이 새까맣더라'며 웃는 문정희에게서 연기에 대한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졌다. 가녀린 체구와 한없이 여성스러운 외모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신기하다고 하자, “여성스러워 보이냐”고 되물으며 “목소리도 그렇고 약간 중성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제 말투나 목소리가 좀 특이한가 봐요. 고등학교 때는 (목소리가) ‘좋다’ ‘매력 있다’ 그런 긍정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엄마는 ‘목소리를 예쁘게 좀 내라’고 늘 말씀하셨죠. 제가 듣기엔 엄마도 하이톤은 아닌데 말이에요.(웃음) 낮은 목소리가 저는 독특하거나 좋다거나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의외로 ‘연애시대’ 하고나서 목소리 좋다는 얘기를 들어서 신기했어요. 원래는 콤플렉스에 가까웠거든요.”

   
첫사랑 역할이 그립다는 문정희 ⓒ SSTV 고대현 기자

◆ 별거 아닌게 별게 되는 인생

‘목소리’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고백한 문정희에게는 배우 외에도 또 다른 꿈이 하나 있다. 바로 ‘보이스 트레이너’다.

“사실 배우들에게도 보이스 트레이너가 필요하거든요. 음성을 캐릭터와 잘 결합시키기 위한 트레이닝인데 우리나라는 활성화돼있지 않아요. 그런 게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면 김명민 선배도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를 연기할 때와 ‘연가시’ 속 재혁이를 연기할 때가 대사 톤이 전혀 다르거든요. 배우가 스스로 고민과 계산을 해서 조절할 수도 있지만 같이 만들어가는 그런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보이스 트레이닝 공부를 위해) 프랑스에도 다녀왔는데 언어가 다르니 적용이 힘들더라고요.”

배우 겸 ‘보이스 트레이너’를 꿈꾸는 문정희. 그에게는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가 하나 있다.

“저는 사람으로 잘 지키고 있어야 죽을 때 행복한 것 같아요. 어떤 역할에서 비굴하거나 초라하거나 그런 거보다 문정희라는 사람으로 ‘후회없어. 난 아름다웠어’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누구의 아내로 배우로 매이는 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잘 살았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따지고 보면 배우도 별거 아닌 거 같아요. 저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일들이 생각해보면 별게 아니죠. 그런데 또 그 별거 아닌 것이 인생에서는 별거인거예요. 그래서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요. 좀 추상적인가요? 하하.”

문정희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삼청동 골목의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손 안에 꽉 쥐어진 그의 명함처럼 마음 속이 문정희의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꽉 채워져 벅찬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 한 시간의 인터뷰가 인생에서 ‘별거’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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