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박열’ 이준익 감독 “아슬아슬하게 여기까지 왔다”…안주(安住) 모르는 고수
[SS인터뷰] ‘박열’ 이준익 감독 “아슬아슬하게 여기까지 왔다”…안주(安住) 모르는 고수
  • 승인 2017.06.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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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을 두고 ‘동주’의 A/S(애프터서비스)라고 말했다. 다음 영화는 늘 전작의 지적을 걸러내 만든다. ‘황산벌’, ‘왕의 남자’ 등 현상을 뒤트는 위트로 흥행의 맛을 봤던 이준익 감독은 ‘평양성’이라는 자기복제로 위기가 왔다. 그리고 2년 후 이준익 감독은 ‘소원’으로 돌아왔다. 새로움이 주는 쾌감보다 따뜻한 손길로 현상을 그려낸 이준익은 변질되지 않고 변화했다. 정공법으로 그러낸 ‘사도’는 사도세자와 영조의 아픈 가족사를 정화했다. 그리고 ‘동주’는 일제강점기에 행동으로 저항하고 시로써 감내하는 두 청춘을 그렸다.

성공이 아닌 ‘실패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은 그는 과장과 스펙터클을 덜어내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관객을 제압하는 ‘진짜 고수’가 됐다. ‘사도’, ‘동주’를 거쳐 ‘박열’에 이르기까지 이준익 감독은 정형화된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과감함으로 시대와 인물을 조명했다.

‘박열’에서 이준익 감독은 반일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났다. 일본 제국주의의 저항하는 독립운동가 박열을 그리지만 과장하거나 희화하지 않았다. 영화 속 박열은 “일본 권력에 반감이 있지만 일본 민중에겐 친밀감이 들지”라고 말한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그려진 박열과 그의 연인이자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에는 권력에 저항하는 뜨겁고도 유쾌한 아나키즘이 있다.

Q. ‘사도’, ‘동주’에 비해 영화의 분위기가 밝다. 감독의 예전 작품들이 떠오른다.

A. 자칫 엄숙주의나 지나친 반일감정에 호소를 했다간 박열과 후미코가 지켜냈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주관이 훼손될 수 있다. 과하게 희화하거나 심각하면 안 됐다. 어느 정도 기준을 잡고 찍어서 그 경계선을 달려왔다.

Q. 박열이라는 인물을 영화 ‘아나키스트’(2000) 각본을 쓰며 알게 됐다고 밝힌 바 있는데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에서야 영화 ‘박열’을 찍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영화를 제대로 찍을 준비와 자신감이 없었다. ‘동주’로 조심스럽게 검증을 해봤다. 일제강점기를 반일감정과 같은 프레임이 아닌 동주와 몽규의 시선을 통해 보는 시도를 했다. 인물을 통해 시대에 들어가는 시도가 크게 비난받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좀 더 과격한 인물을 시도했다. 가장 참혹했던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투쟁했던 두 젊은이를 그려도 욕먹지 않을 수 있게 불안과 염려 속에서 찍었다. 과도한 제작비와 스펙터클이 들어간다면 박열과 후미코의 신념이 가려지기 때문에 온전히 심리극으로 찍어내려고 했다. 이제 스펙터클의 욕망은 없다. 실패하지 않는 게 목표다. 아슬아슬하게 여기까지 왔다. 삐끗하면 집에 가는 거다.

Q. 유독 감독의 영화에는 클로즈업이 많다. ‘박열’에서도 클로즈업이 두드러지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A. 상황극이 아닌 심리극으로 찍으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클로즈업이 많다. 클로즈업이라는 건 인물의 심리를 관객들에게 자세하게 전달하기 위한 샷이지. 클로즈업된 화면에서 관객들이 포커싱하는 건 눈이다. 눈을 통해 내면의 세계를 관찰할 수 있다. 그 다음이 목소리다. 내면의 심리를 온전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클로즈업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동주’와 ‘박열’은 예산의 한계도 있다. 공간을 펼치면 보조출연이나 세트로 채워야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 영화는 상업영화의 태도를 갖고 있지 않고 과도한 제작비로 욕심을 내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상업영화로 포맷을 짰다면 지진 장면도 거창하게 나오고 폭도들도 등장하고 황태자 암살 장면도 넣었어야 했다.

