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옥자’ 봉준호 감독 “육식 반대 아냐…병적으로 변해버린 관계 말하는 것”
[SS인터뷰] ‘옥자’ 봉준호 감독 “육식 반대 아냐…병적으로 변해버린 관계 말하는 것”
  • 승인 2017.07.0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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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옥자’로 돌아왔다. 봉준호 감독의 귀환은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다. 5000만 달러(약 570억 원)라는 거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옥자’는 글로벌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와 손잡은 오리지널 영화다. 틸다 스윈튼, 제이클 질렌할, 폴 다노 등 할리우드 배우들은 물론 CG로 만들어진 새로운 캐릭터의 탄생으로 국내외 팬들의 기대를 한껏 모았다. 거기에 제 70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까지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전통적인 방식의 극장 유통이 아닌 스트리밍 방식이라는 점을 문제 삼은 프랑스 극장들의 반발을 샀고, 국내에서도 스트리밍과 극장 동시 상영을 반대하는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의 반대에 부딪혔다. 계속해서 잡음이 끊이지 않던 ‘옥자’는 결국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을 제외한 단관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했다.

논란을 끝내고 이제는 영화를 즐길 차례다. 거대한 동물 옥자와 강원도 산골에서 함께 자란 소녀 미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옥자’는 동화적으로 다가와 섬뜩함을 남긴다. 대량시스템에 편입된 축산과 유전자 변형, 초국적 기업의 윤리 등 다소 민감하지만 현실로 다가온 문제들에 관해 봉준호 감독은 현실적인 무게감과 동화적인 상상력을 뒤섞어 우리 앞에 내놓았다.

Q. 첫 국내 기자회견부터 개봉까지 한 달 반이 걸렸다.

A. 스스로 대견스럽습니다. 칸에 가기 전에 첫 기자회견을 했죠. 칸, 뉴욕, 일본, 서울 등에서 회견 형태만 7번 했고 해외에서 인터뷰만 120번 정도 했어요. 하루하루 새로워요. 사실 상영문제는 스트리밍을 기반으로 하는 회사와 일을 했으니 처음부터 각오해야 할 부분이 있었어요. 다만 이렇게 칸에서부터 문제가 커질 줄은 몰랐죠(웃음). 이처럼 큰 예산이 들어가는 작품에서 감독이 모든 걸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예외적이에요. 기존 스튜디오는 꺼리는 내용이 많은데 예외적인 행운에 의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 수 있어서 좋았죠. 개봉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있는 것 같지만 최대한 절충하려고 노력했어요. 스트리밍이 되지만 극장에서 상영이 되고 특별 상영관이나 영화제도 있어요. LA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소유한 클래식 극장이 있어요. 타란티노 감독이 필름을 좋아하는데 그곳에서 ‘옥자’를 상영하기로 했어요. 타란티노 감독과 GV도 하고요. 토론토 영화제 특별 상영관도 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시체스영화제와 심지어 카자흐스탄 영화제에도 ‘옥자’를 상영해요. 저와 틸다 스윈튼은 전 세계 어디든 상영이 이어지면 좋겠다고 바랐었죠. 초청받으면 다 가기로 했어요. 스트리밍도 당연히 하지만 대형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기회도 계속 이어가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Q. 타란티노 감독의 극장에서 상영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A. 이전에도 만난 적은 여러 번 있어요. 뉴 베벌리 시네마는 타란티노 감독이 직접 프로그래밍하는 입장이에요. ‘옥자’는 특히 흥미롭죠. 넷플릭스와 작업하며 디지털로 찍었는데 이를 필름으로 다시 프린트하는 거잖아요. 타란티노 감독은 ‘광란의 컬렉터’인데 특별한 프린트를 소유하는 거니 침이 뚝뚝 떨어지죠(웃음). ‘옥자’를 시작할 무렵 한번 만났어요. 뉴 베벌리 시네마는 옛날 극장 구조인데 규모는 꽤 커요. 골수 영화팬들이 모여서 분위기가 좋아요. 한 달에 한 두 편씩 계속 프로그래밍해요. 영화광다운 멋진 인생이죠. 그곳에 ‘옥자’가 프로그래밍된 거죠.

   
 

Q. 칸에서부터 국내 상영까지 ‘옥자’의 유통방식으로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스트리밍 기업인 넷플릭스와 함께 한 이유가 무엇인가.

A. 미국의 전통적인 대형 스튜디오들의 관점은 대부분 같아요. ‘옥자’를 사랑스러운 가족영화로 만들었으면 했어요. 도살장 같은 장면을 빼길 원했죠. 그래서 새로운 스튜디오를 찾았고 아마존은 내용보다는 제작비가 문제였어요. 예산과 내용 모두 자유로운 건 넷플릭스가 유일했어요. 영화를 완성시키는 것이 중요해서 결정을 내렸고 지금까지 왔죠. 극장 상영은 그 뒤의 문제였죠. 단계별로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Q. ‘옥자’에서 다루는 소재나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고 예민한 문제다. 대형 스튜디오와 타협을 할 수도 있는데 끝까지 관철한 이유가 있나.

