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항거:유관순 이야기’, 유관순의 옆에 선 고아성
[NI인터뷰] ‘항거:유관순 이야기’, 유관순의 옆에 선 고아성
  • 승인 2019.02.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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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는 모두가 알지만 가깝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분인데 그런 걸 극복해야 연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100년의 시간이 흘렀다.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한 유관순 열사는 한 달 뒤인 4월 1일 아우내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고, 192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괴물’, ‘우아한 거짓말’, ‘오피스’ 등으로 폭넓은 연기를 보여준 고아성은 ‘항거:유관순 이야기’(감독 조민호)를 통해 유관순 열사의 3.1 만세운동 이후의 시간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모두가 아는 위인을 연기한 고아성은 언론시사회와 인터뷰 등에서 번번이 눈물을 흘렸다. 촬영 당시를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먹먹하다는 고아성. 유관순 열사라는 무게에 짓눌릴 때도 있었지만 당시 그가 느꼈을 감정과 인간적인 면모를 생각하며 캐릭터와 자신의 간극을 메웠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준비하면서 시나리오를 거듭 읽게 되는데 한 번은 역할 이름을 지우고 읽어본 적이 있어요. 오히려 잘 파악되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낯선 공간, 사람이 빼곡하게 차있는 감옥에 들어갔을 때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구경당하기도 하죠. 적응하기도 전에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라고 외치는데 그런 과정들에 있어 ‘유관순’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접근하는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고아성과 감독이 생각한 유관순은 사람을 이끄는 리더다. 단순히 강한 카리스마로 좌중을 휘어잡는 것이 아닌 약해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감을 선택하는 리더다. 실존인물을 새로이 해석해 연기해야 했던 고아성은 “감독님께 힘들다고 솔직히 말해더니 ‘유관순이 되려고 하지 말고 옆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하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셨다. 그 뒤로 집중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맨 처음 시나리오에 감독님이 짧게 쓴 서문이 있었어요. 서문에 우리나라 위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리더들의 공통점이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이 잘 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거래요. 그 글을 읽고 리더에 대한 방향성이 생겼어요.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기보다 후회도 하고 고민을 주변에 공유하기도 하고. 감독님이 그런 걸 영화 속에 담으시려고 했고 저도 그렇게 방향을 잡았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유관순 열사라는 인물만의 영역이 아니고 리더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갖게 됐어요. 사람들을 이끌어 본 경험도 없고 리더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막연하게 고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강한 에너지로 이끄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영화는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 감옥에 있던 시간을 그리는 만큼 고문 장면이 불가피했다. 자극적으로만 표현되면 영화의 메시지가 전달될 수 없다고 판단한 감독은 최대한 가학적인 장면을 배재하고 흑백으로 담아냈다.

“영화는 흑백이지만 실제로 촬영할 때는 기술적인 완성도를 위해서 컬러로 완벽하게 찍은 상태를 만들어야했어요. 분장을 할 때도 꼭 실제 색을 맞췄어요. 촬영할 때는 컬러로 보니까 고문 장면이나 피가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흑백으로 보니까 훨씬 순화된 느낌이라 괜찮았어요.”

진중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고아성을 비롯해 다수의 여배우들이 함께 촬영하면서 정을 쌓기도 했다. 고아성은 “현장에서 모두 여자여서 학창시절 여자 반이었을 때가 생각났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공기가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후반부 면회 장면은 다 같이 호흡을 맞추고 감정을 쌓아간 후 직접 배우들이 대사를 만들었다.

“면회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 있었지만 구체적인 대사는 배우들이 많이 만들었어요. 감독님께서 순서대로 촬영하면서 점점 마음이 쌓이면 더 좋은 대사가 나올 것 같다고 미리 염두에 두셨어요. 그리고 감독님께서 힌트를 주셨어요. 실제 면회를 가면 밖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안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말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배우들과 회의하면서 대사를 만들었고 면회 장면이 탄생했어요.”

영화에서 유관순 열사는 ‘자유’에 관해 ‘내가 바라는 일에 내 목숨을 마음껏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역으로 데뷔해 어느덧 이십대 후반의 여배우가 된 고아성. 유관순 열사의 옆에서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표현한 고아성은 자신이 추구하는 연기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다.

‘항거’ 촬영을 마치고 고흐의 말을 접한 적이 있어요. ‘나 이상의 실재하는 어떤 것을 추구하기 위해 내 생명을 다 써도 좋다’는 식의 말이었는데 제가 연기한 인물과도 상통하는 맥락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자유라는 생각을 했어요.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위해 다 쓸 수 있는 것. 고흐가 그림을 그릴 때 여러 털실을 한 시간 동안 바라본 후에 그렸대요. 고흐의 그림과 그의 붓 터치를 보면 왜 그랬을지 이해가 되잖아요. 저도 배우로서 기댈 곳을 찾고 저만의 색을 갖고 싶어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