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선, 충격 폭로.."딸 이미소, 재벌집 유부남 딸..버림받고 죽도록 맞았다"
김부선, 충격 폭로.."딸 이미소, 재벌집 유부남 딸..버림받고 죽도록 맞았다"
  • 승인 2020.08.1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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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선/사진=
김부선/사진='엄마의 소개팅' 방송 캡쳐

 

18일 배우 김부선이 충격 고백을 했다.

이날 김부선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작성했다.

그는 "누구나 로망은 있다. 연예계 데뷔할때 오수미 고향 선배는내게 충고하길 여배우로 살아가려면 고독을 운명처럼여기고 고독을 벗삼아야 한다고 했다. 즉, 연예같은거 꿈도꾸지 말라는거다. 돌이켜보면 선배충고 틀렸다. 여배우로 성공하려면 세상무서운것도 경험하고 이놈저놈 만나 다양한 사랑도 해보고 깨지고 부딪치고 피터지는 아픔도 겪어바야 찐 연기가 나오는것이라고 충고 했어야했다. 그 시대는 그랬었다. 가장순수하고 피가뜨거웠던 끼많은 날라리 20대 나는 외로웠다. 나는 선배충고를 따랐고 지독히 고독했다. 그러다 재벌가 남자를 만났고 아이를 낳았고 잔인하게 버림받았다. 유부남이였다"라고 밝혀 충격을 주었다.

이어 "졸지에 미혼모가 된 것이다. 상상도못한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본능에만 충실했다. 주연배우에서 단역배우로 순식간에 전락했다. 괜찮다 감사했다. 이게 어디냐. 난 아이 굶기지않고 살아내야하는 미혼모 였으니까. 임신소식을 듣고 아이아빠는 그랬었다. 아이 낳치마라 난 책임못진다. 정 낳겠다면 제주도 고향가서 낳고 뱃놈을 시키던 해녀를 시키던 하고 난 책임없다. 책임같은거 묻지마라. 청천병력같았다. 그와 보낸 그시간들 그가 내게말했던 달콤한 속삭임들과 내게했던 말들이 그 추억들이 호락호락하지않는 섬처녀 신인배우를 꼬셔내기 위한 거짓이였다니 아이아빠는 그렇게 임신 2개월때 날 떠났다 그렇게 끝났다."라고 적었다.

김부선은 "숨어지내다 만삭을 앞두고 고향으로 내려 갔다. 어머니는 충격으로 종일 구토와 설사를 했고 세상에서 가장무섭고 가장 사랑하는 내언니는 달리는 트럭속으로 날잡고 울면서 뛰어 들어갔다. 같이 죽자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배신하고 그렇게 눈물로 미소를 낳았다"며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회상했다. 

완전히 남남이 된 줄 알았던 재벌집 유부남은 다시 김부선을 찾아와 또 한번 비수를 꽂았다.

김부선은 "백일이 되는날 연락두절 된 미소아빠는 1년만에 고향으로 아기백일을 축하한다는 축전을 보내왔다. 미소아빠를 만나고 싶었다. 옛말에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닮아도 너무 닮았다. 쌍둥이처럼 가족들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미소가 4개월이 됐을 때 서울로 상경했다. 그 아이를 내눈앞에서 어이없이 뺏겼다. 친부들이 아기를 보고싶어하니 3일간만 할머니에게 아기맡기고 친구들과 사냥여행하러 충무가자. 함께 가자 너도 애낳고 그간 힘들었을텐데 좀 쉬고 예기도 좀 하자며 그를 사랑했고 또 믿었기에 고마운 마음까지 생겼었다. 아기를 그에게 의심없이 넘기고 그렇게 충무여행을 갔다. 하루밤이 지나고 그의 일행들은 사냥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자 산속에서 밥짓고 술마시고 웃고 떠들었다. 아이 아빠는 단둘이 예기좀하자며 지프차에 날 태워 더 깊은 산속으로 가더니 잠시후 내리라했다. 담배를 한대피더니 어렵게 말을했다. '부선아 너는 처녀고 나는 유부남이잖아. 난 이혼만은 죽어도 못해준다는 아내가 있고 아들이 둘이다. 그들을 버릴수없다. 미안하다. 너가 이아이 행복을 위해서 아기 미래를 위해서 아기잊고 살아라 넌 새출발해라. 결혼도하고 잘 지내려면 돈이 필요할거다. 엄마가 목돈 준다더라. 그렇게 돈받고 아기보내고 처녀처럼 내숭떨고 살다 좋은남자만나 가정을 이루라'는 말을 했었다. 망연자실 이였다"라고 적었다.

