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우상’ 설경구, ‘완벽’과의 거리를 좁혀가려는 집념
[NI인터뷰] ‘우상’ 설경구, ‘완벽’과의 거리를 좁혀가려는 집념
  • 승인 2019.03.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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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가 ‘우상’으로 또 한 번의 파격 변신을 감행했다. ‘한공주’ 이수진 감독의 차기작 ‘우상’에서 설경구는 목숨 같은 아들이 죽은 후 진실을 쫓는 아버지 유중식으로 분했다. 2017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강력한 팬덤을 소유하게 됐지만 멋진 이미지를 의식하기보다 걸어왔던 ‘진짜 배우’의 행보를 이어갔다. 

‘우상’에서 설경구는 죽은 아들이 연루된 사고의 비밀을 파헤치는 집요한 부성애와 비통함, 세상을 향한 분노가 뒤섞인 다양한 모습을 그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몰아치듯 에너지를 뿜어냈다. 진짜 연기를 향한 강한 집착과 노력은 그에게 세계 3대 영화제에 모두 초청된 배우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붙여줬다.

“중식은 아들 부남과 단둘이 산 인물이고 그들만의 세상이 견고하다고 생각해요. 철옹성 같이 구축한 세상이 깨졌다고 생각해요. 사고로 인해서 아들이 죽고 그러면서 중식은 불안해진 거죠. 이후 어떤 진실을 알지만 자신만 속이면 되는 거예요. 련화(천우희 분)도 모르고 있어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여러 개가 아니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걸 선택하고 나아가는 거죠. 다시 자신의 세상을 단단하게 구축하려고 했을 거예요.”

‘우상’의 시나리오를 받고 설경구는 유중식이 답답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답답함을 파고들어가 풀어보고 싶은 마음에 출연을 결정한 설경구는 유중식과 아들의 관계에 집중했고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중식이 정말 답답하더라고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왜 자신의 것이 아닌 걸 가지려고 하고 그런 결정을 하는지 답답하더라고요. 그런 답답함 때문에 오히려 유중식이라는 인물을 선택했고 풀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살아왔던 인물이니 그런 선택이 필요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중식에게는 철물점과 집이 바운더리인 것 같아요. 이웃 하나 없어요. 유중식에게는 아들과 딱 둘만의 세상이죠. 제 생각에는 답이 없는 영화예요. 각자가 본 게 맞는 거죠. 영화를 보고 각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텐데 합쳐지진 않을 것 같아요.”

‘우상’에서 설경구는 탈색과 태닝, 체중감량 등 외형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특히 탈색은 이질감을 줌과 동시에 아들과의 깊은 관계와 부성애를 드러내는 표현 중 하나였다.

“탈색은 안 해본 거라 좋았어요. 태닝도 좀 하고 살도 뺐어요. 초록색 옷도 좋았어요. 의상이나 탈색이 캐릭터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아들 부남은 어린 아이의 지능을 갖고 있고 장애를 앓고 있잖아요. 중식은 에어컨 설비 등으로 출장을 나갈 때 아이를 데리고 다닐 텐데 혹시 잃어버릴 수도 있고. 그래서 아들의 머리를 탈색시켰을 거예요. 시신을 확인할 때도 탈색한 머리가 나오는데 두 사람의 머리색이 같은 건 동질감의 표현, 진한 부성애의 표현이죠.”

캐릭터를 표현하고 관객의 몰입을 이끄는데 있어 설경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장면은 영화의 시작이자 유중식의 첫 등장이다. 비가 오는 도로 위를 급하게 운전하며 병원으로 향하는 한 남자의 모습은 곧바로 아들의 죽음을 확인하는 아버지의 절망으로 이어진다. 이수진 감독과 설경구는 유중식이 병원으로 향하는 뒷모습만으로 그의 불안정한 심리를 세밀하게 담아냈다. 

“제 첫 등장이 기대도 됐고 동시에 걱정도 됐어요. 전사도 없이 곧바로 아들의 죽음을 확인하는 중식의 모습이 나오잖아요. 그것도 뒷모습으로 찍었죠. 급하게 운전하고 비도 오고 주차까지 하고 누나를 만나는 동선들을 끊지 않고 촬영했어요. 원래 모든 영화에서 첫 등장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 캐릭터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거라서. 이번에도 첫 등장에 신경도 많이 썼고 감독님도 그래서 여러 번 촬영했어요. 그 첫 등장 장면을 좋아해요.”

   
 

한석규와 설경구, 한국 영화계를 이끈 깊은 내공의 두 배우가 ‘우상’을 통해 드디어 뭉쳤다. 거기에 ‘써니’, ‘한공주’, ‘곡성’ 등 매 작품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낸 천우희까지 더해지며 세 사람의 연기 시너지에 기대가 모였다.

“극중에서 한석규 형과도 전사도 전혀 없고 느닷없이 만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잖아요. 그래서 석규 형도 촬영 전에 ‘너도 잘하고 형은 형대로 할게. 나중에 합쳐보자’라고 했어요. 각자 라인이 달라서 그게 맞는 것 같아요. 각자의 감정에 빠져 사는 인물들이라 맹목적인 거죠. 그래서 힘을 합쳐서 감정의 시너지를 일으키며 쌓아가는 캐릭터는 아닌 것 같았어요. 천우희는 천진난만했어요. 긍정적인 태도가 부러웠어요. 눈썹밀고도 긍정적이니까 되게 희한하더라고요(웃음). 저는 그렇게 못해요. 예민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접근하는 게 그렇더라고요. 석규 형은 저보고 ‘너랑 내 나이면 동료야’ 그러는데 한참 선배죠(웃음). 전체를 아우르는 게 있어요. 쉬운 현장이 아니었는데 석규 형이 괜히 실없는 소리도 한 번 하면서 분위기를 풀죠. 저와 감독님은 같이 예민한데 석규 형은 풀어주는 스타일이에요. 저는 저만 보고 석규 형은 전체를 봐주셨다고 할까요.”

영화는 143분이라는 비교적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전개로 긴박함을 놓지 않는다. 다만 다양하게 얽힌 이야기들을 집중해서 보지 않거나 메시지를 놓친다면 이야기 전체가 쉬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관해 설경구는 ‘낯선 영화’라는 표현으로 ‘우상’을 설명했다.

“보이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시면서 관람하셨으면 해요. 영화가 사건으로 시작하고 바로 옆으로 빠져요. 그리고 세 사람이 나오는데 서로의 아귀가 맞지 않아요. 억지로 맞추려고 하면 고장 날 것 같아요. 다 보고나서 하나하나 정리가 될 것 같아요. 불친절한 부분은 있지만 ‘낯선 영화’라는 표현도 맞는 것 같아요. 이런 영화도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영화는 자신만의 우상을 좇거나 만드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설경구에게 맹목적으로 좇는 우상이 있을까. 

“집착하는 건 연기인데 그렇다고 맹목적인 우상은 아니에요. 배우라면 누구나 연기에 집착할 거예요. 안 되는 걸 끝까지 가져가려고 하는 게 있잖아요. 100% 창조가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좁혀가려는 집착이 좀 있어요. 그러면서 안 되면 좌절하고 조금 되면 좋다고 하는 거고. 영화 속 인물들도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느 순간 맹목적이 되고 이성이 마비되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요. 뜨겁게 시작해서 차갑게 끝나는 게 중식이라면, 명회는 차가운 상태로 시작해서 계속 뜨거워지죠. 중식, 명회, 련화 모두의 행동과 선택이 사람이라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감정이 끝까지 치닫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가장 무섭지 않나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CGV아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