   
 

Q. ‘동주’에 이어 이번에도 저예산으로 찍었다.

실패가 주는 피해를 감당하기 힘들다. 저예산으로 찍으면 관객이 많이 안 들어도 크게 실패하지 않는다. 개봉하면 세대 차이, 입장 차이, 세계관의 차이를 가진 관객들이 영화를 볼 거다. 영화가 어떻게 자리매김할지 궁금하다. 언제나 예측을 벗어나는 게 대중이다.

Q. 주요 장면들이 모두 일본어로 진행된다. 연출하는데 있어 어려움은 없었나.

A. 일본 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일본어 연기에 대한 염려는 없었다. 한국배우들이 하는 일본어 연기는 염려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놀랍게도 이제훈의 일본어 연기에 대해 일본사람들이 굉장히 좋게 봤다. 법정신에서 선언하는 내용에 있어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와 감정을 맞춰낸 것에 칭찬을 했다. 결국 일본어를 잘 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의미전달을 정확하게 하는지가 중요한 거다. 엄청난 노력과 훈련이 없으면 안 된다. 머리로 외운 걸 완벽히 체화시킨 거다. 카메라의 불이 들어오는 순간 상황에 맞게 감정이 나오려면 뇌가 아닌 몸에서 바로 나와야 한다.

Q. 영화에서 재현되는 박열, 후미코의 사진이 인상적이다.

박열은 그 사진을 의도적으로 찍었을 거다. 사진을 보면 왼손이 있지 않아야 할 위치에 있다. 그건 의도다. 사진사를 불러 다테마스가 있는 상황에서 찍은 거다. 영화가 아니라 오리지널 사진을 보면 옷깃이 벌어져있고 그 사이로 손을 넣는다. 주도면밀한 계획의 산물이다. 그 사진이 일본 신문에 실려서 일본 내각이 총사퇴 요구를 받았다. 전원 사퇴하라고 청문회가 열려 3일 동안 내각이 정지됐다. 이 사진이 역사에 남아 영화가 된 거다. 박열과 후미코가 재판장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건 당한 게 아니라 쟁취한 결과다. 영화를 볼 때 그런 맥락을 놓치면 안 된다.

Q. ‘박열’은 90%가 고증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장면과 인물, 대사까지 사실에 기반을 뒀다고 밝혔다.

A. 고증을 강조하는 이유는 관객들 때문이다. 일본에서 위안부, 군함도, 관동대학살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영화를 보며 날조고 왜곡이라고 한다면 모두 신문에 나오고 자료가 있다고 보여줄 수 있다. 심지어 재판장에서 박열이 입은 관복과 부채까지 고증이다. 신문에도 책에도 모두 나와 있다. 영화 속에서 이름이 나오는 캐릭터는 모두 실존 인물이다. 심지어 대사까지도 실제 했던 말을 넣었다.

   
 

Q.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아나키스트다. 어떠한 관점을 갖고 그리게 됐다.

A. 아나키즘이 현대에 와서는 페미니즘에 스며들었다. 남성의 억압에 저항하는 거다. 그 목적은 여성이 권력을 잡기 위함이 아니다. 과거에는 공산주의로 전환된 사람들이 많았다. 공산주의의 실패는 이미 20세기에 증명됐다. 아니키스트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권력의 부당성에 저항하는 거지 권력을 뒤집고 점령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광화문 촛불은 아나키즘이다. 같은 맥락에서 동물애호가도 아나키스트라고 볼 수 있다.

Q. ‘박열’을 관객들이 어떻게 보길 바라나.

A. 영화를 어떻게 보는지는 관객 각자의 몫이다. 강요하는 건 반칙이다. 입장에 따라 선플이나 악플이 달릴 텐데 악플을 모아 다음 영화를 찍는 거다. 일종의 애프터서비스다. ‘동주’ 때 지적을 동력으로 ‘박열’을 계산했다.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 사진= 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