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인터뷰] ‘유열의 음악앨범’ 정해인 “건강하게 오래 연기하는 게 꿈”…멀리 보는 배우
[인싸인터뷰] ‘유열의 음악앨범’ 정해인 “건강하게 오래 연기하는 게 꿈”…멀리 보는 배우
  • 승인 2019.08.2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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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해인/사진=CGV아트하우스
배우 정해인/사진=CGV아트하우스

정해인이 단정한 슈트를 입고 취재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진촬영을 진행하지 않는 인터뷰임에도 슈트를 입은 이유에 관해 그는 “마음을 다잡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정해인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으로 단숨에 ‘멜로 장인’으로 거듭났다. 1년 사이에 엄청난 인기와 사랑을 얻은 그는 ‘유열의 음악앨범’으로 스크린에서도 그만의 섬세한 감성을 이어간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처럼 우연히 만난 두 사람 미수(김고은 분)와 현우(정해인 분)가 오랜 시간 엇갈리고 마주하길 반복하며 서로의 주파수를 맞춰 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세 작품을 연달아 멜로 장르로 대중 앞에 서게 된 정해인은 달콤한 인기를 누리기보다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며 배우 정해인과 인간 정해인을 단단히 만들고 있었다.

“‘멜로 장인’이라는 말은 저를 더 채찍질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제 연기를 봐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체감하고 있고 팬들의 응원도 알고 있어요. 그만큼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점점 선명해지고 있어요.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 어떤 자세로 이 직업을 이어가야할지 선명해지고 있어요. 어떤 배우든 본인의 연기에 만족하지 않지만 상황에는 만족할 수 있잖아요. 만족하는 순간 박살이 난다는 걸 알아서 계속 채찍질을 하고 있어요. ‘멜로 장인’이라는 말도 과분하고 저를 고통스럽게 해요. 더 잘하라는 말 같아요.”

영화로는 처음 멜로에 도전했다. 긴 호흡의 드라마와 달리 2시간의 러닝타임 안에 인물의 감정과 서사를 함축해서 보여줘야 했다. 정해인이 처음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은 감독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언론시사회에서 감독님 옆에서 처음 영화를 봤어요. 한자리 떨어져서 보시더라고요(웃음).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드린 말씀이 ‘감사합니다’였어요. 시나리오에서 느꼈던 좋은 에너지와 서정적인 분위기가 영화를 보니까 증폭되어 있더라고요. 감독님의 앵글, 편집, 음악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관객으로서 보려고 노력했는데 고리타분하지 않게 재밌게 나온 것 같아요.”

정지우 감독의 전작들을 좋아했던 정해인은 감독과의 첫 만남에서 좋은 느낌을 받았고 이는 촬영 내내 이어졌다.

“첫 만남이 인상 깊어요. 그전부터 감독님 영화를 봐왔고 떨리는 마음으로 만났는데 저를 배우 정해인으로 보기 전에 사람 정해인으로 존중해주는 게 느껴졌어요. 그때 함께 일하면 행복하게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촬영 때도 감독님과의 에피소드가 많아요. 어떤 신을 찍으면 모니터를 하기 위해서 현장에서 감독님이 계신 쪽으로 가는데 급한 마음에 뛰어 갔어요. 그런데 반대쪽에서 감독님도 제 쪽으로 뛰어오시더라고요. 왜 뛰어오시냐고 물어보니 빨리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셨어요. 견우와 직녀도 아니고 모니터와 현장 중간에서 만나는 일이 계속 생겼어요(웃음). 감독님은 저에게 ‘핸님’이라고 하세요.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까지 뛰어오시더라고요. 한결같고 행복하게 촬영했어요.”

영화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을 그리며 레트로 감성을 자극한다. 실제 정해인은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의 감성은 공감하기 어렵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천리안도하고 MS DOS로 게임도 했어요. 초등학교 때 이메일도 인기여서 메일로 친구들과 속이야기도 하고 고백도 했어요. 장미 이모티콘도 사용했던 기억이 생생해요(웃음). 덕분에 영화를 찍을 때 이질감은 크게 없었어요. 저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휴대폰도 없었어요. 그 외에도 제가 아날로그를 좋아해요. 라디오는 어릴 때 안 들었지만 군대 시절에 자주 들었어요. 당시 운전병이었는데 사회와 단절되어 있고 조직에 갇혀있으니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을 때가 사회와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생방송으로 밖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가요도 나오니 신기했어요. 군복은 입었지만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것 같은 순간들이라 되게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배우 정해인/사진=CGV아트하우스
배우 정해인/사진=CGV아트하우스

정해인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26세에 배우 일을 시작했다. 묵묵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다양한 캐릭터와 상대배우, 스태프를 만난 정해인은 배우 이전에 인간 정해인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품이 끝나면 이별을 해야 하니까 너무 허전하고 공허함이 밀려와요. 배우와 캐릭터에서 빠져나와야 해요. 스태프와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있겠지만 그 작품은 끝난 거니 공허함이 있어요. 그래서 그 공허함 속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배우와 자신을 분리해야겠더라고요. 작품 속 배우로 살면 흔들릴 것 같았어요. 제 꿈이 건강하게 오래 연기하는 건데 쉽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려면 인간 정해인이 튼튼해야겠더라고요.”

그토록 원하던 작품에 출연하고 다른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주연으로서 발돋움했다. 1년 사이 많은 변화들을 겪은 정해인은 문득 그가 누리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신을 발견하고 아찔함을 느꼈다.

“잠자리에 들 때 문득 아찔할 때가 있어요. 제가 하고 있는 건 간절히 바라고 이루고 싶었던 일이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당연하게 생각하는 저를 발견하고 아찔했어요. 요즘 잠을 잘 못자서 자기 전에 오늘 했던 일, 내일 해야 하는 스케줄을 확인해요. 그때 당연하게 생각하는 저를 발견하고 힘들었어요. 너무 하고 싶은 일이었는데 힘들고 지치니까 순간 풀어지더라고요. 보통 전역을 앞두고 사회에 나가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막상 사회에 나가면 그런 마음이 금방 사라져요. 상황이 변한건지 내가 변한건지 고찰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유열의 음악앨범’ 이후 정해인은 영화 ‘시동’과 드라마 ‘반의 반’으로 다시 대중과 만난다. 멜로 장르로 사랑받은 그는 지금의 모습에 안주하지 않고 오래도록 배우로 남을 수 있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멜로가 아닌 다른 모습은 차기작 ‘시동’에서 보여드리기 않을까 싶어요. 오토바이도 타고 똥폼도 잡아요(웃음). 멜로를 이전부터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좋은 기회가 생겨서 하게 된 거예요. ‘그래, 그런거야’를 인연으로 김해숙 선생님이 항상 문자도 주시고 신경써주세요. 연락할 때도 엄마라고 해요. 당시에 집으로 불러서 대본 리딩도 봐주시고 밥도 해주시고 혼도 내주셨어요. 그때 해주신 말을 깊게 새기고 있어요. 저에게 연기할 거면 멀리보고 길게 보라고 하셨어요. 여러 일이 생기고 다양한 경험을 할 건데 항상 멀리 봐야한다고 해주셔서 그 뒤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해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hyuck2@newsinsid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