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사바하’ 이정재, 서사를 앞장세운 탄탄한 연기 내공
[NI인터뷰] ‘사바하’ 이정재, 서사를 앞장세운 탄탄한 연기 내공
  • 승인 2019.02.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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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로 한국 오컬트 장르의 새 지평을 연 장재현 감독이 4년 만에 신작 ‘사바하’로 돌아왔다. 신흥 종교 집단을 쫓던 박목사(이정재 분)가 의문의 인물과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며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 ‘사바하’는 불교와 기독교를 비롯해 다양한 종교관이 맞물리며 더욱 압도적인 서사와 강렬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거대한 진실로 향해가는 걸음걸음에는 섬세하게 관객을 이끈 이정재가 있었다. ‘도둑들’, ‘신세계’, ‘관상’, ‘암살’, ‘신과함께’ 등 매 작품 진한 족적을 남겨온 이정재는 ‘사바하’에서 한층 부드러운 연기로 캐릭터를 서사 뒤로 숨겨 영리하게 극의 완급을 조절했다.

“굉장히 자극적인 영화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실 수 있지만 보시면 박정민 씨가 연기한 정나한 캐릭터가 굉장히 안쓰럽고 짠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잘 나온 것 같아요. 감독님이 이야기 구조를 잘 짰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더라고요. 시나리오보다 영화가 더 좋았어요. 역시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는 후반작업이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꼈고, 감독님 믿고 가길 잘 했구나 싶어요. 미스터리 스릴러는 처음이고 촬영하면서 어느 정도 모른척하며 연기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수위조절이나 다른 캐릭터와의 조화가 잘 나온 것 같아요.”

개봉을 앞둔 심정을 묻자 이정재는 “다른 때보다 긴장이 덜 된다. 영화의 주제가 잘 나온 것 같고 연출도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다”며 감독을 향한 신뢰를 내비쳤다. 그동안 맡아온 캐릭터들이 진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면 ‘사바하’에서 이정재가 완성시킨 박목사는 개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관객의 시선을 담당했다. “이 영화에서 해야 할 역할은 미스터리 구조 안에서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를 잘 설명하는 것 같았다”는 이정재는 장재현 감독의 탄탄한 시나리오와 연출을 믿고 박목사 캐릭터를 만들어 갔다.

“실제로 박목사와 같은 일을 하는 분이 계세요. 감독님께서 저와 직접 만나는 건 추천하지 않았어요. 본인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사바하’라는 필터를 거쳐 저에게 설명해주셨어요. 실제로 이런 분이 계신다는 것에 힘을 받고 상상력을 더해서 만들어 갔죠. 종교연구소라는 것에 관해 전혀 몰랐어요. 잘못된 종교인에 대한 사건이 간혹 있잖아요. 저는 내부고발이나 수사로 인해 밝혀지는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을 따로 하시는 분이 계신다는 걸 알고 흥미로웠어요. 그분들도 사명감을 갖고 일하시면서 테러도 많이 당한다고 하더라고요. 도망도 다니고 수십 년 쌓아놓은 자료도 컨테이너로 옮기고. 그런 수고스러운 일이 많다고 들었어요.”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다뤄지진 않지만 박목사는 과거 남아공에서 가족을 잃고 신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박목사는 사이비 종교를 추적하며 ‘가짜’를 가려내는 동시에 ‘진짜’를 갈망하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믿음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님을 믿어왔는데 왜 나에게 시련을 주시나, 도대체 신은 정말 있는 건가’라는 생각에서 시작해 박목사는 다른 목사와 달리 진짜를 만나기 위해 가짜를 찾아다니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감독님과 나눴어요. 아마 박목사에게 그런 아픔과 고난이 있었기에 나한을 만났을 때 동질감을 쉽게 느꼈고 바로잡고 싶었을 거예요.”

감독의 전작 ‘검은 사제들’이 오컬트 색이 강했다면 ‘사바하’는 오컬트의 요소가 있지만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깝다. 극 초반 공포감을 자아내며 관객을 몰입하게 한 뒤 점진적으로 추리 요소들을 배치해 자연스레 다음 내용을 추리하게 만든다.

“고민을 가장 많이 한 부분이 단서를 어떤 단계로 어느 정도 노출해야 하는지였어요. 그런 부분은 시나리오대로 찍은 분량도 편집과정에서 순서를 조금 변형한 것도 있어요. 영화를 만드는 저희 입장에서는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어서 ‘이 정도는 관객이 알겠지’ 싶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좀 더 대중적인 관객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정보를 더 보여드리는 게 낫지 않나 싶은 고민이 있어서 지금의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요.”

90년대부터 정상의 자리에서 대중의 꾸준한 신뢰를 받아오기까지 이정재는 매번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해왔다. 이전 캐릭터의 답습을 피하기 위해 이정재는 장재현 감독이 시범보인 박목사를 기초삼아 캐릭터를 쌓아올렸다.

“박목사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사람이라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돌려서 말하는 습성이 있을 거라는 기본적인 설정으로 시작했어요.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의 반응을 체크하려는 눈빛도 있어요. 감독님이 시연할 때 독특한 말투가 있어서 제 안에 있는 걸 자꾸 꺼내서 쓰는 것보다 감독님이 만든 것들을 잘 받아서 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리허설 일정도 더 잡았고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감독님이 직접 하는 걸 다 찍었어요. 함께 톤을 맞춰갔고 집에 가서는 감독님이 연기한 걸 다시 보면서 포인트를 잡아냈죠. 연기를 오래했지만 자꾸 내 톤으로 연기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을 때가 있어요. ‘대립군’을 할 때는 저희 회사에서 신인배우들이 레슨 받는 학원이 있는데 저도 같이 가서 20회 정도 레슨을 다시 받은 적도 있어요. 이번에는 연기 지도 선생님보다는 감독님에게 배우면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이정재의 새로운 시도와 감독의 열정이 더해져 완성된 ‘사바하’. 최근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 감독은 “뼈를 깎으며 쓰고 피를 토하며 찍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예민할 수 있는 종교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정재는 “영화를 보시면 모든 종교단체나 종교인이 잘 만들었다고 하실 만 하다”며 힘주어 말했다. 실제 기독교신자이기도 한 이정재는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 종교에 관해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잘 믿어야하는 건데 자칫 잘못된 믿음과 생각 그리고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런 것들을 조심하고 살아야한다”는 말을 남겼다.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