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불한당' 설경구 “구기러 갔다 빳빳하게 펴져서 돌아왔죠”
[SS인터뷰] '불한당' 설경구 “구기러 갔다 빳빳하게 펴져서 돌아왔죠”
  • 승인 2017.05.1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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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데뷔 25년째를 맞은 설경구. 영화 데뷔 초, ‘박하사탕’으로 칸을 찾았던 그는 17년만에 다시금 칸의 레드카펫을 밟게 됐다. 역대급 악역으로 이전과는 또 다른 강렬함을 선보인 설경구에게 두 번째 칸 행과 쏟아지는 주변의 호평이 주는 의미는 더욱 남다르다.

그러나 서울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난 설경구는 ‘불한당’에 대한 기대감 대신 우려 섞인 반응을 먼저 내비쳤다.

“부담스러운 마음이 커요. 오늘부터 일반 시사를 시작하는데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도 많이하는 법이니까, 걱정도 되고요. 기자 분들이 영화를 좋게 봐주신 것 같은데 너무 철학적으로 봐주신 것 같아서 약간 부담스럽죠.”

이번 영화에서 범죄조직의 1인자를 노리는 악인 재호로 분한 설경구. 자신에게도 큰 전환점이 된 이번 작품에 출연을 결정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시나리오는 잘 읽혔는데 감독님을 만나보고 싶어서 연락을 했었어요. ‘나의 ps파트너’를 연출한 감독이 왜 ‘불한당’ 같은 영화를 하려 그러지? 정체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무간도’ 부터 내려오는 언더커버 이야기, 이런 기시감 있는 영화를 왜 하고싶어 할까 하는 것도 궁금했어요. 그래서 만나봤는데 ‘비슷한 영화들이 있는데도 이 영화를 하는 이유는 다른 길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스타일을 확실하게 낼거고 남자 이야기지만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봐왔던 영화는 안찍을거다’고 했었죠. 그런데 못믿겠더라고요.(웃음) 이후에 소주 한 잔 먹으면서 이야기 했는데 그 때는 변성현이라는 사람이 보였어요. 언변이 화려하지도 않고 포장도 잘 못시키고. 저랑 비슷한거예요.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확신이 강해서 ‘만약에 다른 쪽으로 안빠지면 죽여버릴거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험한말을 한 뒤 출연을 결정했죠.(웃음)”

그렇게 출연한 ‘불한당’에서 변성현 감독은 ‘설경구를 빳빳하게 펴 주고 싶었다’는 목표를 전하기도 했다.

“제가 제 이야기를 하면 그렇긴 하지만 전보다는 펴진 것 같아요. 처음 변성현 감독님을 만나러 갈 때 ‘나의 PS파트너’ 때 배우들을 ‘구겨버리고 싶었다’고 표현한 것이 재미있어서 갔었는데, 의외로 저는 빳빳하게 펴야 한다더라고요. 그 말이 재미있었어요. ‘나도 구겨야 하나’ 싶어서 갔는데, 재미있었어요. 조금 더 좋게 펴지는 앵글을 찾기 위해서 짜증날 정도로 요구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참아달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러한 변성현 감독의 디렉팅으로 설경구는 그간 선보였던 것과는 또 다른 악역 캐릭터를 완벽하게 입는데 성공했다.

“그 동안은 이렇게 빳빳하게 저를 펴 본 적이 없었죠. 그런 작품을 만나지도 못했었고, 저를 두고 감독님들께서 시도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저 역시 그냥 구겨지는게 편해서 그냥 했던 것 같기도 해요.”

   
 

설경구의 이번 연기 변신에서 조력자로 제 역할을 다해준 임시완 역시 ‘불한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아이돌 출신 연기자로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임시완이지만, 아직까지 다소 부족한 연기 경험이 불안하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설경구는 “안 불안했었다”고 말했다.

“시완이는 불안하지 않았었어요. 책을 보니까 두 남자의 이야기이긴 한데 현수의 성장담같았거든요. 이미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아이가 성장하는 이야기 같았어요. 그런 아이가 어떤 식으로든 버림 받으면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임시완이라는 맑은 이미지의 배우가 시작점으로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 아이가 악의 세계도 보고 여러 경험을 하면서 점차 거친 남자로 변해가는건데 그런 면에서 임시완이 적절한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앞서 언론시사회 당시 설경구와 임시완은 영화 속 서로의 관계를 ‘멜로’라 칭하며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설경구와 임시완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형 동생, 조력자 사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브로맨스를 넘어선 로맨스를 선보였다.

특히 엘리베이터에서 재호(설경구)가 현수(임시완)의 배신을 의심하는 장면은 마치 연인이 불륜을 의심하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킴과 함께 진득한 브로맨스를 느낄 수 있던 장면. 설경구는 이같은 이야기에 “저는 이 질문이 굉장히 반갑다”며 화색을 보였다.

“상황은 전혀 다른 상황인데 정말 그렇게 묘하게 연기를 했었어요. 사실 재호와 현수는 어깨동무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혀 스킨십이 없어요. 그런데 엘리베이터 장면에서 몸수색을 하는데 저는 그 숨소리가 참 묘하더라고요. 그게 호흡이 가빠질 신은 아닌데.(웃음) 관객분들에게도 ‘둘이 묘한데?’ 싶은 느낌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게 잘 전달됐다면 다행이에요.”

