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7년의 밤’ 장동건 “슬럼프 극복한 지금, 다시 내가 멋있어 보인다”
[NI인터뷰] ‘7년의 밤’ 장동건 “슬럼프 극복한 지금, 다시 내가 멋있어 보인다”
  • 승인 2018.03.2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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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 개봉이 미뤄졌던 영화 ‘7년의 밤’이 드디어 관객을 맞이한다. 2016년 5월 촬영을 마쳤으니 2년의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7년의 밤’에서 장동건은 파격에 파격을 거듭하는 연기를 펼쳤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장동건은 “여한이 없다”라는 말을 해왔다. ‘7년의 밤’ 촬영 내내 한계의 경험과 극복의 반복이었다. 모든 것을 쏟아냈고 그 결실을 마주할 순간이다. 

“이 영화를 찍고 ‘여한이 없다’고 했지만 영화의 완성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배우로서 모두 소진한 느낌이라 그렇게 말했어요. 무거운 영화라서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는 없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공포영화는 일부러 공포를 느끼려고 보는 거잖아요. 이 영화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분명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소재를 지닌 영화라 생각해요.”

‘7년의 밤’은 한 순간의 우발적 살인으로 모든 걸 잃게 된 남자 최현수(류승룡 분)와 그로 인해 딸을 잃고 복수를 계획한 남자 오영제(장동건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장동건은 오래전 원작소설을 읽고 영화화를 생각했다. 특히 배우로서 오영제 캐릭터에 매료됐다. 실제로 그는 소설의 판권을 알아봤지만 이미 팔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발 먼저 장동건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배우가 있었고 그는 류승룡이었다. 시간이 흘러 영화 제작이 가시화되고 장동건에게 오영제 역 캐스팅이 들어왔다. 장동건은 그가 생각한 오영제와 감독이 생각한 오영제의 간극을 줄여가며 새로운 인물을 탄생시켰다.

“원작은 꽤 오래전에 봤어요. 출판 당시에 봤는데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었어요. 덮고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였어요. 그리고 영화로 만들면 오영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었어요. 시간이 흘러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저에게 오영제 캐릭터 제안이 들어와서 신기했어요. 감독님과 만나서 캐릭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설렘과 기대가 우려와 걱정으로 바뀌기 시작했죠(웃음). 소설은 활자로 읽으니까 독자마다 느낌이 다를 수 있잖아요. 제가 그린 오영제는 샤프하고 섬세하고 예민한 사이코패스인데 섹시한 매력도 있는 인물이었어요. 그리고 심리묘사 같은 경우도 유머러스한 부분도 있고요. 그렇게 그리고 감독님을 만났는데 감독님의 첫 말씀이 살을 10kg 찌우는 게 어떻겠냐는 거였어요. 지역사회의 권력자 같은 중년 남성을 상상하고 계시더라고요. 의상도 사냥꾼처럼 모피를 입으라고 하시고.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달랐어요. 그리고 연기에 있어서는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이 있지만 그것을 염두에 두고 연기하지 않으려 했어요. 그러면 캐릭터 자체가 클리셰가 될 수 있으니 좀 더 납득이 되고 공감이 가는 인물로 연기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죠. 저도 동의했고 그러면서 원작과는 다른 오영제를 만들기 시작했죠.”

   
 

영화에서 오영제는 악의 축에 있으면서 동시에 피해자다.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아이러니는 장동건이 작품에서 집중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원작을 읽고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던 지점이 악이 피해자가 되고 선이 가해자가 돼서 복수하는 이야기라는 점이었어요. 그런 아이러니함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만약 판사입장에서 등장인물들이 죄인이라면 누가 형량이 가장 높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최현수가 아닐까 싶어요. 오영제는 아동학대, 폭행 이런 수준이잖아요. 안승환도 책임에 자유롭지 않을 거예요. 과연 누가 정답을 내려줄 수 있을까요. 그런 것들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이고 텍스트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작품이죠.”

‘7년의 밤’에서 오영제로 분한 장동건의 모습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마가 벗겨진 헤어스타일이다. 이로 인해 잘생김의 대명사인 장동건에게 포털사이트 연관 검색어로 ‘탈모’가 추가되기도 했다. 장동건은 캐릭터를 위해 매일 머리를 밀어 일부러 탈모 헤어스타일을 고수했다. 과한 설정이 아닐까 고민했지만 이질적인 비주얼의 효과는 컸다.

