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1987’ 김태리 “남과 나를 가르는 성격, 배우로서 극복해야”
[NI인터뷰] ‘1987’ 김태리 “남과 나를 가르는 성격, 배우로서 극복해야”
  • 승인 2017.12.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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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이와이드컴퍼니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를 통해 김태리라는 충무로 신데렐라의 탄생을 알렸다. 1년 만에 만난 충무로 신데렐라는 여전히 해맑게 웃으며 취재진을 맞이했다. 그녀는 아직 인터뷰가 어색하다며 ‘1987’을 촬영하며 작성했던 노트를 다시 꺼내봤다고 밝혔다.

영화 ‘1987’은 정부가 조작, 은폐하려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부터 민주항쟁까지 뜨거웠던 6개월의 여정을 담는다. ‘1987’에서 김태리는 주요 인물 중 유일하게 창조된 캐릭터다. 유행가를 좋아하고 데모를 해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어쩌면 그 시대 대다수 보통 사람을 대변한다.

‘아가씨’에 이어 대작에 출연한 김태리는 자신이 사랑받는 이유에 관해 “아직 잘 몰라서 그런 것 같다”며 웃었다. 그녀는 종종 예상 외의 답변을 내놓으며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당차면서 해맑은, 때로는 진중한 김태리는 영화 속 연희와 많이 닮아 있었다.

Q.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에 어떻게 접근했나.

A.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연희와 나는 이런 점이 비슷하네’, ‘연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식으로 접근했어요. 촬영할 때 저는 초보자니까 연기에 어려운 지점들이 있었지만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감독님께서는 제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 하셨고 연희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셨어요.

Q. 예민한 사건, 실화를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A. 어떤 성향의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사실을 근거로 해서 영화적 재미를 추구한 작품으로 대했어요. 실화를 담은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어요. 연희는 가장 보통의 사람을 대변해요. 그 당시 대다수가 그런 사람이었고요. 시나리오에 충실하려고 했어요. 연희의 전사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성격을 가지고 이러한 선택을 하고 행동하는지 설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잘 표현하기 위해 고민했어요.

Q. 영화에서 유해진이 삼촌으로 나온다. 긴밀한 협조관계로 그려지는데 실제로 만난 유해진은 어땠나.

A. 해진 선배님은 굉장히 유쾌하시고 아재개그라고 하는 하이 퀄리티의 개그를 좋아하세요(웃음). 처음에는 못 알아듣고 헤맸어요. 나중에는 빨리 캐치해야 될 것 같아서 농담을 던지시면 재빨리 두뇌를 돌리면서 리액션 했어요. 평소에는 유머러스한데 연기할 때는 진지하세요. 저는 삼촌 역할에 관해서 겉핥기로 읽었나 봐요. 연기하시는 걸 보면서 ‘이렇게 깊이 있는 인물이 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시나리오가 아닌 연기로 인물의 깊이를 더하는 걸 보고 놀랐어요.

Q. 연희는 영화 중반이 넘어가면서 등장한다. 그 앞에 선배들이 쌓아간 드라마를 이어가야 하는데 걱정이 많았을 것 같다.

A. 처음에는 두려웠어요. 관객으로서 궁금하기도 했지만 제 연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떨리고 도망가고 싶더라고요. 선배들이랑 시사회에서 같이 앉아서 보는데 점점 제 장면이 다가오니 심장이 떨리기 시작하더라고요(웃음). 촬영할 때 앞 촬영분을 보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이 지나니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의 분위기 흐름이 있는데 이에 맞지 않을까봐 보려고 하다가 타이밍이 안 맞아서 못 봤어요. 오히려 저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전체를 보시는 감독님이 계셔서 믿었어요.

   
 

Q. 베테랑 배우들이 적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출연해 곳곳을 채우고 있다.

A. ‘1987’은 짧은 분량의 역할을 좋은 선배님들이 해주셨는데, 시나리오를 드리고 부탁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구해서 읽고 역할을 달라고 하셨어요. 의미가 깊은 것 같아요. 그만큼 시나리오의 힘도 있었고요. 영화가 주는 의미에도 잘 맞는 것 같아요.

Q. 광장신이 인상에 많이 남는다. 촬영하면서도 완성된 장면을 상상했을 텐데.

A. 장준환 감독님의 스타일은 콘티대로 가지 않으시는 편인데 그 장면은 3D 작업까지 먼저 하셔서 그대로 찍는다고 하셨어요. 동선이나 장치도 많아서 그러신 것 같아요. 3D를 보면서 상상했는데 실제로 함성들과 합쳐서 보니까 시나리오에서는 못 느꼈던 감정들이 오더라고요.

Q. 광장신을 보면 최근 촛불 광장이 떠오를 것 같다. 두 광장의 김태리와 연희를 비교한다면.

A. 저는 지난해 광장에서 100만 명의 사람을 바라볼 때 공허하고 슬픈 감정이 컸어요. 나라가 이지경이 돼서 많은 사람들이 가족, 친구와 보낼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을 할애해서 추운 곳에 나와 외치고 있었어요. 영화 속 연희가 광장으로 달려가는 심정은 비슷했을 거예요. 가슴 속 감정을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나온 거죠. 원래 연희는 연대를 믿지 않는 아이인데 처음 보는 광경에 맞닥뜨리고 구원 받는 느낌도 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이 이 이야기를 다루면서 한 번도 영화화한 적이 없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나요. 나중에 누군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이 기적같이 영화로 만들어질 수도 있겠네요.

Q. 내년 개봉하는 ‘리틀 포레스트’를 포함해 세 작품을 찍었다. 변화한 점이나 느낀 점이 있다면.

A. 배우로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어요. 태생적인 성격이 마음이 닫혀있어요. 남과 자신을 가르는 성격이라 세상을 살아가긴 좋아요. 하지만 어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한 인물의 마음에 닿기에는 부족한 성격 같아요. 배우로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Q. 관객에게 ‘1987’은 어떤 영화라고 소개하고 싶나.

A. 어두웠던 시대지만 한줄기 밝은 빛을 볼 수 있는 영화라 생각해요. 그리고 그 시대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보시면 지금과 연결되는 부분이 분명 있어요. 그리고 유머도 있고 영화적으로 잘 풀어낸 작품이니 많이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