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밀정’ 송강호 “자신감과는 정반대의 입장”…완벽 이상을 보여주는 배우의 연기태도
[SS인터뷰] ‘밀정’ 송강호 “자신감과는 정반대의 입장”…완벽 이상을 보여주는 배우의 연기태도
  • 승인 2016.09.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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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수를 계산해본 적은 없어요. 수를 세면서 연기하는 배우는 없어요. 영화를 혼자 만든 것도 아니고 저는 출연을 했을 뿐이지 그 숫자는 수십, 수백 명이 함께 만들어 낸 거죠.”

송강호가 어느덧 도합 1억 명의 관객동원을 앞두고 있다. 그 이상의 연기가 없을 것 같은 연기를 보여주는 송강호는 그동안의 공을 ‘함께 만든 것’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사도’를 통해 왕이 아닌 아버지 영조의 모습으로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 송강호는 올해 ‘밀정’으로 혼란스러운 시대 회색으로 살아갔던 인물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영화 ‘밀정’은 1920년대 말,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일본 경찰 사이의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린 영화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이어 ‘밀정’으로 송강호와 김지운 감독의 네 번째 만남이 성사됐다. 김지운 감독은 “최정상에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항상 깨나가는 것이 놀랍다”며 송강호를 극찬했다.

“김지운 감독과 20년을 알아왔는데 영화가 생각보다 훨씬 대중적으로 나와 깜짝 놀랐어요. 굉장히 스타일리시하고 작가적 색채가 강한 영화들을 해왔는데 이번에는 작정하고 대중적인 웰메이드 영화를 만드신 건 같아 지금까지 작업 중에 가장 기뻤습니다(웃음). 감독의 이전 작품을 보면 장르적 변주나 새로운 색채 등을 시도해 왔어요. 이번에는 이러한 부분을 내려놓고 대중적으로 다가가려고 했는데 감독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도전이죠. 이번 엔딩도 이전 김지운의 예술세계에선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본인 입으로도 그렇게 말하잖아요. 자신의 인장을 내려놓고 뜨거운 감성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밀정’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은 실제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의 주동자인 황옥을 모티브로 한다. 황옥은 일제가 심은 밀정이라는 설과 의열단이라는 주장이 지금도 갈린다. 송강호는 이러한 엇갈린 주장으로 인해 오히려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정출의 고뇌와 갈등을 보여준다.

“감독, 스토리, 캐릭터 모두 매력이 있었어요.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가 신선했던 것 같아요. 이분법이 아닌 회색빛을 띈 좌절의 시대를 관통했던 사람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감독도 이러한 시점이 아니었다면 굳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은데 할 필요가 없었겠죠. 감독도 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콘셉트와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가 분명해서 연출을 하려고 했겠죠. 영화를 보신 분들은 이정출의 선택에 있어 개연성을 따지시는데 김지운 감독은 일부러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이정출이 일제의 앞잡이로 충실히 살다가 갑자기 큰 개연성을 가지고 의열단을 돕는다면 영화의 매력이 없어지는 거죠. 한 사람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 단순히 어떤 개연성이나 한 사건으로 발생한다면 그 사람의 깊이는 얼마나 얇고 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작은 걸까요. 오히려 사람을 변화 시키는 건 알게 모르게 쌓여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2014년 송강호는 영화 ‘변호인’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기했고 2015년에는 영화 ‘사도’에서 영조를 연기했다. ‘밀정’에 이어 현재 촬영 중인 ‘택시운전사’까지 모두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을 바탕을 했다.

“‘변호인’, ‘사도’, ‘밀정’, ‘택시운전사’까지 하다 보니 다 실존인물이고 역사 속 사건을 담은 영화들인데 의도적으로 선택한 건 절대 아니고요. 단지 제가 배우라는 걸 떠나서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는 건 있어요. 학창시절에도 다른 점수는 다 낮은데 역사는 점수가 높았어요(웃음). 얼마 전에 ‘역사저널 그날’ 인터뷰도 했는데 유일하게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에요. 역사는 알고 있는 사건을 또 들어도 재미있어요. 물론 이는 개인적인 취향인 거고 배우로서 작품을 선택할 때는 또 다르죠. 실존 인물을 연달아 연기한 건 우연이에요.”

   
 

‘밀정’은 송강호와 김지운 감독의 네 번째 작품이라는 의미와 함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이병헌, 송강호, 김지운 감독의 재회이기도 하다. 이병헌은 ‘밀정’에서 특별출연 형식으로 의열단장 정채산을 연기했다. 이정출과 정채산의 첫 만남은 ‘놈놈놈’을 떠올리기도 하고 더 예전으로 간다면 ‘공동경비구역 JSA’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박찬욱 감독이 그 장면을 보고 ‘공동경비구역 JSA’가 생각난다고 그랬어요. 너무 오래된 영화를 말하더라고요. ‘놈놈놈’ 정도가 비슷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웃음). 초소에서의 첫 만남을 이야기하는데 그렇더라고요.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긴장감이 딱 그때 같았어요. 그런 면에서 ‘공동경비구역 JSA’를 좋아하시던 관객 분들에게도 반가운 마음이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이정출과 정채산, 김우진이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을 더 웃기게 찍었는데 편집에서 절제했어요. 보통 다른 영화에서는 남녀 배우들의 키스신이 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데 저희는 그 장면을 찍을 때 배우와 스태프가 가장 많이 모였어요. 실제로도 셋 다 술을 좋아하는데 주종이 달라요. 주량은 제가 가장 약한 것 같고 가장 센 건 병헌이가 아닐까 싶은데 두 사람이 대작을 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공동경비구역 JSA’가 어느덧 16년 전 영화가 됐다. ‘넘버3’, ‘반칙왕’, ‘살인의 추억’, ‘설국열차’ 등 다 나열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작품에서 송강호는 매번 다른 연기로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름자체로 신뢰를 주는 배우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송강호는 ‘자신감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다고 고백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도 마찬가지라 생각하는데 자신감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있어요. 노력도 많이 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외로움도 있는데 저희는 작품으로만 보이니까 잘 드러나지 않죠. 주변에서 저에 관한 좋은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과찬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20년 넘게 한길만 걸어온 것, 영화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신뢰감은 있지 않나 싶어요.”

   
 

한국 영화계의 중심에 서있는 송강호는 끊임없이 새로운 캐릭터와 연기로 대중을 즐겁게 했다. 그가 이처럼 다채로운 캐릭터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영화의 변화와도 궤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어느덧 천편일률적인 청춘스타들의 멜로물을 거부했고 다양한 장르와 연령을 대상으로 한 영화들이 제작됐다. 배우들은 흘러가는 시간을 거부하지 않고 그들에게 가장 맞는 작품을 선택하며 영화계를 풍성케 했다.

“예전과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꼭 청춘스타만이 영화를 찍고 활동하는 시대는 지났죠. 극에 맞게 연령에 맞게 다양한 영화가 창출되고 있어요. 어르신도 영화를 관람하기 때문에 젊은 배우들이 모든 걸 주도하는 시대는 지났죠. 건강한 발전이죠. 단순히 극장 수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배우 층도 관객층도 넓어지는 거죠. 그러면 이야기가 다양해져요.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선배들이 오래오래 하는 겁니다. 시장을 넓히고 작품을 넓히는 거죠. 지금 저는 안성기 선배님과 같은 분들이 노력한 성과로 혜택을 받는 거고 제 후배들도 그렇게 되겠죠.”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