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군함도’ 류승완 감독 “마음은 거짓이 아니니까” 논란에도 흔들리지 않는 소신
[인터뷰] ‘군함도’ 류승완 감독 “마음은 거짓이 아니니까” 논란에도 흔들리지 않는 소신
  • 승인 2017.08.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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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이토록 뜨거웠던 영화가 있었던가. 단순히 흥행의 이야기가 아니다. 류승완 감독의 차기작 ‘군함도’가 흥행과 논란 사이에서 뜨겁게 소용돌이쳤다.

개봉 전부터 일본에서는 ‘군함도’를 픽션으로 치부했다. ‘군함도’의 제작보고회와 언론시사회에서도 일본 취재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이어 그 관심을 증명했다. 지난달 26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군함도는 창작된 이야기”며 “징용문제를 포함한 한일간의 재산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된 문제”라고 밝히며 영화를 부정했다. 반면 중국은 ‘항일 대작’이라며 큰 관심을 보였다.

모두의 관심 속에 개봉한 ‘군함도’는 개봉 첫날 97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오프닝 신기록을 세웠다. 기록적인 흥행과 동시에 스크린 독과점, 역사 왜곡 등의 이슈로 논란을 낳았다. 이처럼 이례적인 상황 속에서 류승완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만난 류승완 감독은 취재진의 지적을 인정하면서 묵묵히 자신의 진심을 밝혔다. 류승완 감독은 모든 배우와 스태프의 진심은 거짓이 아니라며 건강한 논쟁이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Q.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개봉 후에는 흥행과 논란이 함께하고 있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일본 정부의 공식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저와 영화를 역사적인 문제에 이용하는 태도를 보고 영화 인생 처음으로 공식입장을 보도자료로 냈어요. 영화를 처음 만들 때부터 꽃길을 걸을 거라는 생각은 안했어요. 캐스팅 단계를 보더라도 처음에는 일본인 역으로 일본배우를 캐스팅하려고 접촉했는데 시나리오 자체가 전달이 안됐어요. 일본 내 우익에게 받는 불이익 때문이죠. 군함도를 취재 차 방문했을 때도 모르게 다녀왔는데 관련 기관에서 한국 영화팀이 왔다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이전부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했죠. 이런 논쟁이 장기적으로 볼 때는 좋은 현상 같아요. 최근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로 등재하려던 사도광산을 스스로 포기하고 다른 후보지를 올렸어요. 그곳도 강제징용의 역사가 있는 곳이에요. 소모적인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군함도에 관심을 갖게 되니 영향을 받는 거죠. 일본이 관광지처럼 자랑하는 군함도의 강제징용을 인정하는 걸 바라고 있어요. 군함도는 지금 홍보영상이 말이 안 돼요. 유네스코에서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의 상징으로 하시마를 허락한 건데 일본은 그 이후에 생긴 시설들까지 묶어서 ‘군함도가 이런 곳이다’며 홍보하고 있어요. 저희가 알고 따지는 것과 모르고 따지는 건 다르잖아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더욱 건강한 논쟁으로 이어질 거라 생각해요.

Q. 영화는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흘러가지 않고 다양한 군상을 다룬다. 그래서인지 식민사관과 애국주의 등 상반된 견해가 충돌하고 있다.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식민사관을 조장하거나 옹호하지 않아요. 이 영화의 메시지가 어디로 가는지는 마지막까지 본다면 명백해요. 윤학철의 존재가 반전인데 감독으로서는 처음부터 친일의 문제를 다룬다고 밝히면 ‘군함도’의 집중도가 흐트러질 거라 생각했어요. 관람의 재미를 뺏는 게 되고 메시지를 조장하는 게 된다고 판단했어요. 일제의 식민지배가 나쁘고 전범국가가 잘못한 것은 당연하고, 이익을 추구했던 사기업의 행위가 나쁜 건 명백하게 드러나죠. ‘군함도’를 이분법으로 담고 싶지 않았다는 말의 핵심은 친일부역자를 다루지 않는 건 반쪽만 다루는 것이라는 거죠. 얕게 건드린다면 우리가 가져야할 단단한 힘에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했어요.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역사라 지금 이렇게 논란이 많지만 해야 하는 이야기라 생각해요.

