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영석, '낮술'로 '남자들의 판타지'를 유쾌하게 풀어내다
[기자수첩] 노영석, '낮술'로 '남자들의 판타지'를 유쾌하게 풀어내다
  • 승인 2009.04.1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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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는 영화 낮술의 감독 노영석(왼)과 주연 배우들 ⓒ SSTV

[SSTV|이진 기자] 지난 5일 개봉 한달 만에 약 2만 5천명의 관객수를 기록하며 독립 영화의 흥행 열풍을 이어나가고 있는 영화 '낮술'이 영화 팬들에게 "술 한잔 하실래요?"라며 초대장을 보냈다.

4월 10일 저녁 9시. 대학로의 한 술집에서 영화 '낮술'의 노영석감독과 배우, 스탭 및 관계자들 그리고 관객들이 함께하는 '낮술' 파티가 열렸다.

초대장을 받고 현장으로 향하던 기자는‘첫 대면부터 낮술 자리였다면 밤을 맞도록 민망하고 어색했을 텐데’라는 생각에 저녁 술자리가 이렇게 반가울 수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낮술' 한잔을 한다면 또 어떤 얼굴의 감독과 배우 그리고 팬들을 만났을지 궁금해 지기도 했다.

6시 40분, 본격 술 파티에 앞서 '낮술' 영화 관람이 시작됐다. 우유부단한 주인공 혁진은 연인과 헤어진 아픈 가슴을 친구들과의 술 한 잔으로 녹여내고 있었다.

“강원도 정선 갈래?”

“그래! 가자!”

술에 얼큰하게 취한 친구들이 입을 모아 떠나자는 정선 여행에 정작 주인공인 혁진은 강아지밥을 줘야 한다며 갈지 말지 고민했다. 그래놓고선 다음날 제일먼저 혼자 터미널에 도착해 친구들을 기다리는 혁진의 성실함에 관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술에 뻗은 친구들 덕에 결국 혼자 떠나게 된 정선 여행. 혁진은 팬션에서 미모의 옆방녀를 만나면서 낯선 여인과의 꿈같은 하룻밤 로맨스를 꿈꾸지만 세상일이 어디 마음먹는 대로 되던가. 꽃뱀에 물린 듯 술에 취해 자고일어나보니 지갑과 바지까지 홀랑 빼앗긴 것이다. 혁진은 버스에서 만난 황당한 여인에게 버림받고, 생명의 은인이었던 트럭 운전사의 변태 행위로 만신창이가 된다. 어디 그뿐이랴. 자신의 옛 여자 친구와 사귀게 됐다는 친구놈의 자백에 급기야 길길이 날뛰며 분노하기에 이른다. 이게 무슨 여행인가? 속상해서 한잔 들이킨 낮술 딱 그 맛이다.

5박 6일. 강원도 정선으로 떠난 주인공 혁진의 일정에는 술과 여자, 그리고 또 술, 또 여자가 끊이지 않았다. 떠나버린 여자친구, 양주를 좋아하는 팬션 옆방녀, 버스에서 만난 시를 읊조리는 이상한 여자, 터미널에서 만난 이상형 여인까지. 실속 있는 만남은 단 한 번 없으면서도 주인공 혁진은 자의든 타의든 나타나는 여인의 뒤꽁무니를 마치 나비가 꽃을 쫒듯 쫓아다닌다.

혼자 떠난 여행이 외로워서 술 한 잔하고, 묘한 옆방녀가 예뻐서 한 잔한다. 지갑에 바지까지 털려 팬티 바람으로 히치하이킹을 하던 혁진을 구조해준 트럭 운전수가 강권해서 한잔하고, 친구놈 사촌형이 몸에 좋다는 술을 권해서 또 한 잔 한다. “속이 뒤집혀서 이젠 정말 안 되겠다. 집에 가자”라고 마음먹고 터미널에 도착해 서울행 표를 끊은 혁진은 우연히 만난 이상형 여자가 “전 강릉으로 가요”라고 말하자 버스표를 바꾸겠다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관객에게 전송하며 영화의 끝을 장식했다.

웃기긴 하지만 왠지 너무한 결말. 정말 남자는 술과 여자를 거절할 수 없는 걸까?

   
영화 낮술 ⓒ 낮술 포스터

약 50여명의 스탭들과 배우, 관계자들, 영화 팬들이 모인 '낮술 3만관객 기원' 파티에서 나는 파티의 주인공인 노영석 감독과 인터뷰를 빙자해 짤막한 데이트를 가졌다.

