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침묵’ 최민식 “편식 없이 모두 맛보고 싶어” 명배우 있게 한 연기욕(欲)
[NI인터뷰] ‘침묵’ 최민식 “편식 없이 모두 맛보고 싶어” 명배우 있게 한 연기욕(欲)
  • 승인 2017.11.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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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에서 핸드폰 불빛이 얼마나 나오나 긴장하며 봤어요. 논리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놓친 부분은 없나 눈여겨봤죠. 극장 안에 공기가 있잖아요. 중간 중간 휴대폰 불빛이 보이면 ‘극이 산만하구나’라고 느끼게 되는데 다행히 그렇지 않았어요. 관객들이 잘 따라가시는 것 같아요.”

‘침묵’의 언론시사회가 있던 날, 최민식은 영화 도중 객석에서 휴대폰 불빛이 얼마나 흘러나오는지 지켜봤다. 중간 중간 휴대폰 불빛이 보인다면 집중도가 흩어진다는 의미라는 것이 그의 말. 다행히 이날 휴대폰 불빛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배급관에서는 박수가 나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배우, ‘최민식이 곧 장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지만 영화를 공개하는 순간은 늘 떨린다. 물론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경력 30년의 명배우는 그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꾹꾹 눌러 담아 전할 뿐이다.

“작품 선택을 할 때 스케일은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끌리는 이야기와 인물에 충실할 뿐이에요. 이번에는 ‘침묵’이 아니었어도 됐어요. 이 작품을 한 건 정지우 감독과 용필름 임승용 대표 때문이에요. 예전 전우들을 다시 만나서 모사를 꾸며본다는 사실 자체로 기뻤어요. 18년을 지나서 정지우 감독과 내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기대됐어요. 이 일을 꾸준히 하고 있으니 이런 감사한 일이 생기는 거라 생각해요. 임승용 대표가 원작인 ‘침묵의 목격자’를 리메이크하자고 가져왔어요.”

‘침묵’은 중국영화 ‘침묵의 목격자’(2013)를 원작으로 한다.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되 그 안에서 풀어가는 방식과 메시지는 새롭게 꾸려졌다. 영화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법정스릴러의 재미와 함께 인물의 서사를 통해 묵직한 메시지를 건넨다.

“영화의 어느 부분에 포커스를 줄지 서로의 생각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법정 스릴러의 장르적 재미를 추구할 것인지 대중과 소통하는데 힘을 줄 것인지, 혹은 다른 걸 선택할 수도 있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더라도 주가 되는 건 휴머니티였어요. 사랑하는 여자가 죽고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 딸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이야기인데 과연 대중에게 어떤 설득력을 가질지 그게 딜레마였죠. 임태산에게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통이 닥친 거예요. 영화는 그의 결정과 변화를 설득하고 표현하는 과정인 거죠.”

   
 

올해 최민식은 두 편의 주연영화를 선보였다. ‘특별시민’과 ‘침묵’에서 최민식은 각각 권력과 재력의 정점에 선 인물을 그려냈다. 자칫 비슷해 보일 수 있는 인물이지만 최민식은 ‘특별시민’에서 딸로 나온 이수경을 다시 딸 역할로 추천할 정도로 드라마가 가진 색에 자신 있었다.

“캐릭터만 놓고 본다면 ‘특별시민’과 마찬가지로 성공한 중장년이지만 우려는 없었어요. 그런 거에 민감했다면 딸 역으로 이수경을 추천하지도 않았을 거고 이런 장르를 안 하죠. 임태산이나 변종구 모두 드라마 초반부에 푹 썩은 모습을 보이지만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거고 드라마가 다르니까. 결과적으로 ‘침묵’의 드라마가 풍기는 냄새와 맛이 달라요.”

최민식은 ‘해피엔드’ 이후 18년 만에 함께 작업하게 된 정지우 감독에 관해 “당시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업그레이드 됐다. 아주 더 치열해졌고 좋은 의미에서 여유로움도 있었다”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배우가 편안함을 느낀다는 건 그만큼 배려를 많이 해준다는 이야기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더욱 깊은 향을 품게 된 두 사람은 임태산을 비롯해 다양한 캐릭터들의 결을 살려냈다. 이와 함께 그는 후배 배우들이 마음껏 자신의 연기를 펼칠 수 있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 특별한 일을 했다고 보진 않아요. 스스로 즐겁게 일하는 주의예요. 가뜩이나 면도날처럼 예민한 현장이에요. 서로 인상 쓰는 것보다 농담이라도 하면서 릴렉스하는 게 좋아요. 제가 긴장을 이완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도 있어요. 어느덧 현장에서 연장자가 됐는데 가만히 말도 안하고 있으면 현장 분위기도 썰렁하고 공기가 어색해지잖아요. 그런 건 도움이 안 돼요.”