Q. 영화의 중심이 되는 이강옥은 생존형 친일행위를 한다.

1944년, 1945년은 지식인들도 변질될 때에요. 가미가제를 찬양하는 기고문을 내기도 했죠. 3.1운동이 1919년이에요. 그로부터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극 중 이강옥은 30대예요. 이강옥의 변화를 잘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탈출하기 직전까지 본인과 딸만 생각하던 사람이 욱일기를 찢고 함께 힘을 모으면서 우리 모두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죠. 그 변화 과정이 중요했어요. 친일의 역사에 발을 담그던 사람들이 지금이라도 이강옥 같은 반성을 한다면 좋겠어요. 그리고 영화를 보면 적극적인 변절자들의 최후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Q. 군함도에 끌려온 조선인들이 노름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나오다. 역사왜곡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처음 군함도에 징용될 때 마치 조선인도 시설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사실 임금도 떼어가서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떨어지는 돈이 없어요. 그 안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을 텐데 힘든 와중에 삶을 찾으려고 했던 것들 중 종이에 화투를 그려서 하는 것이 있는 거예요. 담배도 일본에서 ‘우리는 이런 것도 해준다’는 보여주기 식인 거죠. 탈출 장면이나 그 안의 인물들에 관해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역사적 배경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상황과 인물이라는 거예요. 탈출 장면에서 조선인들이 사용한 무기나 방식들은 실제 파업사태가 벌어질 때 조선인이 했던 방식이에요. 다다미를 뜯어서 방패로 사용하거나 석탄을 던지는 등 모두 군함도와 군사전문가의 고증을 거쳤어요.

Q. 조선인들이 모여 촛불을 들고 결의를 다지는 장면은 지난해 촛불집회를 떠올린다. 의도된 장면인가.

추워질 때 찍었는데 당시 촛불정국이 한창이었어요. 영화 속 장면은 이를 참고한 건 아니고 원래 있었어요. 영화를 보면 폭격 때문에 전기가 끊겨요. 다들 초를 들고 다니니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당시 촬영 마치고 숙소에서 TV를 틀면 촛불이 나오곤 해서 영화가 공개되면 관련된 말들이 나오겠다는 건 예상했죠. 저는 오히려 이미지는 렘브란트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그 장면에서 중요한 건 한명의 영웅이 이끄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일어나는 느낌이에요. 처음에는 다들 말을 듣지 않다가 가장 나약해 보이는 소년으로 시작해서 모두가 들고 일어나죠. 그게 가장 중요했어요.

Q. 이렇게 많은 인원이 투입된 현장은 처음인데 통솔하기 힘들지 않았나.

너무나 특별한 현장이죠. 이정도 대규모 세트와 인원으로 또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요.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같은 생각이었어요. 연출 범위가 너무 깊고 넓어서 제 말도 전달이 안 돼요. 배우들이 서로 말을 전달했어요. 이 영화는 절대로 저의 통제로 만들어진 영화라 할 수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진 건 모든 사람들의 책임감과 태도가 특별했기 때문이에요. 6개월 넘게 배우들이 원하는 음식도 먹지 못하면서 촬영했어요. 30kg을 감량한 배우도 있어요. 본인이 더 유명해지기 위해서 그랬을까요. 이를 넘어선 무언가가 현자에서 작용했다고 봐요. 이 영화가 류승완의 ‘군함도’라는 건 그분들을 모욕하는 거예요. 영화에 참여한 모두의 ‘군함도’고 그 당시 군함도에 끌려갔던 그분들이 만들어낸 영화죠. 배를 타고 군함도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해무가 나오는데 CG가 아니라 실제 해무예요. 선장님도 이 바다는 해무가 없다면서 놀라더라고요. 김해숙 선배님 만나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어머, 혼령들이 오셨나보다’라고 하셨어요. 현장에서 탄광장면을 찍을 때는 배우, 스태프 모두 지쳐있는데 조감독이 무심결에 ‘그때 징용 간 분들이 어땠겠어요’라고 했어요. 저희는 ‘정말 힘들게 찍었으니 좋게 봐주세요’라고 말 못해요. 특별한 마음이 영화를 지탱해준 것 같아요. 그래서 흔들리지 않아요. 지금 이렇게 많은 논란이 있어도 저희의 마음은 거짓이 아니니까요.

