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강철비’ 곽도원 “배우라는 직업, 다른 목소리 낼 수 있는지 항상 점검해야”
[NI인터뷰] ‘강철비’ 곽도원 “배우라는 직업, 다른 목소리 낼 수 있는지 항상 점검해야”
  • 승인 2017.12.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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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NEW 제공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한국 영화 최초 핵전쟁 시나리오를 그린 ‘강철비’가 공개됐다. 영화는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국제정세를 세밀하게 그려내며 뜨거운 화두를 던졌다.

‘곡성’, ‘아수라’, ‘특별시민’ 등 매번 캐릭터에 녹아드는 연기로 감탄을 자아내는 곽도원은 ‘강철비’에서 핵전쟁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대행 곽철우로 분했다. 양우석 감독은 곽철우 역으로 처음부터 곽도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곽철우의 모습은 스크린 밖 곽도원의 모습과 닮아있다.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구현해 낸 대규모 군사 장면과 핵 시나리오, 거기에 복잡한 국제관계까지 얽힌 상황 속에서 곽도원은 인간적인 모습을 더해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했다. 엘리트 역을 연달아 맡아온 그는 캐릭터 소진에 대한 우려를 우직한 연기로 정면 돌파했다.

Q. 가상의 핵전쟁 시나리오를 남북의 상황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등의 입장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구현했다. 직접 그 속에서 연기를 펼쳤던 사람으로서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다.

A, 너무나도 있을 법한 이야기였어요. 이 이야기는 대한민국이 아니면 어디에서도 만들 수 없는 있을 법한 이야기니까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호기심이 생겼어요. ‘변호인’이 개봉됐을 때 처음에는 반응이 약하다가 점점 사람들이 다시보고 단체로 관람하면서 인터넷에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때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누군가 여기 와서 또 한마디씩 하고 가겠죠. 뭐라고 할지 참 궁금해요. 기대되고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어요. 진지하기만 하면 관심을 못 받을 것 같아서 중간에 웃음 포인트도 만들었고. 감독님께 감사한 건 영화 속에서 제가 웃음 포인트를 만드는 역할이었는데 진지한 버전도 넣어서 다양하게 찍었어요. 진짜 힘들어요.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데 감독님이 요구도 다 들어주시고 스태프도 잘 해줬어요. 사실 감정을 바꾸는 건 어렵지 않아요. 잘 하는 게 어려운 거지.

Q. 국수 먹는 신을 보면 왼손잡이 곽철우와 오른손잡이 엄철우가 나란히 앉아서 국수를 먹는다. 상징적인 의미가 느껴지는 장면이다.

A. 국수 먹는 신을 찍을 때 감독님이 곽철우와 엄철우가 수갑을 차고 대사를 주고받을 거라고 했어요. 제가 왼손잡이라서 마주보지 말고 옆에 앉아서 국수를 먹으면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건 어떻겠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재미있는 것 같사옵니다’라더군요. 같은 곳을 바라보는 느낌도 있고,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생존의 의미도 있고. 이런 것들을 해석하고 분석하면 재밌어요. 이름도 둘 다 철우잖아요. 그 이름이 한국과 북한 모두에 많이 쓰이는 이름인데 스틸레인이 철우, 강철비잖아요. 은유적인 표현들이 있어서 재밌는 것 같아요.

Q. 곽철우가 엄철우는 생김새나 말투는 다르지만 어느 순간 서로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영화의 메시지와도 닿아있다.

A. 우리가 이런 짓을 왜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깨닫게 되면서 서로 믿음이 생기고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해하려는 게 아니라 이를 피하기 위해 뭉치자는 거죠. 핵 역시도 싸우자는 게 아니라 다 같이 하지 말자는 입장이에요. 우리나라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답답한 상황이 많았는데 시나리오를 받아서 읽으니 너무 재밌었어요. 대한민국 국민들이 마지막 엔딩을 보며 어떤 이야기를 하실까에 대한 호기심에 영화를 시작하게 된 거죠. 영화 속 강연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감독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면서 찍은 게 있어요. 학생들에게 땅끝마을 해남에서 동유럽까지 여행하는 상상을 해보라는 장면인데 영화에는 잘렸네요(웃음).

   
 

Q. 정우성과의 호흡이 돋보인다. 각자의 톤이 너무 심각하거나 가볍지 않게 잘 어우러졌다.

A. 우성이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리액션이 너무 용이해요. 차 안에서 반포동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우성이를 보면 눈이 빨개져서 시골 애처럼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어요. 저절로 울컥하더라고요. 우성이가 이번 영화를 하면서 준비를 정말 많이 했고 저 역시도 노력했어요.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죽을 것 같이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멋있잖아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에요.

Q. 이전에 맡았던 엘리트 캐릭터들에서는 냉철한 모습들을 많이 보인 반면에 이번에는 한층 밝다. 평소 곽도원의 모습과도 닮아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는데.

A. 곽도원 이전에 곽병규(곽도원 본명)라는 사람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동안 캐릭터 중에 저와 가장 비슷한 점이 많아요. 영화 속 장현성 형님한테 애교 떠는 모습이나 강연하는 모습, 우성이와 농담하는 톤은 평소 저와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해요.

Q. 곽철우는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캐릭터를 잡아갔나,

A. 곽철우는 여린 사람이에요. 먹고 살려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한국에서 자리 잡고 살려고 하죠. 정권이 바뀌기 전 외교안보수석 대행이라 전전긍긍하고 있고 돈 벌어서 양육비도 보내야 하고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 돈도 내야죠. 일반 가장이라 생각했고 그러길 바랐어요. 그런 사람이 어쩌다보니 엄청난 일에 부딪힌 거죠. 그러면서 엄철우에 관해서도 관심을 갖고요.

Q. 영화에서 주는 메시지가 도발적이고 동시에 묵직하다. 누군가에겐 과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데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야기와 메시지에 동의하나.

A. 완전 동의해요. 과정이나 소재, 결론 모두 동의하고요. 재야의 고수들이 서로 칼집을 잡고 기 싸움을 하는 거죠. 그러면 함부로 칼을 뽑지 못해요. 지나온 역사를 바탕으로 한 미래의 설계가 아닐까 싶어요. 저는 누구도 다치지 않고 평화 통일이 된다면 당장 캠핑카를 사서 백두산에 가고 싶어요.

Q. 배우의 이미지는 작품의 행보로 만들어진다. 배우 인생에 있어 ‘강철비’는 어떤 의미인가.

A. ‘변호인’을 하기 전에는 사람 노무현에 관해 잘 몰랐어요. 정치에도 관심이 없었죠. 한 작품이 배우 인생 전체를 바꾸진 않지만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고 색을 만드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건 배우들이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죠. 특히 정치색은 조심해야 돼요. 제가 몸담았던 극단 대표님은 배우는 무정부주의자고 무채색을 띠고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누군가 색깔을 말했을 때 반대 입장도 말할 줄 알아야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했어요. ‘변호인’에 참여하고 촛불집회에도 나가고 정권이 바뀌면서 즐거운 마음도 있지만 분명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럴 때도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직업적으로 배우는 대중들에게 매체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 항상 다른 목소리도 낼 수 있는지 상태를 점검하고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