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싱글라이더’ 이병헌 “이런 작품 보여줄 수 있어 신나”…이번에도 ‘역시 이병헌’
[SS인터뷰] ‘싱글라이더’ 이병헌 “이런 작품 보여줄 수 있어 신나”…이번에도 ‘역시 이병헌’
  • 승인 2017.02.23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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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마스터’ 등 최근 이병헌은 한국 극장가 흥행 주류인 범죄오락액션의 중심에 있었다. 한국은 물론 할리우드에서도 화려한 액션배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감성드라마로 돌아왔다. 주류 장르의 중심에 있던 그의 돌발적인 선택에 물음표가 생겼지만 그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공개된 ‘싱글라이더’는 ‘역시 이병헌’이라는 말이 나오게 만든다.

개봉 전부터 이병헌은 유별나게 ‘싱글라이더’를 아꼈다. 시나리오를 읽고 완전히 작품에 매료된 이병헌은 주연은 물론 공동제작에도 참여했다. 이병헌이 만들어가는 섬세한 감성연기는 소설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며 마침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블록버스터 대작이 아니기 때문에 몇 백만 관객을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와서 이런 좋은 감성을 얻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물론 취향이 아닌 분들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어갈 게 있는 작품이라 생각해요.”

‘싱글라이더’에는 이병헌은 증권회사 지점장으로서 안정된 삶을 살아가던 중 부실 채권사건 이후 가족을 찾아 호주로 떠나는 재훈을 연기했다. 영화는 재훈을 중심으로 그의 아내 수진과 호주에서 우연히 만난 워홀러 지나의 이야기가 흘러간다. 세 인물은 각자의 위치에서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대변한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멍해지긴 했지만 다 읽고 나서 일주일 이상 그 감정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어요. 영화를 보시는 분들의 감정도 같지 않을까 싶어요.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세 인물 모두 각자 대변하는 것이 있어요. 수진은 결혼하고 애를 갖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어느새 자신의 꿈과 희망, 목표를 잊고 살았던 인물이에요. 원래 자신의 모습,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엄마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가장 외로운 인물이에요. 재훈은 남녀를 불문하고 어떤 목표를 향해가느라 주변에 있는 행복들을 누리지 못하고 자꾸만 미루는 인물이에요.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쓸쓸한 인물이죠. 지나의 경우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시대의 청년을 대변하는 모습이에요. 그래서 누구나 공감하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는 주류 장르도 베테랑 감독도 아니다. 어찌 보면 주목 받지 못하고 흘러갈 작품이 됐을지도 모를 시나리오다. 수많은 작품 제의를 받는 이병헌의 입장에서 안전하고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의 완성도와 감성은 기어코 이병헌을 움직였다.

“좋은 감독과 일하는 게 모든 배우들의 꿈이고 바람이죠. 입증이 안 되고 전작을 볼 수 없는 경우는 모험일 수 있는데 믿고 가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어요. 바로 감독님이 이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라는 거죠. 몇 년에 걸쳐서 다듬고 또 다듬어서 한 글자를 더 빼거나 넣기 힘들 정도였어요. 이런 감성을 가지고 이러한 글을 썼다면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이주영 감독이라고 생각했죠. 기술적으로 더 화려하거나 더 가슴 아프게 그려낼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시나리오의 감성을 고스란히 보여줄 사람은 이 사람이겠지’라는 믿음인 거죠.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 문학작품처럼 느껴졌어요. 소설처럼 빠져들어 읽다보니 정작 대사가 많이 없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죠. 연기하면서 깜짝 놀랐어요(웃음).”

‘싱글라이더’에서 이병헌이 연기하는 재훈은 외형으로 보나 캐릭터로 보나 특별한 구석이 없다. 심지어 대사도 많지 않아 대부분의 감정을 눈빛과 행동으로 표현한다. 자칫 잘못하면 심심하게 전개돼 관객들의 집중이 흩어질 수 있지만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그의 눈빛은 매번 다른 감정을 말하며 관객들의 집중을 빨아들였다.

“눈빛으로 연기한다는 말보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을 두고 ‘저 사람은 화가 나면 숨기지 못한다’라고 말하는데 그런 게 모두 눈빛과 얼굴에서 드러나는 거죠. 감정을 지니고 있으면 주변에서 그 기운을 느끼죠. 영화라는 장르는 비현실적인 클로즈업이 있잖아요. 훨씬 더 쉽게 느낄 수 있죠. 그러한 기운이 지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대사가 없어도 의도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아요.”

   
 

이병헌은 자신이 느꼈듯 관객들도 여운이 오래 남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는 과거 섬세한 감성으로 마니아를 양산했던 ‘번지점프를 하다’, ‘달콤한 인생’ 같은 작품에 목말라있었다. 하지만 범죄오락액션 장르가 주를 이루는 최근 영화계에서 마음이 동하는 작품을 쉽게 만날 수 없었다.

“홍콩이나 일본, 우리나라를 보면 시절을 아우르는 장르가 있어요. 예전에 일본에서 풋풋한 청춘물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홍콩에는 ‘영웅본색’ 같은 느와르가 우후죽순처럼 생겼죠. 우리나라 영화계를 제가 감히 생각해 보자면 범죄액션물이 난리가 나기 전에는 다양했어요. 미국에 처음 갔을 때도 외국인에게 한국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다양해서 좋다고 했어요. 장르가 정해져 있어도 그 안에서 결말들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그런데 어느 순간 범죄오락액션이 가장 흥행에 성공하다보니 그런 시나리오가 발전할 수밖에 없는 거죠. 예를 들면 배우에게 휴먼드라마, 멜로, 코미디, 액션 장르의 시나리오가 들어와서 읽어보면 선택권은 분명 있지만 액션 장르가 가장 퀄리티가 높아요. 액션은 백 권 중 하나를 뽑은 거니 질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던 중 ‘싱글라이더’ 시나리오를 읽었으니 더 큰 욕심이 생겼죠.”

‘싱글라이더’는 그에게 연기적 쾌감을 가져다 준 작품이다. ‘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의 진가는 화려한 액션,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성과 상황을 진짜처럼 이해시키는데 있다. 아이러니한 건 이병헌의 행보는 영화적 메시지와 상반된다. 현재 그는 영화 ‘남한산성’ 촬영 중에 있으며 후속작도 정해졌다. 그는 ‘남한산성’ 촬영을 마치면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자신을 돌아볼 예정이다.

“정서적으로 너무나 큰 위안이 됐어요. 이런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신났어요. 아이러니한 건 이 작품 고를 때 미국에서 서부영화를 찍느라 몇 개월 동안 사막에 있었고 고생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리고 2개월 후에 ‘마스터’ 때문에 필리핀에 다녀왔고 남은 2개월 사이에 ‘싱글라이더’를 찍었죠. 저야 말로 어찌 보면 재훈보다 더한 상황 속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러니하죠. 이 작품에 너무 매료됐는데 영화의 메시지와 나의 삶인 반대인 거죠(웃음).”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 사진=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