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인권변호사→노무현 마지막 비서실장→19대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인권변호사→노무현 마지막 비서실장→19대 대한민국 대통령
  • 승인 2017.05.10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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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제 19대 대통령 당선인/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피란민의 아들, 유신 반대 학내 시위를 주도한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다.

제19대 대통령선거 개표를 모두 마친 10일 오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41.08%(1342만3762표)를 득표하며 제 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역임한 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2011년 야권통합의 기치를 내건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로 합류하며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2012년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그해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대선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우여곡절 끝에 단일화를 이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양자대결을 펼쳤지만 3.6% 포인트 차이로 패배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53년 피란민 출신으로 경남 거제에서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계란행상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75년 4월 경희대에서 벌어진 대규모 유신반대 학내 시위를 주도한 후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제대후 복학해 사법시험 2차까지 치른 다음 79년 합격자발표를 앞두고 시위 참여를 이유로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가 유치장에서 사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사법연수원 차석졸업이라는 영광을 얻었지만 시위 전력 탓에 판사 임용의 꿈은 좌절됐고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그는 당시 국내 최대 대형로펌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뿌리치고 부산에서 노무현 변호사와 동업을 선택했다.

두 사람의 법률사무소는 부산은 물론 인근 울산·창원·거제 등 지역 노동인권사건을 총괄했다. 그는 자연스레 재야운동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게 됐고, 87년 부산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상임집행위원을 맡아 6월항쟁을 주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언급을 종합해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에게 '영원한 비서실장'이라기보다 '영원한 친구'에 가깝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부산선대위원장을 맡은 문 후보를 향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재직 초기 과로와 스트레스로 10개의 이가 빠져 임플란트를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민정수석을 사퇴하고 히말라야로 트래킹을 떠났지만 노 전 대통령 탄핵안 국회 통과 직후 대리인을 맡았다. 2007년 3월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맡아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한미 FTA 비준 과정에 참여했다.

그는 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공식 발표하면서 끝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비극의 순간에도 담담함을 잃지 않았던 모습은 많은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를 정치권으로 이끄는 계기가 됐다.

문 대통령은 2011년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 '운명'에서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는 말과 함께 정치에 입문했다.

▲1953년 경남 거제 ▲부산남항초 ▲경남중·고 ▲경희대 법대 졸업 ▲1975년 학생운동으로 투옥, 서대문 구치소 수감 ▲육군 병장(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 만기 제대 ▲제22회 사법고시 합격 ▲민주사회를 위한 부산 경남 변호사 모임 대표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법무법인 부산 설립 ▲노무현 대통령후보 부산 선거대책본부장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청와대 비서실장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의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혁신과 통합 상임공동대표 ▲18대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18대 대선 후보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더불어민주당 19대 대선후보 ▲19대 대통령

[스타서울TV 이현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