A. 한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했을 때를 보자면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오랜 시간이 걸려 구성하고 완성하는데 이런 저런 생각을 통해 100페이지가 넘는 시나리오를 쓰죠. 그 안에 들어있는 메시지와 주제는 써가는 과정에서 우려져 나오는 것이지 제가 사회적 메시지 하나를 전달하기위해 쓴 건 아니에요. 물론 그런 메시지 또한 영화를 재미있고 아름답게 만드는 데 공헌한다고 봐요. 모든 건 하나의 큰 덩어리라고 생각해요. 예전부터 ‘TV동물농장’을 많이 봐서 사람과 동물사이의 관계에 관해 생각했어요. 함께 살아가고 있고 저희 역시 잘났다고 까불지만 결국 동물 중 하나잖아요. 오랜 기간 함께 했는데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관계가 정말 이상해졌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정교한 기계 시스템까지 만들어가면서 말이죠. 한국에만 돼지가 천만마리고 그 중 80~90%가 하늘 한 번 못보고 금속 틀에서 살아가요. 육식을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자연스러운 건데 대량시스템이 편입되면서 동물과의 관계가 병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닭들은 A4 사이즈에서 평생 살아요. 이건 우리들과 얽혀있는 문제고 먼 미래도 아닌 가까운 문제예요. 생각해볼 문제고 창작자로서 충분히 이야기해볼만한 거였죠. 이러한 소재가 다큐멘터리는 많았지만 극영화로 만들어진 적은 사실상 거의 없었죠. 처음이라는 것도 저를 설레게 하는 요소였어요.

Q.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등의 검증된 배우들 사이에서 안서현이 빛났다. 전혀 기죽지 않고 주도적으로 극을 이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A. 어찌 보면 싱거운 캐스팅과정이었어요. 1번 미팅이 안서현이었어요. 기회는 공정해야 하니까 오디션으로 200명을 다 보긴 했어요. 허투루 본 건 아니고 영상, 사진 모두 봤는데 안서현이 1순위에서 한 번도 안 바뀌었어요. 틸다에게도 안서현 양에 관해 제가 찍은 사진과 카메라 테스트를 보내줬어요. 그랬더니 ‘이미 미자를 찾은 것 같다’며 여러 글을 써서 보내줬어요. ‘옥자’에서 틸다 스윈튼이나 변희봉 선생님의 캐릭터는 이미 배우를 염두에 두고 쓴 거니 맞을 수밖에 없는데 미자는 기적적이었죠. 처음에 ‘건축학개론’ 이용주 감독이 황인호 감독의 ‘몬스터’를 추천했어요. 아역이 연기를 골 때리게 잘한다고 했는데 정말로 저도 보면서 굴렀어요. 너무 재미있고 독특했어요. 캐스팅 과정에서 한 번도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았어요. ‘옥자’를 만들면서 제가 한 게 없어요. 안서현 양은 안정감이 있어요. 이 영화를 하면서 필요이상으로 비장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냥 ‘올해는 옥자 찍고 내년엔 다른 작품 찍고’ 정도의 느낌이길 바랐는데 딱 그랬어요. 평정심이 잘 유지되는 친구예요. 제이크 질렌할이 와도 무관심이더라고요(웃음). 너무 잘해야겠다는 의욕이 있으면 스텝이 엉키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부러 함께 신을 분석하기보다 잡담하고 옥자 모형을 보여주는 정도만 했어요. 그 자체가 좋아 덧칠하고 싶지 않았어요.

   
 

Q. ‘옥자’의 엔딩을 보면 완벽한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니다. ‘설국열차’의 결말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A. 영화의 결말을 처음부터 그렇게 구상됐어요. 보는 분들마다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저도 찍고 나서 편집하고 후반 작업을 하면서 다시 보면 매번 다른 느낌을 받아요. 그게 영화의 매력 같아요. 장면의 묘한 중립성이 있죠. 분명한 의도를 갖고 찍은 저조차 정서에 따라 다르게 느껴져요. 상처가 남아있다고 볼 수도 있고 파괴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죠.

Q. 관객들이 영화의 메시지나 결말을 두고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을 감독으로서 지켜보면 어떤가.

A.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그래비티’를 보면 굉장히 물리적이잖아요. 요즘은 그런 물리적 체험을 선사하는 영화를 찍고 싶은 충동이 있어요. 육체적으로 겪어 오히려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작품이요. ‘그래비티’를 보면 마지막 장면에서 그 감각과 느낌이 대단하죠. 그런 영화는 찍고 싶다고 찍어지는 건 아니죠. 강렬한 체험을 했어요.

Q. 차기작인 ‘기생충’이 그런 느낌인가.

A. 차기작인 ‘기생충’은 또 이전과는 너무나 다른 영화인데 그것도 시공간적으로 압축되어있는 건 사실이에요. 주요장소가 몇 군데로 압축돼 있어요. 독특한 가족들의 이야기고 SF는 아니에요.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 사진=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