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미성년’ 선 굵은 배우·섬세한 감독 김윤석
[NI인터뷰] ‘미성년’ 선 굵은 배우·섬세한 감독 김윤석
  • 승인 2019.04.1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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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윤석이 신인 감독으로 첫 연출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긴 시간을 들여 세공한 ‘미성년’은 배우 김윤석이 아닌 감독 김윤석의 기량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개봉에 앞서 공개된 언론시사회에서 김윤석의 섬세하고 현실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 적재적소에 배치된 웃음은 연이은 호평을 불러일으켰다.

영화 ‘미성년’은 평온했던 일상을 뒤흔든 폭풍 같은 사건을 마주한 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김윤석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대처하는 각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성년, 성숙한 어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2014년 짧은 창작 연극을 접한 김윤석은 그 안에 담긴 사건과 이를 두고 대처하는 어린 학생들의 신선함에 반해 연출을 결심했다.

“2014년 겨울에 창작극 발표회가 있었어요. 정식으로 발표하는 공연이 아니에요. 짧은 분량으로 세트도 없이 빈 공간에서 배우들이 대사를 외우는 정도로 시연하는 거죠. 관계자들이 그 중에 한 두 작품을 선택해서 발전시키고 지원금도 신청해서 당선이 되면 본 공연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 중간 과정에서 본 거죠. 그 작품에는 원래 여학생 둘이 아니라 남학생, 여학생이었어요. 독특했어요. 어른들이 친 사고를 수습하려고 학교 옥상에서 다투는 모습이 굉장히 신선했어요. 어른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의 시선으로 떨어뜨리고 보니까 너무 웃기는 거예요. 어른들은 보통 돌려 말하는데 직접적으로 쏘아붙이는 게 신선했죠. 그 에너지가 어둡지 않고 아이들다우니까 굉장한 블랙코미디였어요. 그 매력에 빠져 작가를 만나고 작업을 하게 된 거죠. 원래 비중은 아이들이 70%고 어른들은 병풍 같았는데 영화화하면서 영주와 미희의 비중을 높이고 네 사람을 주연으로 놓았죠.”

배우로서 영화계는 물론 수많은 관객에게 신임을 받는 김윤석이지만 영화감독으로서는 검증이 부족했다. 게다가 상업영화로 만들기엔 다소 평범한 스토리였기에 좋은 배우를 섭외하고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 김윤석은 염정아에게 시나리오를 건넸고, 하루 만에 흔쾌히 승낙한 그녀 덕분에 좀 더 수월하게 이후 과정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정아 씨가 하루 만에 한다고 했을 때 제자리에서 뛰어올랐어요. 굉장히 드믄 케이스에요. 정말 시나리오를 잘 보신 거죠. 제가 지문을 친절하게 쓰는 편이 아니에요. 지문이 주는 인상이 배우에게 선입견을 만들까봐 대부분 안 쓰고 만나서 만들어 가는데 그런 불친절한 시나리오를 보고 하신다고 했으니 너무 고맙죠. 김소진 씨도 그렇고요.”

아빠의 불륜을 알게 된 딸과 불륜 상대의 딸이 한 학교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영화의 사건은 시작된다. 불륜이라는 흔한 소재에 다이내믹한 전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각 인물의 감정을 높은 몰입도로 끌고 간다. 특히 염정아와 김소진의 장면은 클로즈업을 통해 각 배우의 연기를 극대화시킨다.  

“클로즈업 장면이 우리 영화의 최고의 무기입니다. ‘미성년’의 강렬한 무기는 배우들의 표정이에요. 물론 배우들에게는 부담될까봐 이야기는 안했죠. 딱히 디렉션이 필요 없었어요. 기다리면 되니까. 다만 이를 담을 수 있는 장치는 준비를 해뒀죠. 연기적인 디렉션은 이미 대사에 다 나와 있어요. 굉장한 경험이었어요. 얼마나 몰입하고 있는지는 스태프를 보면 알아요. 70명의 스태프가 모두 숨도 쉬지 않고 가만히 있는 분위기는 굉장해요. 누가 실수로 사탕 까는 소리라도 들리면 끝나는 거죠(웃음). 염정아 씨의 입술이 떨리고 김소진 씨의 눈빛이 흔들리는 그런 것들이 영화의 무기예요. 다른 건 없어요.”

또한 ‘미성년’은 신예 김혜준, 박세진을 기용, 베테랑 배우에 밀리지 않는 탄탄한 연기로 시선을 끈다. 김윤석은 한 달 동안 3차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두 배우를 발탁했고 촬영 전부터 시간을 들여 두 배우와 교감을 나눴다.

