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바람 바람 바람’ 이엘 “외형 아닌 내면의 감정 보여주는 연기 시도”
[NI인터뷰] ‘바람 바람 바람’ 이엘 “외형 아닌 내면의 감정 보여주는 연기 시도”
  • 승인 2018.04.0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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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로 특유의 유머 코드와 말맛을 살린 이병헌 감독이 대담한 캐릭터 플레이를 다시 한 번 펼친다. ‘바람 바람 바람’은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라는 카피처럼 과감한 설정과 코믹한 전개로 관객들을 바람의 세계로 이끈다.

‘바람 바람 바람’은 20년 경력의 바람의 전설 석근(이성민 분)과 뒤늦게 바람에 빠진 봉수(신하균 분), 그의 아내 미영(송지효 분) 앞에 치명적 매력의 제니(이엘 분)가 등장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영화 ‘내부자들’, 드라마 ‘도깨비’, ‘화유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 이엘은 치명적 매력을 발산하며 세 사람의 관계를 거침없이 뒤흔든다.

“이병헌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선배님들과 함께하는 장점이 있었어요. 그리고 제니라는 캐릭터를 감독님께서 전형적이지 않게 만들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연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 만화책을 읽는 것 같았어요. 감독님의 ‘말맛’을 느꼈는데 영화로 보니까 정말 코미디가 세련됐더라고요. 대사의 엉뚱함이 선배님의 연기를 통해 배가되면서 너무 좋았어요.”

‘바람 바람 바람’으로 이엘은 첫 영화 주연을 맡았다. 이성민, 신하균, 송지효 등 베테랑 배우들과 다양한 케미를 발휘하며 자연스럽게 극에 녹아들기 위해 이엘은 반복해서 모니터링하고 대화하며 톤을 잡아갔다. 

“신나면서 어려웠어요. 익숙함을 벗어야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감독님께서 편하게 리드해줘서 잘 따라갔어요. 감독님이 어떤 톤과 연기를 원하는지 빨리 습득해야 제니라는 캐릭터가 잘 붙을 것 같아서 모니터 뒤에서 관찰을 많이 했어요. 감독님께서 말을 많이 안하시는데 한마디 한마디가 정확하세요. 처음에는 읽기 어려웠는데 나중에는 컷을 하고 오는 모습만 봐도 어떤 말을 할지 느껴졌어요. 아무래도 제가 가장 작품수도 적고 신인이라 누가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선배들 연기에 제가 들어가면서 틀어지면 안 되니까 부담이 있었죠.”

   
 

이전 작품에서 강렬한 캐릭터 연기를 펼쳤다면 ‘바람 바람 바람’에서 이엘은 한층 유연한 연기를 펼친다. 관계에 바람을 일으키는 인물이기에 강렬한 메이크업과 개성 있는 톤으로 캐릭터를 소화할 수도 있었지만 이를 배제하고 인물의 내면을 파고들어갔다. 평소 사람과의 관계로 상처받고 관계로 다시 치유한다는 이엘은 제니에게서 본인과 비슷한 면을 발견했다. 

“제니의 외로움과 그녀가 지닌 상처로부터 출발했어요. 이성을 유혹하려는 느낌보다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접근했죠. 상처를 관계로 치유하려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이성뿐만 아니라 동성과도 스스럼없이 교류하고 친해질 수 있었죠. 극 중에서 ‘괜찮아져있겠죠’라는 말을 하는데 괜찮아지고 싶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인물이에요. 이전까지 외형적으로 보여주는 연기를 많이 했다면 제니는 감정이나 상처를 숨겨야 하는 캐릭터였어요. 감독님과도 그 부분을 많이 이야기했어요. 절제된 표정 안에서 감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죠. 미세하지만 다양하게 감정을 드러내려고 시도했어요.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들으려고 했어요. 이미 아는 대사지만 직접 말할 때 듣는 거는 다르니 잘 들으려고 노력했죠.”

극 중 제니는 봉수와 한마디로 불륜에 빠진다. 제니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관객들은 어느 순간 그녀의 감정을 따라가게 된다. 제니와 봉수는 때로는 과감하고 때로는 아기자기하게 서로를 채우며 둘만의 스토리를 만든다. 이엘은 신하균과 첫 만남은 조심스러웠지만 제주도에서 함께 지내고 촬영하며 빠르게 가까워졌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이엘이 말하는 신하균은 봉수처럼 엉뚱하고 순수한 면이 있는 배우였다.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선배님의 작품을 보면서 너무나 좋아했던 배우였고, 워낙 연기를 잘하시니까 주눅도 들고 부담 아닌 부담도 있었죠. 선배님이 표현도 안하시고 말수도 적으신데 조금 지나니 그런 분이 아니시더라고요. 귀여운 매력도 있고 진중하고 세심한 분이셨어요. 보이는 이미지와 다른 모습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걸 아는 순간 편해졌어요. 그냥 흘러가면서 했던 대화도 기억해주시고 유쾌한 분위기에 갑자기 진지하고 엉뚱한 모습을 보일 때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뷰에 앞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엘은 “영화를 찍는 동안 ‘내가 다시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고 밝혔다. 비단 이번 영화뿐만 아니라 이엘은 평소에도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왔다. 

“앞서 ‘내가 다시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배우이기 이전에 사람으로 항상 지니고 있는 물음이에요. 남녀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죠. 그래서 제니라는 캐릭터도 그렇게 출발했어요. 관계라는 게 새로 얻기도 잃기도 하잖아요. 이런 생각은 정답이 나와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니까요. 저는 사랑은 존재의 이유 같은 거라 생각해요. 꼭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겠다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끝까지 사랑받았으면 해요. 대중의 사랑은 아직도 신기해요. 표현하시는 분들도 있고 지나가면 소곤소곤 말씀하는 분도 있고요.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아직도 신기하고 마냥 좋아요(웃음).”

   
 

2009년 다소 늦은 나이에 데뷔했다. 영화 ‘황해’(2010)로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한 이엘은 ‘내부자들’(2015)을 통해 대중에게 그녀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후 드라마 ‘도깨비’, ‘블랙’, ‘화유기’ 등 연이은 작품 활동은 이엘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최근 성공적인 행보를 돌아본 이엘은 “숙제가 들었다”며 즐겁게 하소연을 했다.

“‘조금만 더 잘했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저에게 큰 도움이 되고 저를 알리게 된 작품들이었지만 스스로 매기는 점수는 높지 않아요. 아마 모든 연기하시는 분들이 본인의 작품을 평가할 때 그럴 거예요. 아쉬움이 많아요. 후회나 미련이라기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것들에 대한 숙제가 보이는 거죠. 뿌듯하지만 자축을 오래하면 안되잖아요. 빨리 정신 차렸죠(웃음).”

이엘이 “‘믿고 보는 배우’까지는 아니어도 ‘이 배우가 나오면 볼만하더라’라는 느낌을 드렸으면 좋겠다”며 바람을 내비쳤다. 봄바람이 불어오는 4월, 이엘은 새로운 얼굴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오랜만에 나온 로맨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잘 되고 있잖아요. 저희 영화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 믿고 있어요. 산뜻한 코미디가 잘 없잖아요. 다시 이런 장르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해요. 그런 차원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봄나들이 오듯 볼 수 있는 영화예요. 봄 제주의 풍경도 곳곳에 나오니 가볍게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영화의 소재인 바람은 어른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도구이지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는 아니에요. 관계의 소중함에 포커스를 맞춰주셨으면 좋겠어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