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국 씨의 월북 배경에는 ‘월북자의 자식’이라는 한국에서의 낙인 역시 한 가지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일 ‘동아일보’는 송범두 현 천도교 교령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이 보도했다.
최씨의 아버지인 최덕신(1914~1989)은 6·25전쟁 때 사단장으로 참전했고 박정희 정권에서 외무장관, 서독 주재 대사를 지냈다. 1967년부터 제7대 천도교 교령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갈등 끝에 아내 류미영(1921~2016)과 1976년 미국에 이주한 뒤 여러 차례 평양을 드나들며 김일성을 만났고, 1986년 북한으로 망명했다. 최덕신과 류미영은 북한에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보도에 따르면 최인국 씨는 월북 전 송범두 현 천도교 교령을 만나 “내가 여기(한국)서 살기도 힘들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송 교령은 이에 대해 “최인국 씨가 현행법을 어기고 북한에 넘어간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최 씨가 남북간 종교 교류가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송 교령은 한국에서의 최씨의 생활에 대해 “대학 졸업하고 직장을 가진지 얼마 안돼서 부모가 입북을 해서 벌어놓은 돈도 없고, 누가 도와주고 싶어도 못 도와줬을 것”이라며 “한동안 어머니(류미영)가 용돈을 보내주고 했던 거 같은데, 돌아가신 뒤에는 그것 마저도 없어지면서 고뇌를 많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 씨는 부모의 월북 이후 직장을 10번 넘게 옮겨야 했고, 사실상 제대로 직장 생활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서 “(최씨가)지금 자기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살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민주주의가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내가 실질적으로 할 게 없고 삶이 핍박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류미영 위원장 사후에 지금까지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직을 비워놨는데 들리는 얘기로는 그쪽(북한)에서는 가문을 중요시한다고 한다”면서 “그 자리는 아무나 앉힐 수가 없다는 그런 자리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 씨의 할아버지이자 최덕신의 아버지인 독립운동가 최동오 장군(1892~1963)은 김일성이 잠시 다녔던 화성의숙의 교장 선생님이었다. 최동오 장군은 6·25전쟁 때 납북됐고,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
최 씨의 외할아버지(류미영의 아버지)이자 임시정부의 참모총장 등을 지낸 류동열 장군(1879~1950) 역시 6·25전쟁 중 납북돼 마찬가지로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
[뉴스인사이드 이선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