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독전’ 류준열, 쉬운 무기 버리고 선택한 진짜 감정 연기
[NI인터뷰] ‘독전’ 류준열, 쉬운 무기 버리고 선택한 진짜 감정 연기
  • 승인 2018.05.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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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열은 또래 배우 중 가장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배우다. 2012년 단편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한 류준열은 2015년 ‘소셜포비아’로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얼굴을 알렸다. 이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통해 폭발적인 사랑을 받게 된 류준열은 이후 모두가 알다시피 매 작품 새로운 얼굴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아직은 본인의 연기가 부끄러워 잘 보지 못한다지만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그는 관객들에게 충분한 신뢰를 줬다. 최민식, 송강호, 유해진 등 걸출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흔들리다 제 걸음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독전’(감독 이해영)에서 류준열는 또 한 번 그의 영역을 넓혔다. 

‘독전’은 아시아를 지배하는 유령 마약 조직의 실체를 두고 펼쳐지는 독한 자들의 전쟁을 그린 영화다. 형사 원호(조진웅 분)와 조직에 버림받은 락(류준열 분)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과 조우하며 조직의 실체를 쫓는다. 얼핏 거침없이 몰아치는 범죄오락영화 같지만 그 속에 놓인 인물들의 정서는 조금 다르다. 특히 류준열이 연기한 락이 그렇다. 락은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을 눈빛에 담는다. 뜨겁게 몰아치는 영화에서 류준열은 서늘한 정서를 유지한다. 

“연기를 하고 감정을 쌓아가면서 항상 가슴 속에 마지막 장면을 두고 촬영했어요. 락은 전사가 없어서 궁금했어요. 어떤 사람인가를 찾아가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락이 외로움과 싸우는 시간이 중요했던 거 같아요. 자신이 누군지도 잘 모르는 인물을 연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류준열은 ‘독전’에서 이전에 보여주던 그의 연기와 궤를 달리했다. 힘이 들어간 대사와 행동이 아닌 절제된 표현들로 감정을 전달한다. 배우로서 손발이 묶인 상태와 마찬가지였지만 그렇기에 더욱 감정에 집중할 수 있었고, 진한 캐릭터 사이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락이라는 인물은 말도 없고 감정표현도 많지 않아요. 그래서 고민이 많았고 그런 부분이 화면에 잘 나와서 전달이 될지 초반에 이견이 있었어요. 저는 말로 표현하는 걸 좋아해서 표정과 눈빛만으로 전달하는 지점이 어려웠어요. 그런데 연기를 하다 보니 그 맛을 알게 됐어요. 사실 대사라는 건 배우에게 있어 쉽고 편한 무기일 수 있어요. 그걸 막으니 감정에 충실한 연기를 하게 됐어요. 실제로 촬영하면서 감정적으로 집중이 흩어지면 바로 ‘NG’라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리고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을 땐 ‘OK’ 소리가 나왔어요. 초반에는 감독님이 시간이 없어서 그냥 넘어가는 건가 싶었는데 실제로 진웅 선배님과 눈빛으로 감정을 주고받을 때도 서로 통했다는 느낌이 들 때면 감독님이 ‘OK’를 하시더라고요. 짜릿했어요.” 

‘독전’을 통해 류준열은 새로운 연기의 재미와 맛을 느꼈다. 이는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원호와 락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이 교차하며 극의 긴장감을 높여간다. 영화적 장치로 소모될 수도 있는 캐릭터들은 배우의 열연과 감독의 연출로 각기 생명력을 얻는다.

“배우 분들도 그렇지만 감독님이 대단하시죠. 본인이 쓰고 만든 캐릭터지만 모두 가져갈 순 없어요. 저희 영화는 다 가져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감독님이 배우와 캐릭터를 아꼈어요. 사실 다 가져가지 않으면 편할 수 있어요. 감독님이 모든 걸 바치고 애를 많이 썼어요.”

   
 

‘독전’에서 캐릭터의 맛이 사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진하림(김주혁 분), 락, 원호 세 명이 처음으로 모인 장면이다. 원호는 락을 이용해 마약조직 임원 선창으로 가장해 아시아 최대 마약 시장의 거물 진하림을 만난다. 곧이어 원호는 진하림으로 가장해 또 다시 락과 함께 선창(박해준 분)을 만나 거래를 진행한다.

“프로들이에요. 저는 진짜 선수들 사이에서 재밌게 봤어요. 전체 리딩 할 때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예상이 돼요. 그때는 드라이하게 하시더라고요. 진하림과 원호가 만나는 장면은 락이 두 사람을 관찰하는 시간이면서 배우 류준열이 두 선배를 관찰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열연을 펼쳐주시더라고요. 두 분이 대화도 많이 안하셨던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촬영했어요. 세트에 한 번 들어가면 일주일에서 2주정도 촬영하는데 처질 수밖에 없어요. 힘든 공간이에요. 그런데 불꽃 튀는 현장이 됐고 재밌게 찍었어요. 선배가 농담으로 ‘너는 하는 거 없이 앉아있냐’라고 했는데 그 안에서 선배들 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죠.”

‘독전’은 지난해 우리 곁을 떠난 故 김주혁의 유작이다. 영화에서 김주혁은 어느 때보다 진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류준열은 “차분하고 조용하신 분이었다.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따뜻하게 받아주셨다”며 “연기할 때는 완전 돌변하셨다. 돌아보면 선배는 정말 오래 연기하셨다. 괜히 그렇게 좋은 배우가 아니구나 싶었다”고 그를 추억했다.

지난해 3편의 작품이 개봉했고, 올해는 벌써 ‘리틀 포레스트’, ‘독전’ 두 편이 개봉했다. 유지태와 함께 한 ‘돈’은 촬영을 마쳤고, 현재 공효진, 조정석과 함께 ‘뺑반’을 촬영 중이다. 충무로의 끊임없는 러브콜에 류준열은 어느 때보다 바쁘게 작품에 매진하고 있다. 그가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가장 큰 기준은 ‘이야기’다. 류준열은 “하고 싶은 역할이나 함께 하고 싶은 배우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다”며 “다행히 그동안 좋은 선배님과 좋은 작품을 하게 됐다. 그들과 비슷한 안목으로 같은 걸 느낀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몇 년 사이에 누구보다 큰 성과를 거둔 류준열은 지난 몇 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그가 가야할 길을 정비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가 바라는 건 대단한 사명감보다는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관계를 맺고 과정을 쌓아가는 것이다.

“원하는 방향은 딱히 없고 하나 있다면 작품을 계속 하는 게 바람이었어요. 다행히 계속 찾아주시고 관객 분들, 관계자 분들 모두 예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영화를 찍는 배우라는 것이 대단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의미냐면 한 작품을 찍으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저녁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과정의 재미로 계속 연기를 하는 것도 같아요. 어떤 선배님은 촬영을 마치고 저녁에 맥주 한 잔할 때가 진짜 기분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소소한 재미로 영화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영화를 찍으며 사람을 만나고 추억을 회상하는 과정들이 정말 재밌는 것 같아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