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인터뷰] ‘살인자의 기억법’ 설경구, 소모에서 승화로…완벽히 돌아온 ‘믿고 보는 배우’
2017.09.04트위터페이스북RSS
   
 

“2년이 지났는데도 어떻게 봐야하나 걱정됐어요. 사람들이 병수의 얼굴을 보고 ‘저게 뭐야’라고 한다면 영화를 볼 힘이 없을 것 같았어요. 손을 꼭 쥐고 ‘제발’이라고 외치며 봤어요. 외형적으로 설득력이 있을지 걱정이 앞섰죠.”

김영하 작가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 스크린에 옮겨졌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감독 원신연)에서 설경구는 기억을 잃어가는 연쇄살인범 병수를 연기했다. ‘오아시스’, ‘역도산’ 등 숱한 작품에서 고무줄처럼 체중을 조절하며 캐릭터를 구축해온 그는 ‘늙음’ 마저도 만들어내며 글로 쓰인 병수를 카메라 앞으로 불러왔다. 설경구는 병수의 눈빛에 기억을 부여잡으려는 처절함과 자신의 기억마저 믿을 수 없는 혼란을 담았다. 이미지를 소모하며 슬럼프를 겪었던 설경구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과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완벽하게 돌아왔다.

“예전에는 단순하게 찌우라고 하면 찌고 빼라면 빼고 그랬어요. 단순히 그 정도로 생각해왔는데 이 영화는 달랐어요. 처음에 특수 분장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감독님과 저 모두 반대했죠. ‘나의 독재자’ 때 해봐서 그랬죠. 그때 기억이 안 좋아서 그랬다는 건 아니고 이번에는 얼굴 근육을 많이 사용하는 캐릭터라서 얼굴에 특수 분장을 붙이면 표정이 안 살 것 같았어요. 이 캐릭터에는 안 맞는다는 생각이 감독과 일치했죠. 그래서 부분적으로 붙일까 생각도 했어요. 답은 뻔했죠. 감독님께 뺀다는 말은 안하고 ‘늙어 볼게요’라고 했어요. 그래서 일단 살을 뺐고 그 뒤로는 머리에 관해 몇 가지 안이 나왔죠. 뒷부분만 부분 가발을 착용했어요. 얼굴 톤은 일반 분장이 아닌 잡티를 분사하는 형식으로 완성이 됐죠. 그렇게 준비했는데도 언론 시사회 때 불안하더라고요. 특히 첫 장면이 잘 넘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평소 모습이 아닌 만든 얼굴이니 더 의심되고 걱정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지만 큰 틀만 동일할 뿐 세부 설정과 캐릭터는 새롭게 만들어졌다. 원신연 감독과 설경구는 소설 속 병수에게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소설도 읽었는데 영화와는 다른 인물이라 생각해요. 소설보다는 영화가 좀 더 캐릭터에 숨을 쉬게 해줬어요. 소설은 옴짝달싹 못한다면 영화는 배우가 연기할 틈이 있어요. 온기도 조금 있고 말이 안 되지만 살인의 정당성도 있고요. 그리고 알츠하이머에 걸렸지만 영화가 그러한 환자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저는 김병수가 마냥 어둡게 보이지 않았어요. 무겁지도 않았고, 어찌 보면 가벼운 면도 코믹한 부분도 있어요. 그런 입체적인 인물로 봤어요. 고민은 끊임없이 했지만 심각하게 접근하지 않았어요.”

‘알츠하이머를 겪는 연쇄살인범’이라는 인물은 좀처럼 그 모습이나 행동이 상상이 안 된다. 설경구는 촬영 내내 깊은 잠에 들지 못할 정도로 고민했다. 그는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숙소에 들어오면 고민은 많은데 구체적으로 무슨 고민인지도 모르고 고민했다. 촬영장 가면 일단 시도해보고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설경구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을까’를 계속해서 각인시키며 답 없는 물음에 답을 구했다. 그런 그가 가장 고심했던 장면은 첫 등장이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설경을 바라보는 병수의 얼굴이 어색하다면 영화는 설득력을 잃게 된다.

“첫 등장에서 믿음을 줘야 했어요. 촬영 며칠 전부터 머리에 쥐가 오더라고요. 정말 죽겠더라고요. 촬영은 마지막에 했어요. 정선에서 눈을 기다렸다가 찍었죠. 머리를 자르고 나와야 하나 단발로 나와야 하는 지로 고민도 많았어요. 두 개 다 찍어보자고 했죠. 그래서 동의하고 가발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제가 자신이 없더라고요. 가발을 쓰면 집중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가발 안 쓰고 싶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죠. 엄청 신경 쓰인 장면이에요. 터널에서 나오니 ‘박하사탕’을 떠올린다고 하는데 전 그런 생각은 안 났고 겨를도 없었어요. 현장에선 생각났고 일상에서도 터널만 보면 ‘박하사탕’이 생각나요(웃음).”
   
 

국내 최초의 천만 영화 ‘실미도’를 비롯해 ‘박하사탕’, ‘오아시스’, ‘공공의 적’, ‘해운대’ 등 흥행과 연기 모든 면에서 신뢰를 주는 배우였던 설경구는 최근 몇 년 부진했다. 흔히 말하는 ‘이미지의 소모’다. 뻔해지는 순간 대중은 그 배우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런 그를 변화시킨 건 ‘살인자의 기억법’부터다. 설경구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이전에 ‘살인자의 기억법’을 촬영했고 잊고 있던 활력을 찾았다.

“수년간 소모시키고 이미지를 반복시켰어요. 당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촬영했죠.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고민도 긴장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심하게는 이 일을 그만둬야 하나 싶었죠. ‘이렇게 훅 가는구나’ 생각할 때 이 작품을 만났어요. 전에도 얼굴 이야기를 했지만 이전에는 단순히 캐릭터를 준비할 때 살을 찌우고 빼는 것만 맞추면 된 것 같았어요. 그런데 ‘살인자의 기억법’은 ‘이 사람이 어떤 얼굴을 갖고 살까’가 궁금해지면서 재미가 생겼어요. 그리고 ‘불한당’까지 오게 된 거죠. 배우 초창기의 활력과는 다른 것 같아요. 당시엔 기운을 쓰려고 했어요. 이제는 좀 더 깊이가 있다고 말하기는 뭐 하지만 어떤 얼굴인지 상상하고 만드는 게 재미있었어요. 계속해서 생각하고 말로 뱉으며 되뇌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올해 개봉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통해 설경구를 향한 열성적인 팬덤이 형성됐다. 이전의 인기와는 색이 다르다. 적극적으로 애정 공세를 하는 팬들로 인해 설경구는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유독 다사다난했던 올해를 생각하며 설경구는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다”며 남은 2017년에 다가올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했다.

“이유를 모르겠어요(웃음). ‘불한당’부터 시작됐는데 온전히 ‘불한당’을 보고 캐릭터를 보고 그 다음에 저를 보게 된 거죠. 순서가 그래요. 저는 그냥 감사할 따름이죠. 이전에 대관행사에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물었는데 그냥 소리쳐 주시더라고요(웃음). 힘이 많이 나죠. 안 외롭죠. 솔직히 외롭기도 했는데 안 외롭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 사진= (주)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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