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정신적 스승, 법정 스님이 지나온 길
이 시대의 정신적 스승, 법정 스님이 지나온 길
  • 승인 2010.03.1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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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 문학의 숲

[SSTV|김지연 인턴기자] 산문집 '무소유'로 잘 알려진 법정 스님이 11일 오후 1시 52분쯤 서울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55세, 세수 78세.

폐암으로 투병해 온 법정 스님은 입원 중이던 삼성서울병원에서 이날 퇴원, 자신이 창건한 서울 성북2동 길상사에서 열반에 들었다.

법정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 출생으로 대학 재학 중이던 1955년 선학원에서 당대의 선승 효봉 스님을 만나 대화를 나눈 뒤 그 자리에서 삭발하고 출가했다. 다음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행자 생활을 했으며 여름 안거가 끝난 이듬해 7월 보름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 탑전으로 가서 스승을 모시고 정진했다.

그 후 해인사 선원에서 좌선을 익히고 강원에서 불교 경전을 익히면서 수행자의 기초를 다졌다. 1959년 3월 통도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고, 같은해 4월 해인사 전문 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1960년 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통도사에서 운허 스님과 더불어 불교사전을 편찬했다. 새로 개설된 동국역경원의 초기 작업으로 산을 내려와 서울 봉은사에 머물렀다. 불교 경전 번역 일을 하던 중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하고 유신철폐 개헌서명운동을 펼치는 등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무고한 사람들에게 사형이 집행되자, 큰 충격과 자책을 느껴 본래의 수행승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아무도 거처를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 문명의 도구조차 없는 곳에서 혼자 살아왔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기관지인 불교신문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 사상 연구원장 등을 역임하였고, 1994년부터는 순수 시민운동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만들어 이끌었다. 1996년에는 서울 도심의 대원각을 시주받아 이듬해 12월 14일 길상사로 고치고 회주로 있다 2003년 12월 회주직에서 물러났다.

강원도 생활 17년째인 2008년 가을, 묵은 곳을 털고 남쪽 지방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법정스님은 많은 저서를 통해 세상이 잘못 알고 있는 진정한 가치에 대해 바로 잡고자 했고 참 소유의 의미를 깨우치고자 했다. 본질적인 삶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고 공생과 나눔을 강조했던 법정스님은 이 시대의 진정한 정신적 스승이었다.

저서로 '무소유'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산방한담' '텅빈 충만' '물소리 바람소리' '버리고 떠나기' '인도 기행'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아름다운 마무리' 등이 있다. 지난해에는 1992년 8월부터 2009년 4월까지 했던 모든 법문을 모아 엮은 법문집 '일기일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이 출간됐다. 역서로는 '깨달음의 거울(禪家龜鑑)' '진리의 말씀(法句經)' '불타 석가모니' '숫타니파타' '인연 이야기' '신역 화엄경'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