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협상’ 손예진,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유효한 충무로 대표 배우
[NI인터뷰] ‘협상’ 손예진,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유효한 충무로 대표 배우
  • 승인 2018.09.19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 모두에서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이 범람하던 2000년대 초반, 손예진은 청순한 20대 여배우를 대표했다. 장르가 다양해지고 이전과는 궤를 달리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생겨나는 지금의 영화계에서 손예진은 여전히 독보적인 세(勢)를 과시하고 있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손예진은 안주하지 않고 겹겹이 새로운 모습들을 쌓아 올렸다. 덕분에 그녀는 청순한 역은 물론 어떤 캐릭터를 맡아도 그 기대에 부응했다. 올해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이어 세 번째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는 손예진. 인질범과 협상가의 일생일대 협상을 다룬 영화 ‘협상’에서 손예진은 길었던 머리를 과감히 자르고 협상가로서 새로운 얼굴을 선보인다.

Q. 올해 벌써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이어 세 번째 작품이다.

A. 시기적으로 작품들이 붙어있어서 한 편으로는 지겨워하실까봐 걱정인데 장르와 캐릭터가 많이 달라서 다른 재미로 봐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죠. ‘협상’은 촬영을 마치고 일 년 만에 개봉이에요. 그 사이 다른 작품도 찍었잖아요. 개봉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내가 경찰이 안 어울리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덜컥 겁이 나긴 했어요. 아무리 표현하고자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보는 시선은 다른 거니까. 그리고 저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멜로를 좋아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어서 며칠 전부터 걱정되고 무섭더라고요.

Q. 작품 선택의 기준이 궁금하다.

A. 배우이면서 관객이기도 해서 보고 싶은 것을 선택해요. 어느 지점이든 새로운 도전이 있는 작품을 보고 싶기도 하고요. ‘이런 캐릭터를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할까’라는 생각을 하는데 사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고 소위 ‘대중적’이라고 하는 것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재밌으면서 관객도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은 작품을 선택하는 것 같아요.

Q. ‘협상’에서 처음으로 경찰이자 협상가 캐릭터를 맡았다. 어떻게 접근하고 만들어갔나.

A.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고 너무 새로웠어요. 협상을 소재로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끝까지 속도감과 긴장감을 느끼며 읽었어요. 그 안에서 하채윤 캐릭터는 굉장히 능동적이었고 지금까지 보지 않은 느낌이었어요. 막상 하려니까 경찰이 되어야 하잖아요. 경찰복을 입은 제 모습이 어울릴지, 캐릭터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사실 다음 작품 때문에 머리를 길렀어야 했는데 긴 머리를 묶는 그림은 잘 그려지지 않았어요. 과감히 머리를 잘랐죠. 머리카락이야 나중에 붙일 수 있잖아요(웃음). 전문직 여성이 주는 이미지에서 너무 벗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전형적으로만 비춰지고 싶지는 않았어요. 관객들이 하채윤의 시선으로 따라가야 하니까 인간적인 모습도 생각했죠. 어떤 상황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는 건 비현실적이고 그런 캐릭터가 매력적이라고 생각지 않거든요. 전문적이고 직업적 사명감을 보여주되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마음이 약해지는 지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Q. 극 중에서 민태구를 앞에 두고 감정을 억누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역시 손예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촬영 당시는 어땠나.

A. 동시에 끊지 않고 촬영을 많이 했어요. 그래야 주고받으면서 리얼한 모습이 나올 것 같았어요. 그 장면도 리허설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모르고 있을 때의 긴장감이 있잖아요. 그게 이번에 저에게 잘 맞았던 거죠. 이원촬영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미리 촬영한 영상을 보며 연기하는 것과 동시에 촬영하는 건 긴장감의 정도가 다르잖아요. 날 것의 연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죠. ‘국제시장’에서 이산가족 상봉하는 장면이 이원촬영으로 진행됐는데 당시 감독님이 조감독이었어요. 그 경험을 살린 거죠. 

Q. 제한된 공간에서 비슷한 장면들이 반복된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경 쓴 부분이 있나.

A.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데 몸으로 연기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잖아요. 하나하나 디테일이 중요한 영화였어요. 다른 때보다 대사도 많았고요. 상황들이 하채윤의 대사로 설명되어야 하는 것도 많아서 기술적인 부분도 필요했어요. 연기를 준비하고 접근하는데 있어 이전에는 대사보다 얼굴과 눈빛을 중요시했다면 이번에는 대사의 톤과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동일한 장소에서 똑같이 찍다보니 변주가 필요했던 거죠. 최선의 표현을 위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Q. 하채윤은 극중 조직 안에서 약해지지만 끝까지 본인의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그런 모습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통쾌함을 선사할 것 같다.

A. 하채윤은 기본적으로 정의로운 인물인 것 같아요. 우리는 으레 무언가 아님을 알고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면에서 하채윤은 뜨겁고 끝까지 정의를 외치는 인물이에요. 사건이 하나하나 벗겨질 때마다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닥치는데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짠한 거죠. 오히려 완벽하게 모든 걸 처리했다면 비현실적이었을 거예요. 그 과정 안에서 얼마나 뜨겁게 최선을 다하느냐를 보여주는 거죠.

   
 

Q. 손예진은 매 작품 도전을 거듭하는 배우다. 터닝 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 있나.

A. 터닝 포인트는 항상 있었어요. 한창 이십대 초반에는 멜로 이미지가 있었죠.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작업의 정석’에서 확 깼어요. 시나리오를 너무 재밌게 봤는데 저는 제 이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배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작품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다들 너무 의외라고 하고 사무실에서도 ‘이걸 한다고?’라고 했어요. 그 작품 전까지는 다들 왜 매번 아픈 역만 하냐고 했어요(웃음). 그때 이십대 여배우의 한계였어요. 다양하지 않았죠. 그리고 ‘아내가 결혼했다’가 새로운 지점이었죠. 그때 저는 스물여섯이었는데 아내 역을 하고 파격적인 설정이 있었죠. ‘외출’도 마찬가지예요. 도전에 대해서 엄청난 다짐을 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그런 과정을 겪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감이 붙은 걸 수도 있고 새로운 것에 대한 재미를 많이 느낀 것 같아요.

Q.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A. 호평을 받든 비평을 받든 자양분이 되는 것 같아요. 실패에서 사실 더 많이 얻는 것 같아요. 성공 후에는 이를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따르죠. 영화적으로 연기적으로 인정받았지만 적은 관객이 본 작품에 대해서 ‘그래도 망했잖아’라고 하실 수도 있어요. 그런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지점 같아요. 어쨌든 저희는 결과로 판단되는 직업이니까. 계속 변신만 시도하고 망했다면 이 자리에 없었겠죠. 그래서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 어깨가 무거운 것도 사실이에요.

Q. 지금 손예진은 모든 후배 여배우가 선망하는 위치에 있다. 앞으로도 배우로서 지켜가고 싶은 가치나 타이틀이 있다면.

A. 영화를 잘 봤다는 이야기, 이번에도 뭔가 새로웠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듣고 싶어요. ‘저번과 너무 똑같은데’라는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아요. 계속 궁금하고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고 극장을 찾아오게끔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쨌든 작품이 쌓일수록 새로워야 한다는 고민이 있죠. 아직 하지 않은 것들이 많고 재밌으니까 저는 계속 변하고 싶고 다른 캐릭터로 새로운 감동을 드리고 싶어요. 그게 저의 목표인 것 같아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