“맥주는 쭈욱 들이키는 게 제 맛 아닙니까”

노영석 감독은 시원한 생맥주를 따라주며 술 전문가(?)의 분위기를 제대로 풍겼다. 주량이 어느 정도 되냐는 기자의 질문에 노감독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술은 좋아하는데 주량은 잘 모르겠다”며 “몇 병이 내 주량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왠지 술을 잘 먹는다고 자랑하는 것 같아서 싫다”고 답한다. 캬~ 이것이야 말로 진정 달인의 대답이 아닐까.

남자는 술과 여자는 거절할 수 없다는 영화 '낮술'의 직접적인 메시지에 대해 현실 속 노감독 역시 동의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모든 남자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런 것 같아요. 비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예쁜 여자가 술을 먹자고 하는 것은 모든 남자들의 환타지가 아닐까요?”

기자는 이같이 답하는 노감독이 혹시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아니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노감독은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런데 저라면 그렇게 우유부단하지는 않을 거에요!”라고 대꾸하고 나섰다.

“영화에서 혁진의 친구가 혁진에게 "예쁜 여자가 있는 곳이 있다. 같이 갈래?" 라고 묻잖아요. 그런데 혁진은 술 때문에 속이 쓰려서 집에 가고 싶어하면서도 갈등하는 우유부단함을 보인단 말이죠”

여기까지 들었을 때 “딱 잘라서 집에 가겠다”는 뒷 말을 예상했지만 노 감독은 “저라면 예쁜 여자가 있다는 말에 바로 가겠다고 답했겠죠”라고 말해 기자는 박장대소했다. 노감독은 영화 '낮술'이 그러하듯 솔직하고 진솔했다.

'워낭소리'와 '똥파리' 등 독립영화가 뜨고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이 가요계에 뜨겁게 부상하고 있다. 독립영화 사상 이례적으로 10주차 장기 상영하면서 3만 관객 돌파를 앞둔 영화 '낮술'의 인기를 느끼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노감독은 “전 잘 모르겠는 걸요”라고 대답했다. 미대 출신으로 미술은 물론 작곡과 영화제작에도 끼와 관심이 많았던 그는 “독립영화를 만들겠다라는 생각 없이 그냥 그리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로 표현했다”며 “만들고 보니 사람들이 독립영화라고 하더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여느 독립영화가 그렇듯 배우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다는 노 감독은 그래도 이번 영화에서 조연으로 열연해 준 배우 이란희에게 감사를 전했다.

“제가 연출공부를 하던 당시에 연극을 하시던 이란희 누나를 알게 됐어요. 누나의 남편분인 신운섭씨도 같은 배우고 해서 두 분을 염두에 두고 이번 영화 시나리오를 썼죠. 주인공인 버스에서 만난 여자 란희 역을 란희 누나가 맡아 주셨고 변태 트럭 운전사 역은 란희누나의 남편되시는 신운섭씨께서 맡아 주셨어요”

극중 란희는 시를 사랑하는 여자이지만 담배도 사랑하며, 모르는 사람과 말붙이기를 좋아하지만 역시 친하지 않는 사람에게 쌍욕을 내뱉는 독특한 캐릭터다. 극중 트럭 운전사 역시 사람 좋고 후덕한 느낌의 남자이지만 밤중에 주인공 혁진의 몸을 더듬어 변태 취급을 받았다. 두 캐릭터 모두 쉽게 캐스팅하기엔 어려운 배역이었으리라.

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더니, 영화 '낮술'로 데뷔하자마자 2008년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특별언급상과 넷팩상을 수상하게 된 노영석 감독은 “지난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 상영 당시, 미국의 배급사 일레븐 아츠 사장님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셨더라구요”라며 영화 '낮술'이 해외 진출을 앞두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우리 영화 '낮술'은 오는 5월 말에서 6월 초 쯤 미국에서도 선보이게 됐다. 3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영화 '낮술'이 미국에서는 또 어떤 기록 행진을 달리게 될지 기대가 된다.

영화를 함께 만든 스탭들과 연기자, 영화 팬들이 몸소 찾아와 함께한 뜻 깊은 자리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 기꺼이 응해준 마음 좋은 노감독은 영화 '낮술'을 재미있게 봐준 영화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다음에도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고 싶다”고 전했다.

어려운 영화판에서 데뷔작 '낮술'로 국제 영화제에서의 수상과 함께 영화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는 노영석 감독이 미국 진출과 더불어 특유의 진솔함이 묻어나는 차기작을 통해 한국 대표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스포츠서울TV 새이름 SSTV|www.newsinsid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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