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마약왕’ 송강호, ‘송강호’라는 이름의 무게
[NI인터뷰] ‘마약왕’ 송강호, ‘송강호’라는 이름의 무게
  • 승인 2018.12.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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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배우’, ‘1억 배우’, ‘국민배우’ 등, 송강호의 이름 앞에는 신뢰의 수식어가 가득하다. 실제 깡패를 섭외했냐는 말을 들었던 ‘초록물고기’부터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 ‘괴물’, ‘놈놈놈’, ‘변호인’, ‘밀정’, ‘택시운전사’ 등 다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수많은 작품에서 송강호는 그의 가치를 증명했고 이름의 무게를 견뎌왔다.

최근 몇 년간 서민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사랑받아온 송강호는 거칠고 과감했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에게도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마약왕’에서 송강호는 한 인물의 소박한 모습부터 욕망을 향해 질주하며 파멸에 이르기까지 그간 보여준 ‘배우 송강호’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근본 없는 밀수꾼에서 전설의 마약왕이 된 이두삼을 통해 그는 인간의 본질과 시대의 그림자에 접근한다.

“나쁜 사람을 비호할 생각은 없었고요(웃음). 이 영화의 소재가 마약이고 마약세계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본질, 비뚤어진 욕망, 삶의 왜곡된 집착이랄까, 결국 파멸에 이르는 한 남자의 경로를 따르는 영화입니다. 전반부는 경쾌하게 가다가 후반부는 생경하고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던 양식과 구성이라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분도 당황스러워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몰입되는 느낌이 들어서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그동안 다양한 캐릭터를 체화하며 관객에게 전달한 그였지만 ‘마약’이라는 소재는 접근도 표현도 결코 쉽지 않았다. 막연한 상상력을 총동원했지만 현실감 있게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을 지니며 인물을 만들어 갔다. 평범한 가장으로 시작하는 이두삼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그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자식을 위해 희생했던 대표적인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자식의 환경을 먼저 생각하고 정말 열심히 살아오셨죠. 이두삼이라는 인물도 나쁜 사람이지만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있었을 거란 말이죠. 이두삼이 처음부터 악한 모습으로만 나왔다면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초반부가 현실적이어서 이두삼이라는 인물이 괴리감이 안 느껴지게 전달됐어요. 마약이라는 것도 언제든 주변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무서운 거예요. 엔딩의 경우도 그런 의문을 던져주는 거죠.”

   
 

극 초반 경쾌한 리듬으로 흘러가는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진중하고 파격적이다. 특히 10분에 걸쳐 진행되는 이두삼의 광기어린 모습을 담은 장면은 송강호가 왜 대체 불가한 배우인지 여실히 증명한다. 송강호는 당시를 떠올리며 “본능적으로 체화되는 느낌으로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극 연기에 대한 생각도 많이 났다”며 “우민호 감독의 과감한 선택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내부자들’에서 보여준 우민호 감독의 힘 있는 연출에 매료된 송강호는 ‘마약왕’을 위해 힘을 합쳤고 역대급 장면들이 탄생했다.

“‘내부자들’을 재밌게 봤어요. 연출이 간결하면서 힘이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어요. 그런 영화는 더 재밌게 하려다 보면 군더더기가 생기는데 그렇지 않아서 좋았어요. 아주 재밌게 두 번씩 본 기억이 나요. 인연이 묘한 게 17년에서 18년 전쯤인데 해외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님과 제가 대상 시상을 하는데 수상자인 유학생이 한국에 돌아가서 시상식에 불참했어요. ‘마약왕’ 때문에 우민호 감독을 만나서 제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감독이 ‘그때 그 시상식의 대상이 바로 접니다’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것 때문에 ‘마약왕’을 하게 된 건 아니지만 반가웠습니다(웃음).”

‘마약왕’에는 배두나, 조정석, 김소진 등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함께 해 더욱 기대를 모았다. ‘관상’의 조정석, ‘괴물’의 배두나 외에도 송강호는 함께 한 후배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 동생들 같아요. 조정석 씨는 제가 친동생처럼 생각해서 그런지 괴롭히고 장난도 쳐요. 김재명 씨도 둥글둥글한 동생 같고 두나 씨는 막내 같죠. 호흡을 맞출 때 눈빛만 봐도 맞는 느낌이에요. 이희준, 조우진 씨도 정말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둘 다 대구 출신인데 ‘대구에서 이렇게 좋은 배우가 동시에 나오다니’하는 생각도 있고 좋더라고요. 실제로 둘 다 증명하고 있잖아요.”

송강호와 함께한 많은 후배 배우들이 그의 연기 열정, 전체를 보는 시야에 존경을 거듭했다. 끊임없는 칭송을 열거하자 민망한 듯 웃던 그는 함께 하는 연기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분하고 감사한 마음은 있지만 그것보다 늘 깨어있고 부족하지만 새롭게 시도하고 도전하는 배우이고 싶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후배들이 좋게 이야기한 부분은 제가 특별히 기술이 뛰어난 건 아니고 다른 배우, 선배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어요. 좋은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과의 앙상블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연극할 때부터 선배, 스승들이 ‘관객들은 대사를 들으러 오는 게 아니라 대사와 대사 사이를 보러 온다. 그게 연기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액션보다 리액션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 같아요. 상대방의 대사와 연기에 귀를 열고 눈을 보지 않으면 나올 수 없죠. 결국 상대방의 연기를 존중해야 나의 리액션이 나오는 거죠. 그게 좋은 연기라 생각해요.”

송강호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대표 배우다. 모두가 힘을 합쳐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질적인 향상을 성취한 것에 대해 그는 반가운 마음과 함께 산업화되며 사라진 풋풋함에 대한 아쉬움도 느끼고 있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한국영화를 향한 기대와 ‘송강호’라는 이름의 무게를 그는 ‘건강한 부담감‘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대중의 기대로 작품 선택이 신중해지는 건 사실이에요. 부담감도 있지만 ‘건강한 부담감’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신중해지는 것에 있어서는 ‘또 흥행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지’라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허락하는 한 늘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고 싶은 신중함입니다.”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