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배심원들’ 문소리, 전체를 아우르는 내공…“계속 흘러가면 밀려날 걱정도 없어” 
[NI인터뷰] ‘배심원들’ 문소리, 전체를 아우르는 내공…“계속 흘러가면 밀려날 걱정도 없어” 
  • 승인 2019.05.0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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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문소리/사진=CGV아트하우스
배우 문소리/사진=CGV아트하우스

“캐릭터는 옷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이냐는 거죠. 겨울에는 옷을 두껍게 입고, 장례식장에서 검은 옷을 입는 것처럼 캐릭터도 상황에 맞게 입을 뿐이에요. 제가 어떤 캐릭터를 하느냐보다 작품에 흥미를 느끼고 함께 하고 싶은지가 중요한 거죠.”

배우 문소리(46)가 15일 개봉을 앞둔 ‘배심원들’(감독 홍승완)에서 여성 판사로 변신했다. ‘배심원들’은 2008년 대한민국에서 처음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영화는 태어나서 처음 누군가의 죄를 심판해야 하는 보통의 사람들과 정확한 판단으로 재판을 이끌어가야 하는 재판장의 이야기를 통해 법이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묻는다. 문소리는 강한 신념의 원칙주의자 김준겸 캐릭터를 통해 큰 감정 변화 없이 전체를 아우르는 내공을 발휘한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부족한 저의 모습도 보이고 아쉬운 점도 있어요. 보면서 음악은 어떤지 CG는 잘 완성됐는지, 신의 순서는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피게 돼요. 우선 우리가 가고자하는 방향으로 배를 띄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많은 사람들이 우당탕거리며 찍었는데 중심 잃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간 것 같아서 조금은 안심이 돼요. 언론 시사회에서 배우들이 영화를 보고나서 다들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웃음). 다들 자기 영화니까 애정이 있겠지만 관객으로서도 정말 좋아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제가 ‘아직 샴페인 터트릴 때는 아니다. 개봉 첫 주말 지나서 훈훈한 자리를 갖자’라고 했어요(웃음).”

소수의 주요 캐릭터가 극을 이끄는 형태가 주를 이루는 한국 영화 속에서 ‘배심원들’은 지극히 평범한 다수가 함께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법과는 무관한 8명의 배심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죄를 판단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출연을 결정하기 전 재판장 캐릭터가 비교적 부족해 보인다는 주변의 우려도 있었지만 문소리는 본인이 중심을 잘 잡아 이야기를 끌고 간다면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배심원들’이라고 하면 참고나 비교가 될 만한 영화가 딱 떠오르지 않아요. 한여름에 나오는 호러 영화는 제목을 보면 연상이 되잖아요. 액션 영화도 그렇고. ‘배심원들’은 단어 자체도 생소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낼 것 같았어요. 그리고 요즘 투톱이나 쓰리톱 배우가 이끄는 영화가 많은데 평범한 다수가 끌고 가니 새로울 것 같았어요. 그리고 한국 영화 안에서 형사든 조폭이든 검사, 정치인, 변호사 할 것 없이 폭력이나 자극적인 걸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저희는 끝까지 대화로 해결해요(웃음). 그런 지점이 개성인데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죠. 저는 장점으로 발현된 것 같아 흐뭇하게 생각해요. 관객 분들이 많이 즐겨주셨으면 해요.”

문소리는 강한 신념과 인간미를 갖춘 재판장 캐릭터를 완성시키기 위해 직접 국민참여재판을 지켜보고 여성 판사들을 만나며 캐릭터의 빈틈을 메웠다. 그가 판사들을 만나며 느낀 건 결국은 모두 같은 사람이고 각자의 개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와 동시에 그들의 자긍심을 느꼈다.

“김준겸의 두 번째 손가락에 24K 반지가 있어요. 제가 의상팀에 직접 디자인까지 샘플로 보여주면서 주문했어요. 관객은 잘 볼 수 없겠지만 제 스스로 반지를 보면서 각인을 시키려고 했어요. 판사님들을 만나보니 순금 같은 느낌이 있더라고요. 화려한 세공이나 컬러가 아닌 오랜 기간 축적된 순도 높은 자긍심. 김준겸을 연기하면서 그 느낌을 잊지 않으려고 반지를 끼고 다녔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느낀 건 그들도 우리와 똑같다는 점이었어요. 헤어스타일도 다양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분도 계세요. 판결문도 다 달라요. 어떻게 쓰는지 물으니 각자 생각대로 쓰시더라고요. 은유적으로 쓰는 분도 있고 간단하게 쓰는 분도 있어요. 법정에서 보여주는 태도나 습관도 다 달라요. 그래서 인간 문소리에서 출발해 김준겸으로 나아가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배우 문소리/사진=CGV아트하우스
배우 문소리/사진=CGV아트하우스

영화는 2008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첫 참여재판을 다룬다. 영화는 실제 하나의 재판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닌 당시 여러 참여재판에 모티브를 가져와서 재구성했다. 그 중에는 존속살인사건도 1심과 2심의 결과가 완전히 다른 케이스도 있었다. ‘배심원들’이 입봉작인 홍승완 감독은 그 당시에 있던 수많은 재판을 취재하며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해도 현장은 수많은 변수가 발생한다. 배우는 물론 감독으로서 경험도 있는 문소리는 홍승완 감독의 치밀한 준비를 믿고 부족한 경험은 함께 채우며 중심을 잡았다.

“저도 처음 연출할 때 그랬지만 현장이라는 게 너무나 결정할게 많고 힘들어요. 경험이 많은 감독님은 제가 기댈 수 있고 편하게 의견도 말할 수 있는데 신인 감독에게는 혹시 마음이 상하거나 신뢰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될까봐 오히려 조심스러워요. 이번에는 제가 캐스팅이 빨리 돼서 감독님과 1년 가까이 보면서 의견을 나눠서 신뢰를 많이 쌓았어요. 얼마나 꼼꼼하게 분석하고 취재하면서 여러 해 동안 시나리오를 주물렀는지 알 수 있었어요. 현장 경험이야 부족하면 제가 채우면 되는 거고 잘 맞춰서 해나갈 수 있겠다 싶었죠. 현장가면 배심원들이 감독님을 너무 독차지해서 오히려 저는 나중에 시간이 없어서 ‘저는 알아서 할게요’라고 할 정도였어요(웃음). 감독님이 배역의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이야기를 평등하게 들어줬어요.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너무 좋은 태도더라고요. 덕분에 이 많은 캐릭터가 잘 살지 않았나 싶어요.”

배우는 자신과 먼 일이라고 생각하던 어린 문소리는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에 진학해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이후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의 주연으로 발탁된 문소리는 당시에도 연기를 평생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 두더라도 어느 정도 알 때까지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문소리는 단편영화를 거쳐 ‘오아시스’로 그해 상을 휩쓸고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자리 잡은 문소리에게 지금 새기고 있는 좌우명을 묻자 곁에 있던 다이어리를 꺼내 읽었다.

“‘부유불거 시이불거’, 머물지 않으니 밀려나지 않는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인데 일이 이룬 뒤 그곳에 머물지 않으니 밀려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뭔가를 이루면 거기서 버티고 누리려고 하고 그러면 집착하고 고통도 생기죠. 하지만 더 나아가려하고 흘러가면 밀려날 걱정도 없는 거죠. 저는 계속 영화 안에서 흐르고 무대로 흘러가고 있어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