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그는 누구? “독립운동가…이토 히로부미 암살 관여 혐의 받기도”
도산 안창호, 그는 누구? “독립운동가…이토 히로부미 암살 관여 혐의 받기도”
  • 승인 2018.09.1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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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를 향한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안창호는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 1899년 고향 강서에 한국 최초로 남녀공학의 점진학교를 세우는 한편 황무지 개척사업을 벌였다.

이후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노동을 하면서 초등과정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교포들의 권익보호와 생활향상을 위해 한인공동협회를 만들어 공립신보를 발간했다.

그 후 을사조약(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906년 귀국, 1907년 이갑·양기탁·신채호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해 대한매일신보를 기관지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구에 태극서관을 세워 출판사업을 벌이고 평양에 도자기회사를 설립하여 민족산업육성에 힘쓰는 한편 평양에 대성학교를 설립하고 청년학우회를 조직해 민족의 지도자 양성에 힘쓰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펼쳤다.

특히 1910년에는 1909년에 있었던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사건에 관련되었다는 혐의 때문에 신민회 간부들과 함께 개성헌병대에서 3개월간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또한 1913년에는 흥사단을 조직,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가서 임시정부 조직에 참가하여 내무총장·국무총리대리·노동총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뉴스인사이드 김준희 기자/사진=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