   
 

Q. 황정민과 김수안이 만들어낸 부녀 호흡이 인상적이다. 황정민이 김수안을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행동들을 보면 영화 ‘인생을 아름다워’의 부자를 떠올린다.

이강옥 악단은 황정민 선배가 아니었다면 못 만들었을 거예요. ‘부당거래’ 때부터 탭댄스와 악기연주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식사하러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탭댄스를 연습하고 그래요. 뮤지컬배우니까요. 그래서 언젠가 저 재능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죠. 그리고 황정민 선배가 아이와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 ‘혹성탈출’ 표정을 할 수 있다면서 보여주면서 놀아요. 황정민이라는 사람이 이강옥을 만드는 데 계속해서 영감을 줬어요. 저는 황정민이라는 사람이 배우로서도 아이덴티티가 강하지만 굉장히 책임감 강하고 약자의 편에 설 줄 아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식과 친구 같은 좋은 아버지예요. 그 감성들이 고스란히 이강옥과 소희와의 관계에서 묘사되는 거죠. 제가 판은 깔았지만 다 황정민과 김수안이 만든 거예요. 황정민과 엄청난 재능을 지닌 김수안이라는 배우가 있어서 부녀 관계가 만들어진 거죠. 둘의 모습이 ‘인생이 아름다워’ 같은 걸작을 연상시킨다는 것만으로 영광이고 이는 두 배우가 온전히 받아야 할 칭찬이에요.

Q. 소지섭과는 첫 작품이다. 이전부터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무산됐다고.

계속 스케줄이 안 맞았어요. 하기로 했는데 무산된 프로젝트도 있어서 안타까움이 있었죠. 함께 하면서 소지섭에게 반했어요. 미남 배우가 겪는 ‘연기력이 미모에 가려진다’는 말이 딱 소지섭에게 해당되는 말이에요. 굉장히 훈련이 잘 된 배우라는 것에 깜짝 놀랐어요. 제가 원하는 동선, 톤의 빠르기나 높낮이 등을 정확하게 구사해요. 굉장히 놀랐어요. 그리고 시각적으로 빛나는 스타잖아요. 보이는 이미지에 굉장히 신경 쓰며 촬영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분명 어느 각도에서 조명 받으면 좋은지 알 텐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최칠성이 할 법한 자세와 행동이 있었어요. 정말 괜찮은 배우예요.

Q. 러닝타임 상 편집할 수밖에 없었던 장면들이 있다며.

나가사키 항에 도착할 때 계약 관계를 설명하는 장면이 있어요. 이미 군함도에 모였을 때 했던 게 있어서 편집했어요. 그리고 박무영이 섬에 들어가기 전에 스기야마 형사를 만나는 장면이 있어요. 그땐 거대한 양조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데 그 양조장의 전 주인이 최칠성이죠. 박무영이 그를 처단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시원하게 찍었어요. 멋진 장면이었는데 송중기라는 배우가 가진 스타성으로 인해 너무 쾌감을 일으키면 장르 영화처럼 이야기가 안내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편집했어요. 그리고 조선인들에 대한 디테일을 다룬 장면들도 몇 있었어요.

Q. 혹시 감독으로서 끌리는 시대적 배경이 있나.

이번 영화 만들면서 역사에 대해서 진짜 무지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예전에는 어떤 시대를 보면서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 영화를 끝내고 조선왕조실록을 다시 봤어요. 지금도 실록과 관련된 책들을 보고 있어요. 단순히 영화감독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이들의 아빠로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뉴스인사이드 정찬혁 기자 / 사진=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