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이 만든 회사는? 테슬라 무너뜨린 발명왕 '이렇게 치졸했나…'
에디슨이 만든 회사는? 테슬라 무너뜨린 발명왕 '이렇게 치졸했나…'
  • 승인 2019.02.2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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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이 만든 회사가 화제가 되면서 동시대의 천재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의 갈등이 눈길을 끌었다. 

21일 에디슨이 만든 회사가 화제를 모으면서 에디슨의 일생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191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뒤바뀌게한 에디슨, 니콜라 테슬라 등 두천재 발명가 신경전에 얽힌 사연을 전했다.

에디슨은 자신의 조수에서 라이벌로 성장한 니콜라 테슬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에디슨은 잘 알려졌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천재 발명가’다. 이와 함께 니콜라 테슬라는 무선 통신기술, 라디오 등을 발명한 발명가이자 활동 당시 에디슨의 조수였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당시 에디슨은 철저히 니콜라 테슬라를 무시했고 니콜라 테슬라는 에디슨을 존경했다. 하지만 에디슨의 눈에 보이는 뒤통수 치기는 에디슨은 존경하고 있던 니콜라 테슬라 마음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다. 

니콜라 테슬라는 에디슨 전기 회사가 잦은 전기고장 때문에 고객들의 집이나 건물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자 자신이 해결해 보겠다며 에디슨에게 기회를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니콜라 테슬라 능력을 인정하고 있지 않던 에디슨은 성공한다면 5만 달러를 주겠다고 선심쓰듯 말했다. 니콜라 테슬라는 보란듯이 성공시켰지만 에디슨은 자신의 발언을 농담으로 치부하며 고작 연봉에서 10달러를 올려주겠다고 비아냥 거렸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 두사람의 신경전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는 발명 방식 때문에 충돌이 잦았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는 명언을 남긴 에디슨은 발명이 성공할 때까지 실험하는 스타일이었지만 니콜라 테슬라는 직관과 영감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가 극악 관계로 치달은 것은 니콜라 테슬라 눈부신 성장 때문이었다. 니콜라 테슬라가 교류 시스템을 발명하기 전까지 미국은 에디슨의 직류 시스템에 의존했지만 교류 시스템이 등장하자 에디슨 입지는 좁아졌다. 교류 시스템은 다른 도시까지 송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렴한 값에 전기를 보급할 수 있었다. 교류 시스템은 곧 미국 시장을 장악했고 니콜라 테슬라 성공으로 위기감을 느낀 에디슨은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 니콜라 테슬라를 맹비난했다.

언론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에디슨은 니콜라 테슬라 교류 시스템으로 전기 의자를 발명했다. 니콜라 테슬라 교류 시스템을 이용한 전기 의자를 사용해 위험성을 일리기 위함이었다. 물론 이미 대중적으로 자리잡은 교류 시스템에 니콜라 테슬라는 에디슨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발명가로 치켜 세워졌다. 

에디슨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고 테슬라의 시대가 열리는 듯 했다.  

그러나 이에 발끈한 에디슨은 발명품으로 승부를 보기 시작한다. 1893년 에디슨은 세계 최초의 영사기 키네토스코프를 발명했다. 이후 수백 편의 영화를 제작하는가 하면 자신의 발명품들을 빛보게 하기 위해 니콜라 테슬라 발명들이 투자받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했다. 또 니콜라 테슬라가 에디슨 회사에 기여한 발명품 역시 소유권을 주장하며 니콜라 테슬라 아이디어를 빼앗았다.

테슬라는 언론사를 통해 에디슨의 치졸함을 고발했다. 그러나 특허권이 별로 없던 테슬라는 점차 입지가 좁아졌다. 결국 에디슨은 실용적 발명품으로 500여 건의 특허권을 갖고 최고의 발명가로 인정받았지만 니콜라 테슬라 발명품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지며 투자받지 못했고 니콜라 테슬라는 에디슨의 그늘에 가려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삶의 질을 높이고 인류의 진보를 앞당긴 천재 발명가 에디슨과 테슬라는 불멸의 라이벌로 사람들에 회자되고 있다.  

[뉴스인사이드 임희진 기자/사진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