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덕혜옹주' 박해일, 16년 영화 외길 “드라마 출연 안하는 이유는…”
[SS인터뷰] '덕혜옹주' 박해일, 16년 영화 외길 “드라마 출연 안하는 이유는…”
  • 승인 2016.08.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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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면 그를 떠올릴 때 따라오는 잔상이 꽤 오랜 시간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박해일의 경우가 그랬다.

박해일을 만나고 온 그날 이후 오랜 시간동안 그의 큰 눈과 한 마디 한 마디 천천히 내뱉던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았던 것. 그만큼 그와의 만남은 뇌리에 깊게 박힐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박해일은 데뷔 이래 단 한 편의 드라마에도 출연하지 않고 오로지 ‘영화’의 길만 걸어오고 있는 배우다. 2000년 연극으로 데뷔한 이후 벌써 16년이 지났으니, 한 편의 드라마 정도는 출연할 법도 한데 그는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하다보니 또 ‘덕혜옹주’로 영화를 하게 됐네요. 물론 같은 연기지만 그간 해 왔던 익숙한 지점과 낯설지만 새로운 지점들을 만나가는 연기를 하다 보니까 드라마는 자꾸 기회를 미루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앞길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다만 ‘왜 드라마를 하지 않냐’고 물었을 때는 저도 그 질문에 ‘왜’를 답하기 힘든 것 같아요. 제가 가야하는 대로 가는 것 뿐이니까요”

   
 

한 마디 한 마디 뚝심이 느껴지는 박해일의 대답을 들었지만, 그의 명품 연기를 브라운관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에 다시금 은근히 드라마 이야기를 꺼내봤다. 그럼에도 욕심이 났던 장르나 배역은 있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박해일의 답은 여전히 ‘영화’를 가리키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한 작품을 언급할 만큼 최근의 드라마를 많이 알고 있지 못해서 대답하기가 어렵네요. 드라마라는 장르도 굉장히 발전을 하고 있고 여러모로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게 더 영화적 접근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장비라던가 제작 시스템이라던가 하는 부분들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물론 결은 다르겠지만요.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두 분이갸 다른 장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만약 출연을 하게 된다면 준비를 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보니 또 다시 영화를 하게 되고, 이게 반복인 것 같네요(웃음)”

   
 

그간 박해일은 영화에 집중한 만큼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오며 끊임없는 연기 변신을 도모해왔다. 첫 주연작이었던 ‘질투는 나의 힘’부터 ‘국화꽃 향기’ ‘살인의 추억’ ‘연애의 목적’ ‘괴물’ ‘이끼’ ‘은교’ 등 이름만 대도 절로 입이 벌어지는 작품들에 출연해 온 박해일의 작품 선택 기준이 문득 궁금해졌다.

“작품이 많든 적든 한 몸이 하나의 작품을 선택해서 해 나갈 수 밖에 없다보니 영화적 기준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 시나리오가 가지고 있는 재미. 저라는 배우가 봤을 때의 재미, 호기심 등을 주로 고려하는 것 같고 거기서 출발해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 그런 부분들을 어떤 감독님과 같이 작품에 어우러져서 관객 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공통적으로 하는 것 같아요. 그 안에서 한 작품씩 해 나가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고요”

그런 박해일이 2016년 첫 작품으로 선택한 영화 ‘덕혜옹주’. 영화 속에서 박해일은 ‘덕혜옹주’의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까지 묵묵히 옆을 지키는 장한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출연을 결정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주셨을 때 잘 읽히기도 했거니와, 시대에서 해 볼 수 있는 캐릭터가 주어진다면 진지하게 접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때마침 장한이라는 캐릭터를 만난 거였거든요. 캐릭터 역시 여러모로 해 볼만 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고, 덕혜옹주라는 인물을 통해서 그 시대를 찾아보는 계기도 됐었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좋은 경험이었어요”

   
 

영화 속 박해일이 맡은 ‘김장한’은 덕혜옹주와는 달리 실존하지 않는 인물. 그만큼 인물을 연기할 때 느꼈을 어려움도 있었을 법 하지만 박해일은 “오히려 좋았다”는 말로 이에 답했다.

“실존 인물이 아니었던 탓에 좀 더 영화적으로 만들어가는 재미를 찾을 수 있었어요. 이번에 영화를 준비하는 시간이 충분해서 여유있는 시간을 가지고 감독님과 자주 만나면서 김장한이라는 캐릭터를 발전시키고 살을 붙일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죠”

이어 박해일은 ‘김장한’에 대한 애착도 드러냈다.

“김장한은 마음이 갔던 캐릭터였어요. 시대가 또 하나의 캐릭터라고 생각이 들었고, 시대와 맞물려서 위에 서 있는 인물들의 느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보니까 매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역사적인 이야기라던가 시대가 주는 공기들, 담아낼 수 있는 그림들이 다채롭기 때문에 캐릭터 적으로 다채로운 부분들이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덕혜옹주’에서 박해일은 ‘은교’ 이후 또 한 번 노역(老役)에 도전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의 실감나는 연기에 허진호 감독은 “박해일만큼 노인 연기를 잘 소화하는 배우는 없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을 정도. 두 번째 노역을 하는만큼 박해일에게 노하우가 생겼을까.

“노하우라기 보다는 부담이 덜 생겼어요. 첫 경험이 쉽지 않지, 영화 ‘은교’ 때 긴 호흡으로 확장된 캐릭터를 구축해 본 경험이 있다보니까 이번에는 그런 부분에서 많이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부담보다는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부분이 컸던 것 같고, 관객분들 역시 다양한 작품들에서 노인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들을 경험하면서 익숙해지시다보니 덜 부담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덕혜옹주’가 개봉하고, 박해일은 이제 ‘김장한’에서 벗어나 다시 배우 박해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작품을 하다보면 역할에 몰입하기 때문에 배우에게 ‘리프레시’란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어느 기간을 두고 끝날 때 까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호흡이 길죠. 그런데 이제 또 잘 잊기도 하는 것 같아요. 다만 시간이 지난 후 예상치 못한 순간에 과거에 촬영했던 기억들, 예를 들어 캐릭터의 미세한 부분들이 생각이 나는 경우나 비슷한 감정을 느끼다가 연결이 되는 부분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최대한 몰입된 감정을 방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애써 잊으려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이 내버려 두면 자연스럽게 시간이 주는 것도 있겠죠”

   
 

어느덧 배우계에선 선배보다 후배가 훨씬 더 많은 연차가 된 박해일에게 16년의 연기 경력은 부담감과 편안함의 경계에 그를 서있게 만든다.

“오랜 연기 경력이 주는 부담감과 편안함 사이를 미세하게 왔다갔다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아직도 여유롭거나 아주 편안한 상태는 전혀 아니거니와, 그럴 여지도 없지만 이유 없이 불안한 지점들이 조금 더 희석되고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알게되면서 중간 지점으로 다가가는 느낌은 있죠”

인터뷰 내내 바라본 박해일의 깊은 눈은 열 마디 말 보다도 더 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했던가, 주변을 압도하는 흔들림 없이 곧은 그 눈빛 하나로 ‘박해일’이라는 사람이 설명되는 기분이었다.

현재 박해일은 ‘영화 배우’ 답게 또 다시 출연작을 검토 중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가 김장한을 벗고 또 어떤 옷을 입을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스타서울TV 홍혜민 기자/사진=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