김부선은 자신을 또 속이고 통제하려는 그에게 처음으로 강하게 저항했다. "그때 처음으로 아기 아빠에게 피흘리는 짐승처럼 소리치고 대들었다. 무슨소리냐 너 미치지 않았냐. 당장 아기내놔라 고향집 당장내려간다. 내가 씨받이냐며 짐승처럼 울부짖고 소리치며 사납게 달려들었다. 그는 주저없이 사냥용 엽총 개머리판으로 내 얼굴을 가격했다. 퍽하고 쓰러진 내게 총부리를 내얼굴에 갖다댔다. 쏴 죽여버린다고 따르라고 어미자격없다고 니깢년이 감히 누구에게 소리지르냐며 얼굴형태를 알수없게 총으로 맞았고 쓰러진내게 분이 안풀렸는지 남자의 손과 등산화 신은 발로 나는 죽도록 맞았다"며 잔인한 폭행사실을 폭로했다.

이어 "간신히 도망쳤다. 눈물로 낳은 아기 내 딸 미소와 나는 그렇게 4개월 만에 어처구니 없이 생이별을 당했다. 지옥같은 15개월이 지났다. 난 포기하지 않았다. 눈만뜨면 성북동 딸 친가와 아이아빠 집을 오가며 짐승처럼 그들 집 앞에서 아기 달라고 내아기 내놓으라고 울부짖고 신음하고 소리쳤다. 15개월후 악몽같은 시간이 지나 드디어 내아기를 보내준다며 그들은 항복했다."고 밝혔다. 

김부선의 주장에 의하면 재벌가에서는 김부선에게 큰 상처를 주고 철저하게 무시했다. 김부선은 "변호사 사무실로 나오라 했다. 아기는 지하주차장에 있다며 아기 만나기전 반드시 서명을 해야한다면서 종이두장을 내밀었다. 읽어봤고 즉시 서명했다. 그 내용은 1 위자료를 일체요구하지않는다. 2 양육비를 일체요구하지 않는다. 3 아이아빠를 다시만나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면 내가 오천만원을 지급한다 등등 이였다. 난 주저없이 서명했다"고 적었다.

이어 "그게 1990년 봄이였다. 그런세월이 벌써 30년째다. 그런 지독한 세월을 나쁜짓 안하고 단역하고 노동하며 딸과 죄인처럼 숨어살았다. 재벌가 아이아빠는 단돈 1원도 지원하지 않았다. 내용증명각서에 서명 했다는 법적 근거로. 그후 아이아빠는 미국으로 부부여행 떠났고 거기서 또다시 낯선여인과 눈이맞아 부인과 이혼하고 재혼했고 딸을 또 낳았다"라고 밝혔다.

김부선은 "충격이 연속이였다. 미혼모의 삶 나홀로 아이 양육하고 교육시키고 먹이고 입히고 산다는거 결코 녹녹치 않았다. 연예는 사치였다. 미소를 대학까지 보낸후 내삶은 책임과 긴장에서 조금 풀렸다. 딸과 조카 나 셋이 살다 조카애가 독립을했고 근처에 아파트를 마련하여 나갔다. 미소도 함께 따라갔다"라며 그 후의 삶에 대해 밝혔다.

이어 충격적인 내용이 이어졌다. 김부선은 "그러다 집회현장에서 2007년 12월 중순 발칙한 촌놈 이재명을 만난것이다. 그는 날 보자마자 매우 적극적이였다. 기분이 좋았다. 여배우라면 한번씩 꿈꿀법한 로망 누구의 소개가 아닌 신원이 확실치않으면 행여 소문날까 두려워 연예한번 폼나게 못해본 내가 맹바기 꼴보기싫다며 시위하러갔다가 길에서 영화처럼 만난 낯선남자 이재명은 내게 친절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다"라고 적어 충격을 안겼다. 

마지막으로 "내딸과 날 물고뜯고 모함하고 저주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아 너의들 중 죄없는 사람만 돌던지라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덧붙였다. 

[뉴스인사이드 박유진 기자 news@newsinsid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