이어 설경구는 영화 속에서 자신을 향한 무한한 믿음을 보였던 병갑(김희원 분)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사실 저희 관계에서 처음 ‘사랑’을 시작한 건 김희원 씨에요. 처음에 캐릭터 분석을 하고 와선 ‘나는 재호만 짝사랑 하는 것을 콘셉트로 잡았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병갑이의 콘셉트에요. 친구지만 재호의 말이라면 그냥 무조건 믿고 실행하고, 재호의 ‘수고했어’ 이 한마디가 좋고 인정받은 것 같은거죠. 반면에 재호와 현수는 처음부터 믿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점점 눈길이 가고 끌리는 것으로 설정했었어요.”

   
 

이처럼 자신과 임시완의 영화 속 브로맨스가 주목받는데 대해 설경구는 “오히려 이 이야기를 촬영이 끝난 뒤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촬영이 끝나고 보신 분들께 멜로 이야기를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촬영 전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으면 헷갈렸을 것 같거든요. 처음에는 재호와 현수가 그냥 우정, 조력자 같은 느낌으로만 설정돼 있었는데 대화를 하면서 점점 사랑이라는 느낌으로 만들어 나간거라. 처음부터 멜로라고 생각하면서 시작했으면 시완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이야기를 들어서 정말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이 영화가 이렇게 나오지 않았을 수 있어요.”

이날 설경구는 ‘불한당’이 언론 시사회 이후 호평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사실 앞선 몇 편의 전작들에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흥행성적을 거뒀던 바, 설경구에게 이번 작품은 더욱 기대와 걱정을 안겨줬을법 했다.

“전작 몇 편들은 제가 너무 고민 없이 연기를 쉽게쉽게 했었어요. 그 때는 ‘그냥 연기 하면되지’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찍자 마자 자책을 많이 했었죠. ‘이러다가 그냥 사라지겠다’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면서 다시금 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불한당’이 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에게 괜히 딴지를 걸어보기도 하고, 서로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보기도 하면서 함께 작품을 만들어갔죠. 제가 보기에 재미가 없을 땐 솔직하게 ‘재미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을 정도에요. 그렇게 완성한 영화인데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흥행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작품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설경구는 ‘박하사탕’ ‘실미도’ ‘공공의 적’ ‘오아시스’ ‘해운대’ 등 무수히 많은 히트작을 보유하고 있는 배우. 그 중에서도 설경구가 직접 뽑은 자신의 인생작은 ‘박하사탕’이었다.

“제 인생작은 ‘박하사탕’이요. 앞으로도 아마 인생작은 계속 ‘박하사탕’일거에요. 그 때가 영화를 막 시작했을 때여서 저한테 굉장히 강렬했거든요. 기억이라는 것이 머리 속에 딱 박혀있어요. 굉장히 심적으로도 힘들었고, 너무 미안해고 잠을 못잘 정도로 괴로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각인이 되어있는 것 같고요. 사실 카메라 앞에 서본 경험도 많이 없을 때였는데 제가 안나오는 장면이 없고, 그에 따른 부담도 있었고. 많이 힘들었었죠. 그런데 그렇게 ‘박하사탕’을 완성한 뒤 영화제 10분만에 상영 전과 후로 인생이 달라졌다는게 피부로 느껴졌었죠. 모든 게 시작부터 끝까지 너무 커서 제 인생작으로 남은 것 같아요.”

이번 영화를 통해 생애 두 번째 칸 레드카펫을 밟게 된 설경구는 이에 대한 기대감도 빼놓지 않았다.

“예전 ‘박하사탕’ 때는 아무 생각도 없고 얼떨떨했던 덕분에 기억도 드문드문 남아 있어요. ‘박하사탕’ 때는 칸에 가서도 멀뚱멀뚱 있었거든요. 이번에는 칸에 가면 눈에 다 들어올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때 보단 지금이 더 좋아요. 저는 처음 영화 했을 때 영화제를 참 많이 갔었거든요, 그래서 주변에서 ‘너는 초반에 힘을 다 썼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번에 생각지도 못한 영화로 또 칸에 가게 되니까 예전보다 더 기분이 좋더라고요. 사실 이창동 감독님은 칸이 아니라도 어느 영화제라도 갈 것 같은 마음이 있었는데, ‘불한당’은 그런 취향과는 조금 틀리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더 의외라고 생각했고 반갑고 놀라웠어요.”

   
 

인터뷰를 마치기 직전, 이날 설경구가 인터뷰에 쓰고 온 모자 옆에 달려 있는 노란 리본이 눈길을 끌었다. 조심스럽게 연기자로서 가지고 있는 새 정권에 대한 기대감을 물었다.

“이 리본은 박철민이 준거에요.(웃음) 새 정권이요? 아무래도 예전보단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정서적으로 더 편해질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한민국이 조금 편해지고 숨쉬는 것 같아졌달까요. 앞으로 더 거침없어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과거에는 실제로 영화계에 전해지는 물리적 압박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좋아질 것 같아요. 관련해서 공약도 있으신걸로 알고 있고. 뭔가 대통령이 친근하고 편해보이니까 저는 좋더라고요. 같이 손 잡고 울어주실 수 있는 분일 것 같아요.”

[스타서울TV 홍혜민 기자/사진=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