“M자 탈모는 감독님이 처음 제안했어요. 그전에 이것저것 다 해봤어요. 털옷도 입어보고 헤어스타일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안경도 써보고. 그런데 뻔한 모습 이상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감독님이 헤어라인을 다듬자고 제안해서 처음에는 농담인줄 알았어요(웃음). 사실 배우가 연기하면서 머리를 미는 거야 대수롭지 않은 건데 자칫 ‘변신을 위한 변신’으로 보일까봐 우려가 있었죠. 과한 설정이 아닐까 생각하며 테스트를 하고 거울을 보는데 어울리면서 낯선 느낌이 괜찮았어요. 주변 스태프 반응도 대체적으로 좋아서 선택하게 됐죠.”

한국 영화계를 이끌던 장동건은 어느 순간 슬럼프에 빠졌다. 흥행 실패가 먼저인지 연기에 대한 회의가 먼저인지 순서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렇게 시작된 슬럼프는 한동안 그를 괴롭혔다. 연기가 즐겁지 않았던 장동건은 ‘7년의 밤’을 통해 활력을 찾았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어요. 흥행 결과 때문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슬럼프를 겪으며 저에게 새로운 게 있을지 의문이 들었어요. 자기복제를 하는 것 같았고 ‘7년의 밤’을 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찾고 조금 벗어날 수 있었죠. 무엇보다 현장이 다시 즐거워졌어요. 감독님은 정말 작품만 생각해요. 촬영이 없을 때도 다음 촬영만 생각해요. 자연스레 집중하는 분위기에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없어서 좋았어요. 평화롭고 온화하면서 모두가 집중하는 기분 좋은 텐션으로 10개월을 있었어요. 앞서 ‘여한이 없다’는 표현을 한 건 보통 연기를 할 때 감정을 표현하는 수위나 방법에 있어 하나를 결정해서 연기하는데 이번에는 다른 것들을 모두 시도해봤어요. 특히 오영제라는 캐릭터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인물이라 감정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촬영할 때도 규정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했고 그러면서 갈증이 해소됐죠.”

   
 

파격 연기변신과 악역, 장동건은 ‘7년의 밤’을 통해 배우로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악역 연기는 배우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일상생활에서 할 수 없는 금기를 깰 수 있다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악역에 깊게 빠져 후유증을 겪는 배우들도 숱하게 있다. 딸을 학대하는 연기를 해야 했던 장동건은 실제로 딸이 있어 어려움을 겪었다.

“악역은 배우 입장에선 항상 매력 있어요. 일상생활에서 보여줄 수 없는 것을 캐릭터라는 명분하에 마음껏 할 수 있고요. 인간의 다른 면을 표현할 수 있는 매력이 분명 있죠. 그런데 ‘7년의 밤’ 같은 경우는 조금 달랐어요. 처한 상황이 현실적이고 저 역시 딸이 있는 환경이니까요. 연기를 하려면 계속 상상을 해야 하는데 부정 탈 것 같은 거죠. 하기 싫은 상상을 많이 해야 돼요. 아예 현실과 동떨어져있으면 괜찮은데 이건 구체적인 대상이 현실에도 존재하니까. 아직 가족들은 안 봤는데 장인어른, 장모님이 보시는 게 가장 걱정돼요(웃음). 아이들은 어차피 아직 볼 수 없어요.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은 생각도 들어요.”

‘7년의 밤’을 통해 뒤틀린 부성애를 보여준 장동건은 2010년 고소영과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동건은 자녀에 관해 묻자 여느 아버지들처럼 부끄러워하다 이내 자랑을 늘어놓았다. 딸이 예쁘게 생겼다고 말할 때는 ‘태어나보니 아빠가 장동건, 엄마가 고소영’이라는 말이 떠올라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좋은 아버지이자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장동건은 올해 ‘7년의 밤’에 이어 ‘창궐’도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랜만에 드라마로 복귀해 박형식과 ‘슈츠’를 촬영 중이다. 다양한 굴곡을 거치고 여유를 찾은 중년의 장동건은 스스로가 봐도 멋지다.

“지금이 되게 좋아요. 예전보다 내려놓은 느낌이고 편해요. 연기적인 것 외에도 여러 면에서 스스로 여유로워졌어요. 지금의 제가 마음에 들어요. 슬럼프가 있을 땐 재미가 없었고 저에게 신선함이나 새로움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어요. 오랫동안 한 가지 일만 해서 오는 것일 수도 있죠. 지금은 극복해서 다시 제가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어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