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그것만이 내 세상’ 박정민 “역할의 변화, 태도와 마음가짐 달라져”
[NI인터뷰] ‘그것만이 내 세상’ 박정민 “역할의 변화, 태도와 마음가짐 달라져”
  • 승인 2018.01.15 1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2016년 박정민은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를 통해 그해 신인상을 휩쓸었다. 단숨에 충무로의 차세대 연기파 배우로 떠오른 박정민은 2017년 다수의 영화 촬영으로 어느 때보다 바쁘게 보냈다. 2018년 그는 ‘그것만이 내 세상’(감독 최성현)을 시작으로 뜨거웠던 지난해의 결실을 맛본다.

17일 개봉을 앞둔 ‘그것만이 내 세상’은 한물간 전직 복서 조하(이병헌 분)와 엄마만 믿고 살아온 서번트증후군 동생 진태(박정민 분), 두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박정민은 서번트 증후군 캐릭터 연기와 함께 피아노 연주까지 직접 소화하며 함께 작업한 배우와 감독에게 극찬을 받았다. 피아노 연주 장면을 CG없이 찍고 싶다는 감독의 말에 이전에 피아노를 친 적 없는 박정민은 프리단계에서 3개월, 촬영하면서 3개월, 총 6개월 연습했다.

“저도 모르게 울고 있더라고요. 영화가 주는 힘을 확실히 느끼면서 봤어요. 시나리오보다 더 재미있어진 것 같아요. 관객들이 웃을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아진 것 같고 뒷부분에서 감정의 크기가 커진 것 같아서 좋아요. 어디서 본 듯한 전개일 수 있지만 감독님이 감정을 부각하고자 과한 연출을 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볼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엉엉 울지 않아요. 짜내는 눈물이 아닌 진심을 다해 말하면서 큰 감동을 줘요.” 

영화는 남남이던 형제가 가족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웃음과 감동이라는 정형화된 전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세심한 연출과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결이 다른 눈물을 자아낸다. 

“감독님도 말씀하셨지만 가장 소중한건 가장 사소할 수 있어요. 어렸을 때 입버릇처럼 말한 게 ‘가족은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였어요. 가족은 오늘 아니면 내일이라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이를 먹고 영화를 촬영하면서 떠나보낼 수도 있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가족이 내 곁을 떠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가족을 많이 생각나게 하더라고요.”

   
▲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박정민이 연기한 진태는 서번트 증후군을 겪고 있는 캐릭터다. 이전에 많은 선배 배우들이 자폐증 연기를 펼쳐왔고 좋은 평가들을 받았다. 박정민은 책과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박정민은 선배들의 좋은 연기를 피하려다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연기를 하게 될 것 같아 참고가 될 만한 영화나 드라마는 보지 않았다. 캐릭터를 연기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스킬이 아닌 진심을 담는 것이었다.

“가장 중점을 둔 거는 서번트 증후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겪는 분들과 그분들의 가족, 선생님, 복지사분들이 이 영화를 볼 때 절대 불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진태라는 아이가 우리가 다른 시선으로 봐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연기의 선은 늘 점검해야 했어요. 과하면 희화화 될 수 있고 이런 장애를 이용하면 안 되니 오버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단, 너무 부족해도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분들을 잘 소개하는 게 또 하나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선을 지키는데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보통은 그러지 않는데 이번에는 카메라가 없을 때도 진태처럼 있었어요. 갑자기 연기하려면 힘들더라고요. 어느 정도 기분을 유지하면서 선을 정리했어요.”

박정민은 단순히 서번트 증후군을 연기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접근하기 위해 봉사활동을 다녔다. 봉사활동 당시를 회상하던 박정민은 학생들과의 따뜻했던 교감이 떠올라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처음에는 봉사활동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기본적으로 외부인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인데 연기 잘해보겠다고 그 사람들을 관찰하는 건 굉장히 실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감독님과 대화하고 책과 영상으로 준비했는데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어요.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문제가 없었는데 이 사람들을 만나고 진심을 다하는 것이 한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아닌가 싶어서 고민했어요. 조심스럽게 연락을 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셨어요. 갔더니 한 반에 5명의 학생이 있었어요. 보통 담임선생님, 공익요원, 자원봉사자 3명이 있어야 반이 돌아가요. 자원봉사자가 많지 않아서 보통 학부모님들이 한다고 했어요. 그 반 아이들이 잘 웃었어요. 끝나는 날 저랑 찍은 사진을 사절지에 붙여서 편지를 써서 줬어요. 글을 못 쓰니까 선생님 손을 잡고 썼어요. ‘선생님 감사했어요’, ‘잊지 말아주세요’, ‘가슴 속에 선생님을 담아둘게요’ 같은 글이 있는데 제 벽에 지금도 붙어있어요. 그들이 준 에너지와 진심어린 순간들이 원동력이었어요. 원래는 봉사활동에 관해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언급해주는 게 고맙고 의미가 있다고 해서 밝히게 됐어요. 선생님이 저희 팬카페에도 글과 사진을 올려주셔서 고마웠어요.”

