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뺑반’ 류준열 “현실은 생각보다 드라이”…진짜 감정 만들어내는 그의 생각
[NI인터뷰] ‘뺑반’ 류준열 “현실은 생각보다 드라이”…진짜 감정 만들어내는 그의 생각
  • 승인 2019.01.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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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소셜포비아’부터 ‘더 킹’, ‘택시운전사’, ‘리틀 포레스트’, ‘독전’에 이르기까지 류준열은 매 작품 새로운 얼굴로 관객과 마주했다. 다소 빠른 템포로 다작을 해왔지만 어느 한 작품도 세밀한 감성을 놓치지 않고 그만의 색을 담아냈다. 2019년 류준열은 ‘뺑반’으로 새롭게 관객을 만난다. 

‘차이나타운’으로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은 한준희 감독의 차기작 ‘뺑반’은 통제불능 스피드광 사업가를 쫓는 뺑소니 전담반 ‘뺑반’의 고군분투 활약을 그린 범죄오락액션 영화다. 류준열은 뺑소니 전담반의 에이스인 순경 서민재로 분했다. 서민재는 어딘가 허술해 보이지만 차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을 지닌 인물로 카체이싱 액션부터 드라마틱한 캐릭터 반전까지 다양한 재미를 선사한다. 

“처음에 시나리오에서 민재는 어두운 과거가 있고 뒤에 큰 사건도 있어서 전체적으로 울적하고 다운된 캐릭터였어요. 그 자체만으로도 어두운 과거가 있다는 게 느껴졌는데 반대로 밝게 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감독님께서 제가 제시하는 것들을 좋아했어요. 대화가 잘 통해서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과정이 부드러웠죠. 영화를 1부와 2부로 나눠서 본다면 1부에서 울적하던 아이가 2부에서 갑자기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면 작위적으로 보일 것 같아서 이를 경계했어요. 그리고 경찰에 관한 이미지도 실제 친한 형이 순경이라 힌트를 얻으려고 했어요. 그 형을 보면서 제가 생각하던 경찰의 이미지가 변한 것 같아요. 이전에는 뭔가 터프하고 범인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날카로운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면 그 형을 보고 통해 들은 이야기에는 친절한 의미가 들어 있었어요. 경찰이라는 직업은 친절함이 중요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녹이면서 지금의 민재가 나온 것 같아요. 그들도 친절함에 대한 강박이 있더라고요. 감정노동을 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지점이 흥미로웠어요.”

극 초반 서민재는 뺑소니 사건 현장에서 천재적인 감각으로 용의자를 추려낸다. 정형화되지 않은 독특한 캐릭터로 시선을 끌며 시작한 민재는 정재철(조정석 분)을 추격하던 중 큰 사건을 겪고 캐릭터의 톤을 달리한다. 한 영화에서 다양한 연기를 보여줘야 했던 류준열은 후반부 모습은 좀 더 감정적인 톤으로 관객들의 몰입을 이끈다. 

