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말모이’ 유해진, 그냥 ‘배우’로 불리는 것…묵묵히 걷는 배우의 길
2019.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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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러’와 ‘완벽한 타인’으로 2018년을 장식한 유해진이 2019년의 시작을 ‘말모이’와 함께 한다. ‘택시운전사’의 각본을 쓴 엄유나 감독의 첫 연출작 ‘말모이’는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 까막눈 판수(유해진 분)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 분)을 만나 사전을 만드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매 작품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들며 인간미를 더해온 유해진은 ‘말모이’에서도 서서히 따뜻해지다 결국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영화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강한 항일 감정을 일으키기보다 우리의 말과 글, 정신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희생과 진심에 집중한다. 주연상 욕심보다 집에 있는 조연상이 그렇게 좋다는 그는 ‘말모이’에서도 특별한 영웅이 아닌 평범한 우리의 모습을 대변한다. 

“조선어학회에서 자료를 강탈당할 때 촬영 당시도 그렇지만 끝나고 여운을 잊지 못해요. 넋이 나간 모습들을 보면서 느낀 게 있어요.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말을 꺼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겠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실제 당시 사람들의 희생을 많이 느꼈어요. 사람이야기라는 것에 끌렸고 또 다른 독립운동이잖아요. 우리의 말과 글, 정신을 지키려고 했던 또 다른 모습의 투쟁에 끌렸어요. 영화 속 대사에도 있지만 말이라는 건 우리의 정신이잖아요. 그 말과 정신을 지키려고 했던 희생이 신선했고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유해진이 연기한 판수는 까막눈에 매사 부정적인 인물이다. 아들의 학비를 위해 소매치기까지 시도한 그는 우연한 계기로 조선어학회의 일을 돕게 되고 글을 배우고 그들의 마음을 느끼며 서서히 변화한다. 유해진은 초반 유쾌하고 얄미운 모습부터 후반부 묵직한 감동까지 다양한 톤의 연기를 소화하며 관객들을 극의 중심으로 이끈다.

“보는 분들이 판수의 변화 과정을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게 저에게 중요했던 거 같아요.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기 위해 조선어학회에 들어갔고 글을 모르면 쫓겨나게 생겨서 배운 거지만 글이 읽히니 재미있고. 그러면서 변화하는 과정이 있어요. 사전 만들기에 동참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내 아들이 일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보고 이름을 지켜주고자 했던 마음이 컸어요. 처음부터 엄청난 사명감을 갖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그려진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해요.”

‘말모이’에서 유해진은 ‘소수의견’ 이후 3년 만에 윤계상과 한 작품에서 만났다. 극중 두 사람은 악연으로 만나 서로를 배척하지만 결국 마음으로 소통하고 서로를 변화시킨다. 유해진은 다시 만난 윤계상과 작품 속 호흡은 물론 인간적인 유대를 다졌다.

“(윤계상이) 진짜 깊이가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가장 큰 변화는 ‘소수의견’ 당시에는 맥주 두 잔을 마셨는데 지금은 소주를 마셔요. 너무 반가운 변화예요(웃음). 뭐랄까 같이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내 편이 된 느낌이라 반가웠어요. 그 동안 할 수 없던 이야기도 더 많이 하고, 계상이 본인의 깊이도 더 생기고 저와의 관계도 나름 더 깊어진 것 같아요.”
   
 

‘말모이’ 각본을 직접 쓴 엄유나 감독은 처음부터 유해진을 판수 캐릭터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덕분에 판수 캐릭터는 유해진에게 딱 맞는 맞춤옷과 같았다. 과거 ‘택시운전사’, ‘국경의 남쪽’에서 연출부, 각본으로 엄유나 감독과 인연을 쌓은 유해진은 오랜 시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성과를 낸 감독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택시운전사’를 할 때인데 제작사 대표님이 저를 두고 쓰는 게 있다고 언뜻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리고 책을 받았는데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 실제로 저를 두고 썼다고 하더라고요. 감독님이 뚝심이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항상 귀가 열려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쉽지 않았을 거예요. 본인이 쓰신 이야기라는 것도 있지만 그만큼 공부가 되어있어서 열려있었던 거 같아요. 작업이 점점 더 재밌었어요. 감독님이 ‘국경의 남쪽’에서 연출부였는데 ‘택시운전사’ 각본을 썼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공백도 길었고 지금까지 현장에 있다는 게 배우도 스태프도 쉽지 않은 거라 놀랐죠. 그리고 이 작품을 연출한다고 해서 더 놀랐어요. 대단하다는 생각이 있죠.”

단역으로 시작해 오랜 기간 차근차근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유해진. 어느덧 그는 대한민국 영화계 중심에 서있는 배우가 됐다. 단독 주연으로 7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럭키’를 비롯해 ‘공조’, ‘택시운전사’, ‘완벽한 타인’ 등 꾸준히 작품을 내며 관객과 소통한 유해진에게 주연배우로서의 책임감을 묻자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대중을 위한 대중영화인데 대중이 등을 돌리며 그만큼 상처받는 것도 없다”며 “두렵고 갈수록 부담은 갖고 있지만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만약 작품이 끌리는데 저에게 안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하는 편이에요. 그런 생각에 피하고 싶진 않아요. 분명 ‘유해진이 왜 그런 작품을 했지?’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을 거예요. 그러면 막 ‘옷을 잘못 입은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러다가 또 같은 걸 하면 ‘왜 같은 옷만 입느냐’고 해요. 벗었다 입었다 하는 거죠(웃음). 저는 제가 끌리는 게 있으면 두렵지만 가려고 해요. 지금까지 이 일을 할 수 있던 이유도 그거인 것 같아요.”

배우 한 사람의 변신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닌 작품에 녹아드는 것, 좋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것에 마음을 뒀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 유해진의 배우 생활은 평소 그가 좋아하는 걷기, 자전거 타기와 같은 취미와도 닮아 있다. 찬 공기를 느끼며 걷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것처럼 그는 그저 ‘배우’라고 불리는 것만으로 좋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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