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상담소' 트렌스젠더 풍자 "母 극단적 선택→父 성전환 사실에 칼 들고 대치"
'금쪽상담소' 트렌스젠더 풍자 "母 극단적 선택→父 성전환 사실에 칼 들고 대치"
  • 승인 2022.07.0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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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방송캡처
사진=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방송캡처

크리에이터 풍자(본명 윤보미)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리며 오열했다.

1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는 트랜스젠더 유튜버로 잘 알려진 풍자가 출연했다.

풍자는 하루에 커피를 무려 2L씩 마실 만큼 워커홀릭으로 살고 있었다. 그는 "인공관절 수술과 성전환 수술을 받으면서도 무통주사를 맞지 않았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헤롱헤롱 한다는 게 싫었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일에 대한 답장을 다 보냈다"고 심각한 일 중독임을 밝혔다.

트랜스젠더로서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서는 "술 취한 여성과 화장실과 만난 적이 있다. 나를 변기로 끌고 가더니 같은 여자니까 서로 보여달라고 하더라. 너무 궁금하다고. 갑자기 가슴을 만졌다"며 "더 깊게 들어가면 모양이나 기능을 정말 서슴지 않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너무 많이 봤다. 나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비밀이 없어야하는 사람이다. 생식기나 몸의 중요한 부분을 우리는 궁금하니 말해줄 의무가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나는 사람으로서 중요한, 지켜야 할 부분이 없어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풍자는 또 자신을 향한 악플에도 의연하게 대처했다. 그는 "'너는 여자로 살겠다는 애가 왜 목소리가 그래. 뚱뚱해'라고 한다. 저는 이 말씀을 해주는 분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바비인형으로 살고 싶은 게 아니라 여자로 살고 싶은 사람'이라고 한다. 키가 작은 여성도 있고 큰 여성도 있고 덩치가 있으신 분들도 있고 마른 분들도 있지 않나"는 소신을 전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가족과 멀어져야하는 아픔을 겪어야했다. 그는 "성 정체성에 대한 커밍아웃을 총 세 번 해야했다. 첫 번째 커밍아웃은 본의 아니게 지인에게 아빠가 전해 들으셨다. 그때는 '얘가 왜 이러냐'며 대수롭지 않아 하셨다. 두 번째로 했을 때는 아버지가 너무 많이 우셨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너한테 병이 생겼나 보다' 하신 거다. 아들이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으니까 고쳐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커밍아웃 때는 상황이 달랐다고 했다. 풍자는 "아버지가 심각성을 그때 인지하셨다. 그래서 그때는 정말 칼을 두고 대치했다"고 해 충격을 안겼다. 성전환 수술을 한 뒤 찾아갔지만 아버지는 "죽어도 이해 못하겠다"며 아들의 변화를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풍자는 스무살 때 집을 뛰쳐나왔다. 그는 "10년간 가족과 교류가 없었다. 주민등록번호는 아직 바꾸지 않았다"며 "법적으로는 남성으로 돼있다. 바꾸려면 지금 가서 바로 할 수 있는데 아버지와 또 한번 갈등이 생기는 게 무섭다"고 말했다.

오은영 박사는 "10년간 안 보고 지내다가 재회를 한 거냐"라고 물었다. 풍자는 "어느 날 뜬금없이 전화가 와서 아버지가 우셨다. 밥 해줄테니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10년이 지났으니까 서로 못 알아봤다. 가족이지만 어색했다. 서로 노력을 많이 했고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고 웃었다.

그러나 여전히 딸로서는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는 "술 마시고 전화가 왔는데 자꾸 우리 아들이라고 하며 우셨다. 너도 내 자식이지만 큰아들이 죽은 것 같아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오은영 박사는 "풍자 씨는 성인으로 당연히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로서 받아들이긴 어려울 거 같다"며 "이게 사랑과는 관계 없다. 딸로 받아들일 수 없어도 연락하고 같이 식사하는 게 가족으로 사랑하는 표현으로 보시면 될 것 같다"고 조언했다.

풍자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아픈 가족사도 털어놨다. 그는 "막냇동생이 3살 때 어머니가 극단적 선택으로 돌아가셨다. 결국 삼남매를 내가 돌봤다"고 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셨냐"라는 오은영 박사의 물음에 풍자는 조심스럽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사기를 당해서 일찍 돌아가셨다"고 말해 충격을 안겼다.

풍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더 이상 해드릴 게 없다고 하더라.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집에서 그냥 가족과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당시 병원에서 어린 친구들은 옮을 수 있다고 해서 동생들은 교회에 맡겼고 저 혼자 간호를 했다"고 힘든 과거를 회상했다.

오은영 박사는 "혹시 제초제를 드셨냐"라고 물은 뒤 "제초제는 그걸 마시면 결과적으로는 폐에 문제가 생겨서 호흡 곤란으로 돌아가시게 된다. 대체로 농약 마시면 응급실에 가면 위 세척을 하는데 제초제는 워낙 독해서 토사물로 나와도 그게 다른 사람에게 흡수가 된다"고 설명했다.

모든 것을 혼자 감당했다는 풍자는 "제가 임종까지 다 봤다. 그냥 방 한 칸에 엄마랑 단 둘이 있었다. 그때는 일주일간 자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혹시나 어떻게 될까봐 그랬다"며 "제가 자고 있을 때 농약을 드신 거다. 어머니 빈소에 앉아서 든 생각이 '왜 바보처럼 그때 내가 잠을 자다가 이런 일을 만들었을까. 만약 안 잤다면 농약을 뺏을 수도 있었을텐데' 싶더라"라고 말했다.

오은영 박사는 "풍자 씨 탓이 아닌데 자꾸 '내가 일어나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을텐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며 "편하게 누워 자는 것도 죄책감이 느껴지고, 휴식을 취해도 죄책감이 느껴지고. '쉬었다가 일이 끊기고 가난했던 시절을 다시 겪으면 어떻게 하나' 그런 불안감이 있는 걸로 보인다. 가엾어라"라고 안타까워했다. 

풍자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어머니 산소에 가지 못했다. 엄마는 돌아가시고 나서 지금 제 모습을 못 보지 않았냐. 그러니까 더 못 가겠더라"고 말했다. 오은영 박사는 "어떤 모습이라도 어머니는 자식을 반가워하실 거다. 굉장히 보고 싶어 하실 것"이라고 위로했다. 결국 풍자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뉴스인사이드 강하루 기자 news@newsinsid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