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고산자, 대동여지도’ 차승원, 종잡을 수 없는 마성의 배우
[SS인터뷰] ‘고산자, 대동여지도’ 차승원, 종잡을 수 없는 마성의 배우
  • 승인 2016.09.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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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출신 다운 큰 키에 부리부리한 인상. ‘삼시세끼’의 ‘차줌마’를 기대하기라도 했던 걸까, 직접 대면한 배우 차승원의 첫 인상은 생각보다 훨씬 강렬했다. 무심한듯 시크하지만 인터뷰 중간중간 슬그머니 내비치는 유머러스함에서 ‘종잡을 수 없는’ 차승원만의 매력을 엿볼 수 있었다.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차승원은 하루종일 이어진 인터뷰 일정에 다소 지친 모습으로 등장했다. 하루종일 기자들의 질문 세례에 지칠법도 하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테이블에 다가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던진 차승원은 조금 전 보였던 지친 기색은 온데간데 없이 여유넘치는 모습이었다.

‘삼시세끼’의 ‘차줌마’에서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주인공 김정호로 돌아온 배우 차승원은 전날 진행됐던 언론배급시사회에서 완성된 영화를 첫 관람한 소감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소감이요? 반반이었어요. 좋은 지점도 있었던 반면 조금 더 빠른 템포로 이야기가 진행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애초에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빠른 흐름의 영화는 아니니까 그런 지점들도 괜찮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담고 있는 이야기도 분명했고, 의도도 분명했다는 점은 만족스러웠고요. 일단은 이어질 일반 시사회에서의 반응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극 초반 우리나라의 절경을 담은 영상을 조용히 보여준다. 약간은 올드하다 느껴질 수 있는 클래식한 스타일의 자막과 풍경에 ‘빠른 흐름’에 익숙해져 있던 관객들은 생소함과 향수를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절경의 촬영을 ‘김정호’로서 함께 했던 차승원은 당시를 회상하며 감탄 대신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영화를 보는데 정말 풍경이 대단하더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저는 ‘저런델 내가 갔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멀리서 풍경을 본 게 아니라 한 지점에서만 촬영을 하다 보니까 ‘저랬었나’ 하는 생각이 큰거죠. (웃음)”

   
 

‘지도꾼’ 김정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만큼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는 일정 장소보다는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는 김정호의 모습이 더욱 많이 담겼다. 그만큼 촬영팀과 배우들 역시 국내 여러 지역을 이동하며 가장 아름다운 때 사계절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해 고생했을 터. 하지만 이번 촬영에서는 ‘하늘이 도운’ 것인지 다행히도 날씨 때문에 고생했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날씨가 안 좋아서 촬영을 못 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언 북한강을 찍었을 때가 작년 겨울이었는데, 당시 이상기온 때문에 덜 추워서 강이 잘 안얼어서 걱정을 하긴 했었어요. 하지만 그 마저도 마침 촬영을 할 때 강추위가 오면서 얼음이 어는 바람에 무사히 찍을 수 있었죠. 사실 언 강이나 늪 지대 등을 촬영하는 것은 시나리오에는 없었어요. 하지만 촬영을 하면서 여정 중에 그런 장면들도 넣었으면 좋겠다 하면서 넣게 된 거죠”

촬영팀과 차승원의 애간장을 태웠던 꽁꽁 언 북한강 신은 그 기다림 만큼이나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장면으로 완성됐다. 하지만 꽁공 언 북한강을 짚신만 신은 채 걸어 건너야 했던 차승원에게 해당 장면은 마냥 아름다운 장면만은 아니었다.

“언 강 신이요? 아무리 꽁꽁 얼어도 강 위를 걸어 건너는 것은 위험하니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죠. 또 그 때가 굉장히 추웠던데다 신발까지 불편하니까 촬영하면서 고생을 조금 했었죠”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보여주는 수 많은 절경들 중에서도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던 장면은 ‘백두산 천지’ 신이었다. 운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백두산 정상에 오른다고 해도 그 모습을 쉬이 보여주지 않는 탓에 CG없이 단 한번도 영화에 담기지 못했던 백두산 천지가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 것.

“백두산 천지에 가 보면 생전 처음 보는 풍경에 경외감이 들어요. 백두산이 왜 애국가 첫 소절에서 나올 정도로 의미가 있는 곳인지 가 보니까 알게 되더라고요. 제가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갔던 지역들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곳 역시 백두산이었어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제가 또 언제 백두산 천지에 가보겠어요. 특히 관광 코스가 아니라 다른 길로 올라갔었기 때문에 더 기분이 묘했었죠.

아마 김정호가 살던 당시에는 백두산이 더 오르기 힘들었을 거예요. 실제로 김정호가 백두산을 올랐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올라가보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해당 장면을 촬영했죠. 물론 2천 미터가 넘는 산을 걸어 오르려면 산짐승도 많았을테고 그 험한 길을 어떻게 올랐겠냐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게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많은 곳을 다녔던 사람인데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한 번 정도는 답사해 보지 않았을까 하는거죠”

   
 

차승원은 이번 영화에서 완벽한 지도꾼 김정호로 변신하기 위해 김인권과 함께 직접 목판 제작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전날 언론배급시사회에서도 목판 제작법을 배우며 힘들었다고 말했던 차승원은 이날 인터뷰에서도 “김정호 선생이 정말 대단한거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목판 제작 기술이 정말 많이 어려워요. 그게 진짜 기술이더라고요. 정확한 깊이에 칼을 대서 깎아내야 하는데다가 음각, 양각도 다 고려해야 하고 글씨까지 세밀하게 새겨야하거든요. 한 해, 두 해 잠깐 배워서 되는 것은 아니고 시늉만 내는거죠 저희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배우에게도, 강우석 감독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김정호’라는 인물이 실존 인물이긴 하지만 중인 출인이었던 탓에 남아있는 사료가 턱없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대동여지도’를 만든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를 왜곡 없이 전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

전국 팔도를 누볐던 촬영, 실제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을 연기해야한다는 부담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승원이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선택한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다.

