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이병헌’이라는 세 글자에 우리는 믿고 본다 (‘마스터’)
[SS인터뷰] ‘이병헌’이라는 세 글자에 우리는 믿고 본다 (‘마스터’)
  • 승인 2016.12.2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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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배우요? 배우가 듣기에 가장 기분 좋고 행복한 말이 아닐까 싶어요.”

이병헌은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에 가장 부합한 배우다. 그가 ‘내부자들’로 받은 상만 두 자리 수다. 특히 올해는 그동안 아쉽게 놓쳤던 청룡영화상도 손에 들어왔다. 대한민국을 넘어 할리우드에서도 맹활약하며 동양 배우의 저변을 더욱 확대시켰다. 이러한 가시적 결과물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이병헌의 연기는 모두를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별출연한 ‘밀정’을 제외하면 국내작품으로는 ‘내부자들’에 이어 1년 만에 범죄오락액션 영화인 ‘마스터’로 돌아왔다. 조 단위의 거대 사기사건을 다룬 ‘마스터’에서 이병헌은 희대의 사기범 진회장으로 분했다.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국내작으로는 ‘내부자들’ 다음이니 비교를 하시더라고요. ‘내부자들’과는 톤이나 속도감 등 여러 가지로 다른 영화예요. 조의석 감독의 특기를 잘 살린 것 같아요. 굉장히 경쾌한 템포로 만들었어요. 우울할 수 있고 음침할 수 있는 소재의 영화지만 조의석 감독의 특기인 경쾌함과 빠른 스피드가 잘 드러난 작품이에요.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 감독에게 영화의 기획에 관해 들었을 때는 다큐멘터리성이 강한 영화가 나오겠다고 생각했는데 시나리오를 받고 완전히 상업적인 오락영화라는 것을 알게 됐죠.”

   
 

‘마스터’의 오프닝은 진회장의 연설로 시작한다. 수만 명의 청중을 앞에 두고 진회장은 울며 웃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뺏는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다가 연설을 마치고 돌아서며 한순간에 싸늘하게 변하는 그의 표정은 진회장의 캐릭터를 함축함은 물론 영화의 톤 앤 매너를 보여준다.

“몇만 명을 앞에 두고 마음과 지갑을 훔치는 연설을 하는 건 배우로서 재미있고 흥미로운 부분이었어요. 영화를 보는 관객도 제 앞에 속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라도 그랬겠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길 바랐어요. 이 장면에서 관객들이 몰입을 하고 빠져들어야 피해자나 김재명의 입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감독님이 연설문을 두고 한 달을 고심했어요.”

‘내부자들’에서 절묘한 애드리브로 유행어를 남겼던 이병헌은 ‘마스터’에서도 다양한 의견을 내며 신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중 인상 깊은 장면으로는 박장군과 김엄마를 화해시키며 서로의 손을 붙잡고 손등에 입맞춤하는 신이 있다.

“촬영 전까지 아이디어가 난무했어요. 원래 시나리오에는 그냥 손을 잡고 이야기하는 건데 그것만으로 두 사람이 싫다고 거부하는 게 어색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원네트워크를 창립하며 만든 구호를 복창하거나 노래를 제창하는 아이디어도 있었고 볼에 뽀뽀하는 아이디어도 있었죠. 그러다 결국 손등에 입을 맞추는 걸로 결정했어요. 사실 그 장면을 찍을 때가 새벽이었어요. 이런 애드리브를 할 때는 정신이 맑아야 해요. 그래야 다수가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판단이 서는데 당시에는 지친상태라서 촬영하고도 의문이 많았어요. 걱정돼서 다음날까지도 감독님께 문자를 보냈는데 현장 편집본을 보고 스태프들도 다들 좋아했으니 걱정 말라는 답을 받았죠.”

   
 

매 신 다양한 의견을 내고 애드리브를 준비하지만 이병헌은 “애드리브를 위한 애드리브는 아니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배우가 새로운 생각을 하고 애드리브를 하는 것은 현장의 스태프를 즐겁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위한 것이다”라며 “신을 명확하고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애드리브를 준비한다”며 소신을 밝혔다.

그의 이러한 디테일한 준비는 영어 발음마저도 드러난다. 이병헌은 극 중 필리핀에서 현지사람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눌 때 필리핀식의 영어를 구사한다. 그는 필리핀 배우들에게 같은 대사를 주고 녹음을 시켜 이를 참고로 연습했다. 진회장의 뱀 같은 성격이라면 상대방의 마음을 사기 위해 분명히 현지식 발음을 연습했을 거라는 해석 때문이다.

“캐스팅이 된 순간부터 어찌 보면 감독보다 자신의 캐릭터를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배우일거예요. 그래서 만약 배우가 감독에게 ‘대본에 제가 이렇게 나오는데 제 생각에는 이럴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하면 감독도 ‘저는 이런 느낌으로 쓴 거예요’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분명 배우의 말을 귀담아 듣는 거죠. 조의석 감독님은 배우들과 상의를 많이 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느낌을 많이 들게 해요. 그러면서도 너무 흔들리지 않아요. 가장 안 좋은 건 모든 아이디어를 다 수긍하는 감독이죠. 그러면 영화가 산으로 가요. 조의석 감독은 취할 부분은 취하고 자신이 주장도 관철해요.”

   
 

이병헌은 올해 할리우드 영화인 ‘매그니피센트7’, ‘미스컨덕트’와 ‘밀정’ 특별출연에 이어 ‘마스터’까지 전 세계적 활동을 펼쳤다. 현재는 김윤석, 박해일, 고수 등과 함께 ‘남한산성’을 촬영 중이며 ‘싱글라이더’의 개봉도 기다리고 있다.

“정말로 바빴어요. 영화 외에도 정말 많은 시상식 참여를 했어야 했고 심지어는 뉴욕, 홍콩 등에서 열린 시상식도 갔어요. ‘내부자들’로 받은 상이 정말 많았어요. 정말 고맙고 배우로서 영광스러운 순간이 많았던 한 해입니다. 받은 상들의 무게가 느껴지는 한해였던 것 같아요. 모든 배우들이 그렇지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틀 안에 갇혀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주의해요. 경력이 길어질수록 그 위험은 더 커지는 것 같아요. 매번 환기시키고 다른 측면으로 생각하려고 하는데 쉽지는 않죠.”

‘마스터’에서 진회장이 연설 하나로 모두를 설득하듯 배우는 연기로 관객들을 설득한다. 결과는 다르지만 사기꾼과 배우는 허구를 진실인양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 닮아있다. 이병헌은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진실이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것이 좋은 작품을 만든다”며 그가 그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케 했다.

“어떤 배우를 볼 때 ‘진짜 어떻게 저 긴 세월을 저렇게 훌륭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매 작품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 보여줄까’라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작품을 찾아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모습이 좋아보였는지 은연중에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 사진=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