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①] ‘브이아이피’ 이종석 “여유로운 미소·비릿한 미소, 지문에 온통 ‘미소’ 가득”
[인터뷰 ①] ‘브이아이피’ 이종석 “여유로운 미소·비릿한 미소, 지문에 온통 ‘미소’ 가득”
  • 승인 2017.08.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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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년과 느와르.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에 폭력으로 가득한 느와르 장르에 미소년은 좀처럼 달라붙지 않는 단어다. 선이 굵은 배우들의 전유물이었던 느와르에 ‘예쁘다’는 말이 어울리는 이종석이 도전했다.

박훈정 감독의 차기작 ‘브이아이피’는 북에서 온 VIP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네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영화다. ‘브이아이피’에서 이종석은 북에서 온 VIP 김광일을 연기했다. 모두의 통제 위에 군림한 김광일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고 그를 둘러싼 인물들을 향해 차가운 비웃음을 남긴다.

이종석은 맑은 소년 같은 미소를 무기로 거친 배우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상을 남겼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이종석의 곱상한 외모와 인기에 가려진 그의 진짜 연기를 보려고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자신의 성향과 캐릭터의 방향이 충돌하며 슬럼프를 겪던 이종석은 회피나 우회가 아닌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그리고 ‘브이아이피’는 이종석의 필모그래피에 진한 방점을 찍은 작품이 됐다.

Q.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클 것 같다.

흥행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를 선택하고 연기하면서 바라는 건 하나였어요. ‘이종석이라는 애가 연기 욕심이 있고 좋아하는 애구나’라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Q. 과감한 캐릭터 선택이다.

남자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고 동경하는데 대중들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기회가 있어도 한발 떨어져서 봤을 때 제가 인상을 쓰고 담배를 물고 있으면 어울릴까 의문이 있었죠. 쉽게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브이아이피’는 반대로 제가 가진 걸 무기로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보고도 그동안 많은 살인마 역할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표현된 것 같아서 좋았어요.

Q. 다소 잔인한 장면들이 직접적으로 나온다.

김광일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신이라고 생각해요. 그 신이 없다면 김광일이 유약해 보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분노를 일으켜야 하는데 부족했을 수도 있고요. 악역을 도전하며 연기적 쾌감보다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선한 역을 많이 해서 본능적으로 순화시키고 좋게 보이려고 하는 지점들이 생기더라고요. 예를 들면 뉘앙스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대사가 있는데 정의로운 역을 해오던 게 있어서 익숙한 쪽으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잘 잡아주셨어요. 그리고 첫 촬영이 프롤로그 장면이었는데 피를 많이 보고 자극적인 장면을 촬영하니까 속이 안 좋고 종일 멍한 기분이었어요.

   
 

Q. 선배 배우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고 하던데.

‘브이아이피’는 저에게 돌파구 같은 작품이었어요. 예전에 슬럼프가 심하게 온 적이 있어요. 저의 기본적인 성향과 성격, 자아가 캐릭터가 나아가야할 방향과 대립하는 순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괴로울 때가 있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대단한 연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까 싶었죠. 거짓말하는 것 같았고요. 이 영화는 제가 공감할 수 없는 인물이에요. 극과 극을 하면 오히려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예전에 ‘관상’을 찍을 때는 지금보다 선배들이 훨씬 더 어렵고 신인이라서 먼발치에서 바라봤어요. 그렇게 보면서 배웠어요. 내성적이라 그때는 못했지만 이번에는 선배님을 붙잡고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선배님들이 먼저 다가와주시기도 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Q.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들을 받았나.

김명민 선배님과 붙는 장면이 가장 많아서 자주 여쭤봤어요. 후배 질문을 그냥 넘기실 만도 한데 구체적으로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셨어요. 어떤 표정을 쓰면 좋은지, 웃을 때는 어떤 근육을 사용하는 게 효과적인지 등 실질적으로 연기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배워서 너무 감사했죠.

Q. 박훈정 감독과는 첫 작품인데 실제로 만나보니 어떤가. 상상하던 것과 다른 점은.

감독님이 이전에 각본을 쓰신 작품이나 연출작을 보면 중간이 없어요. 청불영화는 처음부터 딱 정해놓고 수위를 낮추지 않아요. 실제로 만났을 때는 굉장히 스마트한 느낌이었어요. 워낙 남자영화를 많이 쓰셔서 수염도 있고 마초적인 느낌을 상상했는데 굉장히 섬세하시고 성격도 ‘츤데레’세요. 최고의 칭찬이 “뭐, 괜찮았어” 정도예요. 아니면 약과를 주신 게 칭찬일까요. 현장에서 약과를 즐겨 드시는데 아무나 안주고 혼자 드세요. 저는 그나마 많이 얻어먹었어요(웃음).

   
 

Q. 현장에서 감독의 특별한 디렉션이 있었나.

지문에 ‘미소’라고 적힌 게 굉장히 많은데 여유로운 미소, 비릿한 미소 등 종류도 다양해요. 어쩔 때는 감독님이 “‘아메리칸 싸이코’의 크리스찬 베일 같은 느낌 알지?”라면서 시키는데 뭐 일단 알겠다고 하고 시도하는 거죠. 때로는 이 보이고 웃지 말라고 하시거나 한쪽 입 꼬리만 올리지 말라고 하시는 등 굉장히 디테일하세요. 아무래도 정확한 그림이 있으신 것 같아요. 아무 설명 없이 “너 왜 그런 느낌 있지? 알잖아” 이럴 때가 가장 난감해요.

Q. 가장 힘들게 촬영한 장면이 있다면.

첫 장면이에요. 프롤로그에서 광일이 살인하는 장면을 보면 거의 표정이 없어요. 그래서 어려웠어요. 어떤 감정인지 공감을 못하니까. 보통의 사이코패스처럼 쾌감을 느끼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지문에 있는 ‘미소’의 의미는 뭘까 고민했죠. 정말 테이크를 많이 갔어요. 그러면서 모호한 감정들이 나온 것 같아요.

Q. 그동안의 작품을 살펴보면 대중이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 같다.

시나리오를 읽고 제가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잘 해낼 수 있을지 살펴요. 그리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저를 보려고 해요. 예를 들면 제가 김광일이 아닌 채이도 역을 했다면 관객들이 보시기에 인상 쓰고 담배를 물고 있으면 ‘같잖다’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런 걸 많이 생각해요. 예전에 신인 때는 연쇄살인마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로맨틱 코미디도 해보고 싶어요. OCN 시리즈 같은 장르물도 해보고 싶고 코미디 영화도 욕심나요.

[인터뷰 ②]에서 계속.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 사진= YG 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