“김혜준, 박세진 씨는 크랭크인 전에 저와 연습을 많이 했어요. 옥상 장면이 워낙 중요해서 오디션도 그 장면으로 했어요. 연습을 계속 하면서 마음의 벽을 허물어야 하잖아요. 제가 얼마나 어렵겠어요. 선배에 아빠와 나이도 비슷할 텐데. 두 사람 모두 실제 미성년은 아니고 연극영화과 2, 3학년 정도니까 가볍게 맥주도 마시면서 이야기도 나눴어요. 그렇게 벽을 허물었죠. 하고 싶은 말이나 힘든 일이 있으면 편하게 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 과정들을 거쳤고 베테랑 배우들은 그냥 오면 되는 거였죠. 처음부터 주리, 윤아 역은 신인으로 캐스팅하려고 정해놨어요. 다른 작품 이미지가 강하면 캐릭터로 접근이 안 될 것 같았어요.” 

‘미성년’에서 김윤석은 연출과 함께 극 중 사건의 계기를 만드는 대원 역을 함께 소화했다. 대원은 무책임한 가장으로 사건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회피만 하는 인물이다. 처음부터 김윤석이 연출과 연기를 함께 하려고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당초 대원 역에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고 캐릭터의 특성 상 본인이 직접 연기하는 것이 나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일단 거절당했어요(웃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역은 기능적으로 보조한다는 걸 아니까 거듭 부탁을 드릴 수 없었죠. 제 콘티에 대원의 앞모습은 거의 없었어요. 필요한 장면 외에는 대부분 옆모습이나 뒷모습, 혹은 포커스가 나가있는 장면들이에요. 제 머릿속에서 콘티를 그렇게 짜서 다른 분에게 부탁을 못했어요. 제가 하는 게 마음이 편했죠. 처음 전체 리딩을 하는데 대원이 말만하면 뒤집어지더라고요. 제가 써놓고도 그 대사를 읽는 제가 가장 많이 웃었어요. 촬영하면서는 연기를 즐기지 못했어요. 감독으로서 장면을 체크하고 리액션도 살펴야 했어요. 대원 캐릭터는 연기적으로 어렵기보다는 연출적으로 어려웠어요. 분노를 유발하는 캐릭터인데 너무 강조가 되면 다른 네 인물에게 좋은 영향을 못 미쳐요. 그래서 그 조절이 중요했어요. 대원이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로 집단을 이루는 구성이에요. 익명성을 갖길 바랐어요. 인간이 가진 나약하고 회피하는 모습의 대명사로 만들기 위해 조절이 필요했어요. 드라마 속에 녹인 블랙코미디 요소는 이 인물을 통해 보여줘야 했었죠.”

2014년도에 시작해 2019년도에 완성됐다. 5년의 기간 동안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많았다. 염정아가 주연으로 캐스팅되면서 힘이 실리고 비교적 적은 예산이지만 영화가 완성됐다. 투자를 받긴 쉽지 않았지만 주변 동료들이 좋아하고 응원하던 시나리오였다. 김윤석이 ‘미성년’을 붙잡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주변의 응원과 함께 드라마와 캐릭터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제 인생의 연극이 있어요. ‘밤으로의 긴 여로’라는 작품이 있어요. 아일랜드 이민 가족의 비극을 다룬 작품인데 6개월을 연습했어요. 이 작품을 잊을 수 없어요. 처음에는 너무 재미가 없었어요. 근데 썰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어느새 차오르는 것처럼 감정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드라마와 캐릭터 밖에 없는 작품인데 감정이 차오르는 걸 느끼면서 이를 가지고 승부를 걸어볼만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미성년’을 연출하게 된 용기를 줬다고 해야 할까요.”

좋아하는 장르를 직접 연출하고 언론시사회를 통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는 김윤석은 인터뷰 말미 관객에게 꼭 봐주셨으면 하는 장면을 꼽았다.

“‘미성년’에서 ‘영화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순간’을 담고 싶은 장면이 있었어요. 영주의 고해성사, 고해성사는 볼 수 없잖아요. 그리고 미희가 대원의 전화를 받는 롱테이크 클로즈업. 전화를 거는 사람은 받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없죠. 그런 부분들은 제가 연출에 있어 욕심을 낸 부분이에요. 언론시사회에서도 말했지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오히려 편하게 자고 아닌 사람은 가슴에 피멍이 들어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잖아요. 코 골며 자는 사람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죠.”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