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판도라’ 김남길 “영화 속 재난, 우리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
[SS인터뷰] ‘판도라’ 김남길 “영화 속 재난, 우리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
  • 승인 2016.12.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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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길 (인터뷰)

지진과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판도라’(감독 박정우)가 오랜 기다림 끝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는 최근 경주 강진과 정부의 치부가 드러난 현 시국과 맞닿으며 더욱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판도라’에서 김남길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직원 재혁을 연기했다. 날렵한 선과 어둠이 담긴 눈빛, 매번 사연이 담긴 캐릭터를 맡아온 김남길은 조금씩 연기의 색을 달리하고 있다.

김남길의 평소 모습은 ‘해적’의 능글맞은 장사정, ‘판도라’의 꾀죄죄한 재혁에 가깝다. 인터뷰 자리에서 “머리는 자주 감으면 안 좋아요”라며 너스레를 떠는 그(물론 머리는 감은 상태다)는 편한 차림으로 농담을 건네며 대화를 이끌어 갔다. ‘판도라’에서 외관상 편하게 보이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운 김남길은 그 이후 살이 잘 안 빠진다며 볼멘소리를 해 웃음을 자아냈다.

“우선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배우라면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도 선정 기준이지만 한 두 장면에 꽂혀서 욕심이 나는 경우가 있어요. 그게 ‘판도라’였어요. 굳이 망설일 이유가 없었어요. 엔딩이 마음에 들었어요. ‘판도라’는 할리우드식의 재난영화나 영웅이 아닌 한국적인 정서와 사실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우리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접근했어요.”

   
 

‘판도라’는 제작 기간만 총 4년이 걸렸다. 감독은 지진과 원전사고를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오랜 기간 전문 서적과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전방위적인 조사를 거쳤다. 투자와 촬영에서도 크고 작은 난관이 발생해 제작이 지연됐다.

“그 사이 다른 영화도 찍었는데 개봉을 안 해서 ‘내가 찍으면 개봉이 미뤄지나’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웃음). 처음에는 조바심이 나기도 했는데 많이 내려놨어요. 감독님이나 투자배급사에서 개봉시기를 두고 고민이 많았죠. 영화를 찍을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지진에 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가상이라고 생각하고 찍었는데 실제로 지진이 일어나서 나중에 진도 설정을 수정했어요. 실제 지진을 겪고 나니 트라우마가 심한 분들도 있더라고요. 잠깐 흔들리거나 소리만 나도 밖으로 뛰쳐나갈 정도라는 글을 보고 개봉 시기가 올바른 건지 고민도 있었죠”

현재 우리나라에는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원자력발전소를 가동시키고 있다. 원전 밀집도는 세계 1위다. 실제로 ‘판도라’와 같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판도라’는 있어서는 안 되는 최악의 재난을 사실적으로 시뮬레이션하며 현실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김남길은 “감독님이 보여준 자료 사진에는 뼈가 녹아 없어진 끔찍한 모습들도 있었다”며 “우리는 그러한 부분을 다 표현하면 오히려 이야기의 집중을 방해할 것 같아서 초기 증상인 반점, 각혈, 구토 등을 표현했다”고 영화 속 수위에 관해 말했다.

   
 

‘판도라’에서 김남길은 트레이닝복 차림에 부스스한 머리스타일을 하고 거친 사투리를 내뱉는다. 극 중 김남길이 연기한 재혁은 처음에는 재난 상황에서 도망가기에 급급하지만 나중에는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재난 현장에 뛰어든다.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사투리, 폭넓은 감정 연기까지 고려할 상황이 많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연기적으로 부족한 점이 보였어요. 빨리 개봉하면 몰랐을 텐데 시간이 지나고 다른 영화도 찍고 나서 보니까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었어요. 마지막 엔딩 장면이 마음에 들어서 참여했는데 촬영 전부터 부담이 많았어요. 총 3테이크를 갔는데 두 번째 찍고 나서 스태프의 반응이 신경 쓰이더라고요. ‘아쉽지 않아’라는 말이 들리는데 사실 다른 대화일수도 있는데 딱 그 말만 귀에 박히더라고요. 현장 사정도 매끄럽지 않고 체력도 소모돼서 감독님이 한 번 더 하자고 하는데 미안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났어요. 하면 할수록 좋아지면 몇 번이고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걸 알고 있어서 일단 쉬었어요. 그런데 조금 지나서 감독님이 다시 와서 ‘한 번 더?’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중간에 다른 촬영도 마치고 정말 힘들고 예민한 정도를 넘어선 상태에서 15분 동안 대사를 했죠. 그런데 결국 안 쓰셨어요(웃음).”

재난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고 작품성을 인정받아도 배우로서 부각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김남길은 “캐릭터도 분명 좋아야하지만 기본적으로 스토리가 가장 좋아야 한다. 스토리를 깨면서 배우가 돋보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소신을 밝혔다. 김남길은 재난 현장의 구조팀,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 가족들과 어우러지며 극을 이끌어 갔다. 분진을 뒤집어쓰고 아비규환의 상태에서 상대 배우와 합을 맞추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워낙에 마스크를 쓰고 시끄러운 재난 현장이라서 대사 전달이 잘 안됐어요. 상대방이 대사를 하고 제가 해야 하는데 안 들리니까 눈치를 봤죠. 결국 느낌과 눈빛으로 타이밍을 주고받았어요. 그래서 호흡이 잘 맞게 나올까 고민이 있었는데 후시녹음 때 잘 맞춰가면서 해서 생각보다 잘 나왔어요. 대사를 또렷하게 잘 들리게 할지 울리게 할지 고민했는데 감독님께서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좀 울리는 식으로 편집했어요.”

   
 

김남길은 배우 외에도 ‘길스토리’라는 NGO 단체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문화예술 전문가와 함께 서울의 골목길과 성곽길을 소개하는 영상과 오디오 가이드를 제작하고 있다. 이에 관해 그는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이벤트성으로 보이거나 이미지 구축을 위한 것이라고 오해할까봐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꼈다. 배우이자 비영리 단체 ‘길스토리’ 대표인 김남길의 최근 관심사는 뭘까. 그의 답은 영화와 사회를 아울렀다.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없을 수는 없죠. 먹고 사는 것과도 직결돼 있고요. 어느 순간 뉴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제도, 공권력으로 보호받는 것이 아닌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모든 것들이 주변 사람들, 우리 가족,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 사진=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