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아이 캔 스피크’ 이제훈 “영화 통해 주변을 둘러보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길”
2017.09.14
   
 

“지금 시점에 필요한 영화 같아요. ‘이런 영화를 기다렸어’라기 보다는 영화를 보고 ‘이런 영화를 보고 싶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해요. 위안을 받고 주변사람들을 둘러보고 위로를 할 수 있다면 각박한 사회를 조금은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걸 조금은 기대하고 있어요.”

1920년대 일본 군국주의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의 불량 청년 박열로 분했던 이제훈이 현대로 넘어와 위안부 피해자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넸다. 이제훈은 2011년 ‘파수꾼’과 ‘고지전’ 두 작품으로 자신의 존재를 충무로에 각인시켰다. 이후 ‘건축학개론’, ‘파파로티’,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박열’에 이르기까지 매 작품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이며 필모그래피를 탄탄히 다졌다. 현재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30대 초반의 이제훈은 일흔이 훌쩍 넘긴 대선배인 나문희와 추석 극장가를 대표할 영화의 주연으로 나섰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페이지를 넘기는데 옥분 역에는 나문희 선생님이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영어를 공부하고 위안부 피해자의 사연이 나와서 굉장히 놀랐어요.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마무리되려는 건가 싶었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봤는데 이야기가 굉장히 훌륭했고 따뜻해서 피해자 할머니께 위안이 되는 영화가 될 거라는 마음이 생겼어요.”

‘아이 캔 스피크’는 구청의 블랙리스트 옥분(나문희 분)과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 분)가 영어를 통해 엮이는 이야기를 그린다. 추석을 겨냥한 가벼운 코미디처럼 보이던 영화는 우리의 아픈 역사인 위안부 문제를 무심코 지나쳐온 주변인을 통해 조명하며 뜨거운 눈물을 자아낸다.

“끝나고 기자간담회를 해야 하는데 상기된 얼굴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서 보면서 눈물을 참았어요. 그런데 산소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은 정말 못 참겠더라고요. 나문희 선생님은 누군가의 어머니, 할머니로 각인되어 있고 그런 모습이 저희가 본 바로는 전부잖아요. 그 장면에서는 옥분에게도 어머니가 있고 굉장히 힘든 삶을 가족에게조차 위로받지 못해 넋두리를 하잖아요. 정말 눈물이 핑 돌고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염혜란 선배님이 연기한 진주댁과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안 돼, 여기서 울면 안 되는데’라면서 봤어요. 마지막 장면에선 정말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배우입장에선 처음 시사를 하는 자리에서 보통 영화의 부족한 점을 찾아요. 배우의 연기일수도 있고 음악이나 편집 등 다양한 요소를 따지는데 이 작품은 그런 것을 따지기보다 진정성으로 관통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영화를 다보고 나문희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이 작품에 참여했다는 게 뿌듯했어요.”
   
 

연기경력 수십 년의 관록의 배우와 주연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하는 경험은 흔치 않다. 이제훈은 작품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을 했고 좋았던 기억밖에 없다며 인터뷰 내내 나문희를 향한 감사를 전했다.

“워낙 어려서부터 봐온 대선배라 감히 일대일로 연기하고 대사를 한마디라도 제대로 뱉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대본 리딩할 때 긴장이 많이 풀렸어요. 너무나 상냥하게 제 대사를 귀담아 들어주시고 신이 끝날 때마다 좋다고 해주셨어요. 촬영이 시작되고 현장에서도 대기시간이나 리허설을 할 때도 옆에 있는 것 자체가 편했어요. 영어를 가르치는 장면 같은 경우에 대사 호흡에 대해 계산이나 계획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게 필요 없었어요. 선생님의 대사와 제스처를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저에게 충만한 시간이라고 할까요. 하면서 좋았던 기억밖에 없는 것 같아요.”

‘박열’의 박열과 ‘아이 캔 스피크’의 민재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캐릭터는 이제훈과 닮았다. 이준익 감독이 ‘파수꾼’, ‘고지전’과 같은 이제훈의 초창기 모습을 보고 캐스팅했다면, 김현석 감독은 이후 작품들에서 보여준 모습을 민재에 대입했을 거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예민한 일본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제훈은 당당하게 배우가 가져야할 소명을 밝혔다.

“‘박열’을 찍고 심적으로 체력적으로 소진돼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 캔 스피크’를 받고 망설이는 지점이 있었지만 같이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어요. 도움을 받으면서 하면 캐릭터를 잘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더라고요. 함께 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하면 할수록 많이 느껴요. 그동안 위안부 이야기는 정공법으로 힘들고 아픈 사실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보여줬어요. 이 작품은 극영화로서 친숙하게 다가가지만 자칫 남겨진 할머니들께 누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어요. 모두가 영화를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같아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실제 사건을 다루는 영화들의 여러 출발점이 있을 텐데 영화를 보는 재미도 중요해요. 극장에 관객 분들이 오셔서 시간과 돈을 들이는데 만족을 드려야 하잖아요. 이번 작품과 전작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선이 넓어졌어요.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조금이나마 관객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작품을 선택하는데 겁낼 필요가 뭐가 있을까요. 올바르게 잘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군대 공백기가 무색할 만큼 계속해서 달려왔다. 시간이 날 때는 무엇을 하는지 묻는 말에 이제훈은 “영화를 보는 게 행복하고 좋다”고 조금은 예상했던 답을 내놓았다. 영화를 보면 자꾸만 안에서 끓어오르고 연기의 원동력이 된다는 그는 차기작으로 액션 장르에 욕심을 내비쳤다.

“아직 제대로 된 액션을 해보지 못한 것 같아요. 아직은 젊으니까(웃음) 불타는 걸 몸소 보여줄 수 있는 액션 영화를 한 번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본’ 시리즈나 복싱 영화 좋아요. 박정민이랑 이병헌 선배님이 나오는 ‘그것만이 내 세상’도 복싱 나오죠. 예전에 이병헌 선배님의 ‘아름다운 날들’ 보면서 그런 것도 꿈 꿨어요. 할리우드 중에는 ‘성난 황소’, ‘크리드’ 같은 걸 보면서 ‘나도 저런 거 해봐야 하는데’라고 생각했죠. 아직 그런 기회가 없는 것 같아요.”

위안부 문제는 모두가 알지만 깊게 알진 못한다. 어쩌면 과거의 일, 국가 간의 문제라고 인식만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러한 문제를 사적인 영역으로 가져와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이제훈은 ‘아이 캔 스피크’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위안이 되고 관객들에게는 소통과 행동을 유발하는 작품이 되길 기원한다.

“그동안 정보의 인식만 있을 뿐이지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반성하게 돼요. 그리고 아직 남겨진 피해자 할머니가 35분이 계신데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역사를 지키고 기릴 의무가 있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연기로 참여할 수 있어 감사했고 그래서 자긍심을 갖고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마음도 커요. 알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서로 공유하고 소통했으면 좋겠어요. 촬영 앞두고 고사 때 할머니들 오셔서 인사드렸어요. 그분들께 누가 되지 않게 잘 연기해 좋은 작품 만들겠다고 다짐했어요. 보여드리기 부끄럽지 않은 영화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사진= 리틀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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