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박열’ 이제훈 “좋은 작품 많이 했다는 말 듣고 싶어”
[SS인터뷰] ‘박열’ 이제훈 “좋은 작품 많이 했다는 말 듣고 싶어”
  • 승인 2017.06.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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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의 포스터가 나왔을 때 한 눈에 포스터 속 주인공이 이제훈이라고 인지하기 어려웠다.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카락과 수염, 조소 어린 눈빛에 평소 이제훈의 모습은 없었다.

‘박열’은 ‘왕의 남자’, ‘사도’, ‘동주’ 등 다양한 시대극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의 12번째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과 함께하길 고대했던 이제훈은 1923년 도쿄로 기꺼이 뛰어들었다. 이제훈은 6천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이 되어 그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발칙하며 유쾌한 모습을 선보인다.

“박열이라는 인물은 제국주의에 심취한 도쿄에서 어린 나이에 항일운동을 했어요. 3.1 운동 때는 고등학생이었고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3.1 운동 이후 국내에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 부족하다고 느끼고 도쿄 행을 결심한 것 같아요. 연기하는 저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이 대단하다고 느껴졌어요. 박열을 받아들일 때 지금은 우리가 의지나 개성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평등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차단되면 어땠을까를 생각했어요. 표현하는 측면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왜곡이 되거나 미화되지 않으려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연기하는 저의 모습을 최대한 삼자의 입장으로 관찰하려고 했어요.”

평소 이준익 감독의 팬이던 이제훈은 ‘박열’의 캐스팅 제의를 받고 흔쾌히 응했다. 하지만 대사의 상당부분이 일본어인 것과 실존인물을 그린다는 점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 이제훈은 동료배우들에게 부탁해 일본어 대사를 녹음해 들고 다니며 대사와 감정을 체화시켰다. 악몽에 시달릴 정도로 처절하게 준비했고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왔다.

“감독님이 테이크를 많이 가지 않고 주로 첫 테이크에 결정을 내리는 스타일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첫 테이크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행동과 감정을 담았어요. 그래서 다른 작품보다 집중을 많이 했고 노심초사했던 부분도 있어요. 표현을 간단명료하게 하려고 했죠. 감독님과 이전에 함께 했던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감독님에 관해 물으면 같이 있으면 너무 즐겁고 놀라온 기분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왜 다들 감독님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했는데 이번에 경험하게 됐죠. 너무너무 좋았고 앞으로 감독님께서 어떤 작품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고 싶어요. 해맑은 소년 같은 면이 있으면서 굉장히 해박하세요. 이야기만 들어도 시간이 금방가요. 큰 어른이신데 친구처럼 이해하고 공감하시는 모습을 보고 ‘정말 다르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감독님은 계속 보고 싶은 사람이에요.”

   
 

영화는 박열과 함께 제국주의에 정면으로 맞선 가네코 후미코라는 일본 여성을 조명한다. 박열의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의 시를 보고 매료돼 첫 만남에 동거를 제안한다. 두 사람은 정신적 신념을 통해 서로를 완성시켜 나간다.

“저희 영화는 90%의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에요. 영화 속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은 손을 잡거나 포옹도 하지 않아요. 처음에는 남녀의 끌림이 드러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의견을 제시했어요. 그런 장면이 있어야 첫 만남부터 동거를 제안하는 두 사람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죠. 감독님은 오히려 그런 장면이 전혀 필요 없다며 ‘정신적 신념과 동지로서 동거하는 거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같아서 만난 것이고 그래서 강렬한 거다’고 이야기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설득됐죠. 영화에서 심문 장면을 보면 박열이 후미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나요. 남녀 간에 의리와 존중이 필요하겠다는 걸 느꼈어요.”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은 최희서는 일본인이 봐도 착각할 정도로 자연스런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주’를 통해 최희서의 존재를 알았다면, 이제훈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최희서가 출연한 작품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저는 ‘동주’에서 최희서씨를 보고 ‘아, 이 사람이 드디어 나오네’라며 반가워했어요. 예전에 독립영화에서 처음 최희서씨를 봤을 땐 배우가 아닌 일반 분을 모셔와 연기를 시킨 것처럼 자연스러웠어요. 그 작품에선 영어를 정말 잘했어요. 그때 원석 같다고 생각했는데 ‘동주’에서 다시 보고 이렇게 작품을 함께 해서 굉장히 반가웠어요. 이 작품은 박열의 20대 초반을 그리는데 후미코와의 앙상블이 중요했어요. 최희서씨가 훌륭하게 잘 해줘서 저도 잘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한국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배우가 될 거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어려서부터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데 최희서 배우도 영화를 굉장히 많이 보고 지식이 많아요. 작품에 대해 심도 있게 들어가는데 있어 서로 신뢰가 있었죠. 이렇게 많이 영화적인 대화를 나누고 소통했던 건 처음 같아요. 실제로도 동지 같은 느낌이었어요.”

   
 

독립영화에서 연기를 펼치던 이제훈은 ‘파수꾼’, ‘고지전’으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이후 이제훈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하며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이제훈은 지금도 자신의 색과 의미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제가 어떤 작품을 선택하고 연기하는데 있어서 제 작품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다시 거론되고 의미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회자돼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었으면 하고요. 저의 배우관과 맥락을 함께 하는 부분이에요. 앞으로 계속 나아가다 다시 돌아봤을 때 배우라는 일을 의미 있게 잘 해냈다는 생각을 들었으면 해요. 다른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며 ‘저 친구, 좋은 작품 많이 했어’라는 말이 듣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뜨거운 20대 초반의 청년 박열이 있었다. 그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누구보다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이제훈은 박열을 연기하며 치열하기도 방황하기도 했던 자신의 20대를 회상했다.

“20대 초반을 돌아보자면 어려서부터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브라운이나 스크린에 나오는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화려함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요. 연기를 한번 해볼까 해서 뛰어든 시점이에요. 학원에서 배우고 극단에서 일도 하면서 꿈을 키웠죠. 조금 지나서는 배우라는 직업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고민했죠. 다들 군대 다녀오고 취업하고 발전이 있는데 저만 하고 싶은 것만 하다가 고립된 건 아닌지 두려웠어요. 배우라는 직업은 결과적으로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선택 받아야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혼란스러웠죠. 4년 정도 지나고 결심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배우의 길로 나를 다 던져야겠다는 생각에 25살에 학교를 새로 갔어요. 그리고 매니지먼트를 만나고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죠. 당시에는 하루하루 굉장히 힘들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 과정 덕분에 단단해진 것 같아요.”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 사진= 메가박스㈜플러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