   
▲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박정민은 ‘그것만이 내 세상’을 통해 평소 동경하던 이병헌과 호흡을 맞췄다. 박정민은 이병헌과 현장에서 호흡하며 연기는 물론 전체를 아우르는 모습을 감탄하며 마음에 새겼다. 선후배가 아닌 동료로서 인정해주는 이병헌 덕분에 박정민은 긴장이 풀린 후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며 함께 장면들을 만들어갔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굉장히 유머러스하시고 재밌는 분이더라고요. 촬영하면서 정말 많이 배우고 이전보다 더 좋아하고 존경하게 됐어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병헌 선배님처럼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제가 현장에서 연기에 관해 고민한다면 선배는 이 영화 전체를 고민했어요. 병헌 선배님만큼은 아니지만 제 의견이 들어간 장면들도 있어요. 처음에는 이런 걸 해도 되나 싶었어요. 시나리오대로 하는 게 선배도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재미없어서 재촬영도 했어요. 선배님이 하시는 걸 보고 저도 용기를 내서 조심스럽게 툭툭 애드리브를 던질 때가 있었는데 다 받아주시는 거예요. 해도 되겠다 싶어서 만들어 낸 부분들이 곳곳에 있어요. 그런 장면들을 관객들이 웃어주시고 좋아하니까 정말 뿌듯했어요.”

‘그것만이 내 세상’과 ‘염력’의 촬영이 지난해 8월 끝났고, 곧바로 9월부터 11월까지 ‘변산’을 촬영했다. 이어 박정민은 쉴 틈 없이 곧바로 ‘사바하’ 촬영에 돌입해 현재도 촬영 중이다. 차기작으로 ‘파수꾼’을 연출한 윤성현 감독의 신작 ‘사냥의 시간’에도 출연한다. 배우 인생 중 가장 바쁘고 화려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박정민은 “놀라울 만큼 바뀐 점이 없다. 일을 많이 하게 돼서 행복한 건 있는데 사람 많은 곳에 가도 전혀 못 알아본다”고 고백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것만이 내 세상’ 끝나고 ‘변산’ 전까지 3~4주 시간이 있었는데 배울게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제대로 쉰 날이 없었고 ‘변산’ 끝나자마자 ‘사바하’ 크랭크인이었어요. 중간에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있어요. 다행히 이준익 감독님이 ‘변산’ 당시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편하게 해주셔서 버틸 수 있었어요. ‘사바하’도 처음 해보는 장르인데 장르연기는 색달라서 재밌어요. 요즘은 힘들고 지친 건 잊었어요.”

   
▲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박정민에게 충무로 차세대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다. 과거 고려대학교 인문학부에 입학했던 그는 배우의 길을 걷기 위해 돌연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입학했다. 오랜 기간 무명을 겪고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그는 갑작스런 변화에 즐거움보다 책임감이 앞섰다.

“조금씩 부담감이 생겨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상업 영화라는 바닥에서 중요한 롤을 맡아서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중압감과 책임감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됐어요. 모두가 만드는 거지만 그 선두에 서있는 느낌이에요. 감독님 바로 옆에 있으니 연기는 물론 현장에서 스태프와 소통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그래서 이런 일을 잘 해 오신 선배들이 더 위대하게 보이더라고요. 황정민 형이 어느 날 전화해서 대뜸 제 나이를 묻더라고요. 그러더니 제 나이 때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데뷔했다면서 어차피 배우 오래해야 하는데 너무 부담 느끼지 말라고 하셨어요.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말씀해주시는데 힐링이 되고 너무 감사했어요. 너무 혼자 안고 갈 필요 없이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는 걸 느꼈죠. 이준익 감독님과 황정민 형의 조언들이 힘이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