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리뷰] ‘어린 의뢰인’, 우리는 왜 방관자가 되는가…진실을 마주할 용기
[NI리뷰] ‘어린 의뢰인’, 우리는 왜 방관자가 되는가…진실을 마주할 용기
  • 승인 2019.04.3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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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린 의뢰인’ 포스터 /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어린 의뢰인’ 포스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보는 내내 마음이 답답하다. 극장 곳곳에는 깊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한숨에는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계모를 향한 분노와 함께 고통 받는 아이를 외면했던 우리의 무책임함이 섞여있다.

‘어린 의뢰인’은 2014년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 방송되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은 계모가 의붓딸 A양을 폭행으로 숨지게 한 후 A양 언니에게 동생을 죽였다는 허위 진술을 강요한 사건이다. 

영화는 로펌 면접에서 목격자가 많을수록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분산돼 방관하게 되는 심리현상을 뜻하는 제노비스 신드롬에 관한 질문을 받는 정엽(이동휘 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정엽은 목격자가 유죄 여부를 묻는 말에 법적으로 책임이 없다고 답한다. 면접에 떨어진 정엽은 사회복지센터에 잠시 일을 하며 다빈(최명빈 분), 민준(이주원 분) 남매를 만난다. 남매가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대형 로펌에 취직하면서 이를 외면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0살 다빈이 7살 남동생을 죽였다는 충격적인 자백 소식을 듣게 된다. 정엽은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으로 모자라 허위 진술을 강요한 엄마 지숙(유선 분)으로부터 다빈을 지키기 위해 나선다. 

영화는 이처럼 방관자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시작해 반성과 용기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다. 부모와 어른들의 보호를 받지 못한 남매의 시선으로 사건을 풀어가며 허술한 사회 시스템과 어른들의 무책임을 비판한다. 경찰, 복지 센터 직원, 선생, 동네 주민까지 수많은 어른들이 조금만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최악의 상황까지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조금씩 책임을 미루고 방관하는 사이 한 아이가 죽고 다른 아이는 어른을 향한 불신과 불안으로 입을 닫았다. 정엽 역시 아이들을 외면했던 수많은 어른 중 한명이었지만 결국 약속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영화가 전달하고 하는 가치를 완수한다.

이동휘는 ‘어린 의뢰인’에서 세속적이고 무책임한 방관자의 모습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해 진심으로 눈물 흘리는 어른의 모습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소화하며 배우 이동휘의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영화 ‘극한직업’ 등으로 사랑받았던 이동휘는 진정성 있는 묵직한 모습 속에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곳곳에 삽입해 템포를 조절했다. 모두의 분노를 유발하는 계모 지숙 역을 소화한 유선은 진실을 숨기는 이중적 모습을 섬뜩하게 그려냈다. 특히 아이를 학대하는 장면은 아이의 시선으로 촬영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잔인함과 광기가 그대로 전해지도록 했다. 

장규성 감독은 “부모 혹은 어른이라면 주변에 이런 일이 있으면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며 영화를 연출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학대의 표현에 있어서도 잔인한 장면을 지양하고 어린 배우들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살피면서 신경을 썼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과 동시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방관자였기 때문이다. 감독 역시 관객들이 불편해 할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이런 영화를 완성시키고 관객을 기다리는 이유는 모두 함께 미안함을 느끼고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한 용기를 만들어가길 위함이다.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