“강우석 감독님이 제가 시나리오를 받고 3주 동안 묵묵부답이었다고 말씀하셨던데 사실은 출연 결정까지 일주일 정도 걸렸었어요. 사실상 ‘출연하겠다’ 마음 먹은 것은 시나리오를 읽은 직후였고요. ‘잘해야 본전이다’라는 부담감은 분명히 있었죠. 하지만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대 배우로서 한 사람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영화를 몇 편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또 ‘대동여지도’를 만들 정도로 위대한 사람인에도 인간 김정호는 헐렁하다는 설정 역시 많이 와닿았어요. 한 번쯤 도전해 봄 직 하다는 생각과 이런 영화를 언제 해 보겠나 하는 두 가지 생각이 가장 컸죠. 김정호는 혼자인, 외로운 사람이에요. 지도에 미쳐있지만 인간적으로는 굉장히 헐렁한 설정 때문에 여러가지 구성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여러 부담감을 이겨내고 도전한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차승원에게 특별한 영화로 남았다. 차승원은 이번 영화를 “배우 인생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표현하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인물을 따라가는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돌이켜보면 많이 안정이 됐던 것 같아요. 마음도 편해지고 여러모로 생각도 많이하게되고, 현장에서도 그렇고 나를 많이 내려 놨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어서 의미있었다고 표현했었어요. 이번 영화 이후에 앞으로 몇 작품을 더 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작품들을 거치면서 더 단단해 지겠죠.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드렸던 거예요.

(가령 어떤 점을 내려놓았나?) 예전에는 계산되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내가 만약 저 지점까지 연기에 도달하지 못하면 또 하면 되지’라는 여지를 두게 됐어요. 그랬더니 연기를 하는 데 의외의 감정들이 나오더라고요. 그간 저의 틀 안에 저를 자꾸 가둬두고 그런 면이 없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은 여러모로 조금 내려놓는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역사 속 위대한 인물이 아닌 ‘인간 김정호’에 초점을 맞춘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에 대해 차승원은 인터뷰 내내 만족감을 표했다.

“저희 영화를 보신 분들이 공통적으로 말씀하시듯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업적의 위대함 보다는 사람의 삶에 초점을 맞춘 영화에요. 위인이지만 가까이에 있을 법한 사람 같은 친근함이 느껴지는 이유도 그것이죠. 그러한 지점이 추석 시즌에 관객분들이 보시기에 편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오히려 ‘위대한 김정호’가 콘셉트였으면 별로였을 것 같다.

이번 영화는 배우 차승원과 강우석 감독의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도 화제를 모았었다. 촬영을 마친 지금, 차승원은 강우석 감독과의 호흡을 어떻게 기억할까.

“제작자 강우석 보다는 감독 강우석이 훨씬 좋았어요. 예전에는 여러 영화를 제작하고 감독하고 그랬던 어려운 분이었는데 현장에서 만난 ‘감독 강우석’은 제가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뭐랄까요, 스태프와 배우의 모든 것을 굉장히 잘 보듬어 주시는 감독님이셨거든요”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언론 배급 시사회가 끝난 후 차승원에게 가장 많이 쏟아졌던 질문 중 하나는 ‘삼시세끼’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김정호의 능청스러운 모습과 ‘삼시세끼’와 관련된 애드리브 등이 현재 차승원이 출연 중인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를 연상되게 한다는 의견이 줄 이었다.

“영화 속에서 ‘삼시세끼’가 연상됐나요? 글쎄요. 그게 득일지 실일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영화 때문에 ‘삼시세끼’에 출연을 괜히 했나 하는 생각은 없어요. 그것도 저의 일부이니까. 판단하시는 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1988년 모델라인 18기로 처음 연예계에 발을 디딘 차승원은 어느덧 데뷔 30년을 앞두고 있는 ‘대선배’가 되었다. 오랜 시간 켜켜이 쌓여온 경험과 연륜 속에서 차승원은 “과정을 잘 해보자는 생각”이라는 말로 배우로써 임하는 자신의 자세를 언급했다.

“과정을 좀 잘 해보자라는 생각이 있어요. 결과에 욕심을 내야겠지만 하루하루 과정을 잘 해보자는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내가 예상한 대로 세상은 흘러가지 않잖아요. 그래서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그 과정을 잘 수행해 나가자는거죠. 계획대로 사는 것도 물론 좋지만 당장 한시간 앞에 닥칠 일도 모르는데, 하루하루를 잘 좀 살아나가자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작년 드라마 ‘화정’부터 올해 ‘고산자, 대동여지도’까지 내리 두 편을 사극에 출연한 차승원은 “다음 작품은 사극을 그만해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직 무슨 작품에 출연할지는 모르겠고, 블랙코미디를 한 번 해 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SF도 좋고요. 비현실적인 설정 속의 현실적인 캐릭터. 재미있지 않을까요?”

[스타서울TV 홍혜민 기자/사진=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