“캐릭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민재의 캐릭터 변화가 있기 전의 시점을 잘 만들어내면 후반부는 관객들이 잘 봐주실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감독님도 1부와 2부를 나눠서 순차적으로 촬영했어요. 원래는 1부의 민재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가려는 욕심이 있었는데 이성민 선배의 연기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성민 선배의 모습이 너무 뭉클했어요. 그래서 이후의 민재는 솔직히 느낀 감정을 표현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전작들에서 송강호, 최민식, 조진웅 등 걸출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온 류준열은 ‘뺑반’에서 공효진, 조정석과 함께 했다. 두 배우 모두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며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아 온 이들이기에 류준열은 두 사람과 함께 하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공효진 선배님은 본인만이 갖고 있는 캐릭터가 있잖아요. 관객들도 너무 사랑하고 본인의 길에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프로듀사’ 때 연기를 옆에서 봤는데 독특한 거예요. 처음에는 NG인가 싶었는데 계속 연기를 이어가고 감독님도 안 끊더라고요. 그리고 OK 사인이 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서 ‘이렇게 해도 되나’ 생각했죠. 그리고 브라운관으로 보니까 ‘아, 이래서 그렇게 했구나’라는 걸 알았죠. 본인만의 캐릭터를 해석하고 나가는 게 리스펙트 하는 지점이죠. 본인의 이름만으로 캐릭터가 설명되는 게 너무 멋진 일 같아요. 정석이 형도 조정석만 할 수 있는 형만의 캐릭터가 있어요. 모두가 사랑하는 배우와 함께 하면서 비법을 알고 싶었죠. 현장에서 그런 것들을 느끼며 재밌게 촬영했어요. 형은 굉장히 섬세한 사람 같아요. 어느 정도까지 섬세한 배려인지 그 마음을 당시에는 못 느끼는 것 같아요.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문득 그런 배려가 생각나는 사람이고 배우였어요. 최근에 다시 영화를 홍보하고 보면서 ‘형이 당시 나에게 이런 말을 한 게 이런 연기를 끌어주려고 그런 거구나’ 라는 게 문득 떠올라요. 진짜 조정석의 매력이고 힘이죠. 같이 하는 배우가 이래서 즐겁고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는 거구나 생각했어요. 진짜 고수고 베테랑인 것 같아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휘몰아치는 ‘뺑반’에서 류준열이 가장 경계한 것은 감정의 과잉이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꺼내는 것으로 캐릭터 구축을 시작하는 류준열은 현실은 생각보다 건조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개성 강한 캐릭터가 현실에 발을 붙일 수 있게 했고 그만의 서민재를 스크린 속에서 숨 쉬게 만들었다.

“좋아하지 않는 건 안하려고 애를 써요. 영화도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보는데 보통 드라이하고 감정적으로 극에 치닫는 것보다 알 수 없는 감정을 각자 해석할 수 있는 영화에 더 좋은 느낌을 받아요.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도 제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것으로 시작해요. 감정이 과잉되고 표면적으로 드러났던 적이 언제인가, 펑펑 울었던 적이 언젠가 보면 생각이 잘 나지 않더라고요. 최근에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펑펑 울긴 했는데 그 이전에는 거의 생각이 나질 않아요. 카페나 지하철에서 사람을 관찰해도 대부분 표정이 드라이해요. 혼자 있거나 둘이 대화를 해도 그렇게 표정이 크지 않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영화 속 민재와 닮아있고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도 닿아있어요. 다들 드라이한 삶을 살고 있고 남들의 기대 속에서 나름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런 면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촬영을 하면서 재밌었던 건 민재가 우는 장면이 있는데 눈물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숙였어요. 촬영 감독님이 밑에서 카메라로 담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더라고요. 궁금해서 왜 안 찍었느냐고 물었더니 민재는 그런 감정이 더 나오면 안 된다고 했어요. 제가 분석한 것들과 제작진도 같은 생각이라서 그 부분에서 희열을 느꼈고 함께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과하지 않은 현실적인 감정과 연기를 추구하는 것처럼 그가 배우로서 걸어가는 방향도 일맥상통하다. 높아지는 대중의 기대에 따라 주연 배우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느냐는 물음에 그는 ‘책임’이라는 단어 대신 ‘몫’이라는 단어로 바꿔 답했다.

“개인적으로 책임이라는 단어를 안 좋아해요. 필요하고 중요한데 그 단어가 무겁더라고요. 책임이라는 말보다는 몫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사용해요. 영화 작업을 하면 100명, 200명이 되는 사람들이 톱니바퀴 속에서 각자가 맡은 몫이 있더라고요. 잘하면 훌륭한 영화가 나오는 거고 누군가 못하면 그 부분에 구멍이 나고 삐끗 하는 것 같아요. 저는 딱 제 몫을 하고 싶어요. 그걸 넘는 것도 분수에 안 맞는 것 같고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