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인터뷰] ‘기생충’ 봉준호 감독 “안타깝고 슬픈 현실 솔직하게 직시하는 영화”
[인싸인터뷰] ‘기생충’ 봉준호 감독 “안타깝고 슬픈 현실 솔직하게 직시하는 영화”
  • 승인 2019.06.0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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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해외 모든 극찬을 쓸어 담은 봉준호 감독은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무게를 함께 지며 관객을 만났다. 수상의 기쁨을 좀 더 오래 만끽해도 좋을 것 같은데 봉준호 감독은 “칸은 이미 과거”라며 영광에 머물지 않고 벌써부터 다음 스텝을 밟아가고 있다.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 분)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기생이 아닌 공생과 상생이 되기 위한 인간의 예의를 말하고자 했던 ‘기생충’은 ‘설국열차’ 후반 작업을 하던 시기 기획한 이야기다. 기획한 봉준호 감독은 처음에는 동일한 구성의 두 가족에 포커스를 맞춰 ‘데칼코마니’라는 제목을 지었다. 이후 감독은 영화의 시점을 기택네로 맞추며 ‘기생충’으로 영화의 제목을 확정지었다.

“2013년경 체코 프라하에서 ‘설국열차’를 찍고 귀국해서 서울에서 후반작업을 할 때인데 그때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를 주변 지인들과 했어요. 당시 제목은 ‘데칼코마니’였어요. 두 가족이 대치를 이룬다는 거죠. 그들이 뒤섞이면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을 구상했어요.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가난한 가족이 부자 가족에 침투하는 느낌이었어요. 영화의 시점이 반대가 될 수도 있어요. 주인공이 부자 부부이고 과외선생님을 뽑았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고. 그렇게 전개된다면 미스터리하게 나가고 장르의 느낌이 달라질 수 있죠. 직관적으로 가난한 가족의 시점을 끌고 가는 것에 확신을 갖게 되면서 제목이 ‘기생충’으로 바뀌었어요. 그렇다고 ‘기생충’의 의미가 굳이 기택 가족에 국한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노동의 관점에서 본다면 부자도 기생충이 될 수 있죠. 기생은 모멸감이 느껴지는 표현인데 공생이나 상생이 되려면 서로 간에 리스펙트가 갖춰져야 하죠. 함께 사는 것의 어려움을 서술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설국열차’가 계급사회를 상징하는 기차를 전복시키고 세상으로 나왔다면, ‘기생충’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기묘한 사건들로 공생할 수 없는 계층의 계단을 쌓아간다. 이에 관해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은 좀 더 현실적인 슬픔을 직시하는 느낌이 있다. 섣불리 희망을 말할 수 없는 현시대를 다루니까 결말에 대해서도 ‘안타깝고 슬픈 현실을 솔직하게 직시하는 게 나은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나아가 감독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기우 역의 최우식이 부른 ’소주 한 잔‘을 삽입했다. 정재일 음악감독이 작곡하고 본인이 가사를 쓰고 최우식이 부른 ’소주 한 잔‘은 막막한 현실을 무작정 위로하기 보다는 담담하게 이어가며 영화의 여운을 짙게 남긴다.

“안쓰러운 청년, 거창하게 말하면 그 세대를 직시하면 끝나기엔 뭔가 아쉬웠어요. 영화의 장면이 아니더라도 기우가 뭐라도 한마디 건네면서 끝내고 싶었어요. 쿠키영상은 영화 성격에 안 맞을 것 같아서 관객이 반 이상 나가더라도 상관없이 편하게 노래를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꾸역꾸역 살아가며 일하고 한 잔하는 느낌이에요. 도드라진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그런 톤. 극장을 나설 때 노래의 잔상을 가지고 나가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봉준호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봉준호 감독/사진=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은 이전 작품들과 달리 악인이 없다. 기존 작품들에서 전복의 대상으로 그려졌던 기득권을 대변하는 박사장네 가족 역시 어느 누구도 악의가 없다. 또한 대부분이 사적인 공간인 집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각 인물의 솔직한 내면을 유추할 수 있다. 감독의 이러한 설정은 영화를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며 공감을 자아낸다.

“미묘한 결이 있는 부자를 그리고 싶었어요. 부자라고 하면 탐욕스럽고 기름기가 낀, 노골적인 갑질이 많은 것으로 그려지는데 사실 현실은 복잡 미묘하잖아요. 이선균, 조여정 씨라면 그런 부분을 잘 표현해줄 수 있을 거란 믿음도 있었어요. 젊은 신흥 부자 느낌이라 취향도 세련되면서 그 안을 벗겨내면 전형적인 모습도 있는, 미묘한 레이어를 표현하고 싶었죠. 극중에서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냄새’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외부의 공적인 자리에서 하면 큰일 나죠. 영화에서도 사적인 공간에서 하는 말이니 그 말 자체를 잘못이라고 할 순 없죠. 하지만 관객과 기택 가족은 그걸 가까이서 듣잖아요. 기묘한 상황이죠. 영화의 90%가 집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대부분 사적 영역을 찍고 있는 거예요. 타인의 사생활을 가까이서 찍는 영화라고 홍경표 촬영감독과도 이야기했어요.”

‘봉테일’이라는 별명처럼 감독은 디테일한 설정과 연출로 전혀 다른 두 가족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봉준호 감독은 “경험하지 않은 걸 결국 표현하는 것이 창작자의 의무이자 짐”이라며 영화 속 다양한 장면들을 설명했다.

“경험하지 않은 걸 결국은 표현해야 하는 게 창작자의 의무이자 짐이죠. 살인하지 않고 ‘살인의 추억’을 찍었듯이 저희 집은 기택과 박사장의 중간 정도로 순탄하게 자랐어요. 친구나 친척 중에는 되게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있었죠. 누구나 그렇잖아요. 제가 보고 느끼고 상상한 여러 영역이 있죠. 굳이 예를 들자면 영화 초반에 기우가 박사장 집을 방문하는 건 저도 그런 적이 있어요. 굉장한 부잣집 과외를 했는데 집이 복층이고 2층에 사우나도 있었어요. 90년대 초반인데 충격이었죠. 처음 집에 들어갈 때 기억도 생생해요. 철문이 열리고 대리석 바닥이 있고 부자동네 특유의 조용함이 있어요. 소음에도 빈부격차가 있는 거죠.”

‘옥자’, ‘기생충’에 이어 봉준호 감독은 두 작품의 구상을 마친 상태다. 두 작품은 할리우드와 한국에서 제작될 영화로 동시에 진행 중이다. 봉준호 감독은 칸에서 수상 후 귀국하는 비행기에서도 시나리오 작업을 이어갔다. 인터뷰 말미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과 비슷한 수준의 사이즈를 지닌 영화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공포 분위기며 장르가 공포는 아니다. 대략 4~5년 걸릴 것 같고 캐스팅에 관해서는 미리 인물을 정해두고 쓰진 않았다”며 차기작에 관해 귀띔했다.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