인터뷰에 앞서 최민식은 몇 차례 후배배우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최민식은 ‘칠판 놓고 가르쳐주는 것만이 배우는 게 아니다’며 현장에서 자신을 자극했던 후배들에게 배운 것이 많다고 말했다.

“겸손을 떨려고 하는 말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자극을 받는다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나이를 떠나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걸 해내는 걸 봤을 때 자극 받아요. 이번에 정지우 감독 같은 경우도 한 번도 현장에서 힘이 빠지는 걸 볼 수 없었어요. 대사 한마디도 휘뚜루마뚜루 지나가는 게 없었어요. 당연한 거지만 그게 힘든 거잖아요. 영화 속 제 대사에도 있듯이 혼자 살 수 없는 게 맞는 말 같아요. 그런 면에서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배운 건 배웠다고 말해요. 저 역시도 그렇게 하고 싶은 거죠. 술자리에서 ‘개똥철학’을 늘어놓는 것 보다 직접 보여주면 되는 거니까. 나를 위해 처절하게 움직이면 그 기운이 긍정적인 효과를 끼칠 수 있는 것이고. 아니면 마는 거죠(웃음).”

   
 

영화에는 임태산을 비웃고 뒤흔드는 인물이 두 명 등장한다. 하나는 딸 임미라, 다른 한 명은 사건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김동명이다. 김동명은 한참 나이가 많은 태산그룹 회장 임태산에게 반말하고 무시하며 끊임없이 그를 자극한다. 김동명을 연기한 류준열에 관해 최민식은 ‘나는 저 때 저렇게 못했는데’라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곧이어 그는 너무 칭찬만 하는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의 웃음에는 후배를 아끼는 마음과 동료 배우로서 존중하는 배려가 녹아있었다.

“선배랑 붙는다고 움츠러들고 그런 건 어찌 보면 필요 없는 거잖아요. 캐릭터와 캐릭터가 부딪히는 일인데. 그런데 우리 때는 그런 게 없었어요. 예전엔 필름으로 찍으니 NG나면 다 돈이었으니까. 준열이를 비롯해서 여러 친구들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걸 보면 좋죠. 경직돼서 뭔 생각하는지 모르면 답답하잖아요. 유연하고 대담하고 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친구예요. 리허설 할 때 보니까 이미 캐릭터를 잡아왔더라고요. 그런 친구들의 유연함은 제가 그 나이 때 해보지 못한 거니 자극받아요. 저는 그냥 그 친구들이 만들어내는 파장에 올라타면 되는 거예요. 이러기 쉽지 않아요. 누구하나 말썽부리지도 않고 참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을 했죠. 작품의 성패를 떠나서 ‘침묵’의 현장이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신세계’ 등 그의 작품에는 유독 대사들이 오랫동안 회자된다. 평범할 수 있는 대사들도 그의 입을 통해 나가는 순간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그런 것에 크게 주안점을 두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하나의 작품이 흥행을 거두고 회자됐을 때 재생산되는 대중문화의 오락적인 측면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어찌 보면 영화 외적인 부분이잖아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어느 순간 작품을 선택하는데 있어 일종의 기준이 되어버려요. 그게 바람직한 기준일까요. 그런 것에 자유롭고 싶어요. 대중들이 ‘수작이다’, ‘쓰레기다’라고 하는 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소비하는 입장이 정답인거예요. 각자의 주관을 강요할 순 없죠. 제가하는 작품과 연기로 인해 파생되는 현상은 그야말로 소비하는 사람의 자유죠. 다만 제 스스로 어떻게 해석했고 표현했는지에 대한 생각은 있어야죠. 활시위를 떠난 현상에 집착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저도 인간인지라 흥행이 저조하면 속상하죠(웃음). 노력이 수치로 평가되는 사회니까.”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욱 연기와 작품에 대한 욕심이 커지고 있다. 최민식은 그의 시선과 생각을 공유할 동료를 찾으며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욕심은 많아요. 편식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다 맛보고 싶어요. 욕심이 더 커져요. 이를 공유할 수 있는 동료들을 찾아야겠죠. 소재는 뻔하잖아요. 인간사의 오욕칠정이라는 게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새로운 걸 한다는 게 달나라 토끼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니까. 우리가 늘 느끼는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고 있는 사람, 자신의 주관을 담아서 던지는 친구들과 계속 작업하고 싶어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 사진=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