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덕혜옹주’ 손예진, 인생연기로 터닝포인트를 돌다
[SS인터뷰] ‘덕혜옹주’ 손예진, 인생연기로 터닝포인트를 돌다
  • 승인 2016.08.23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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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영화 ‘연애소설’로 충무로에 첫 발을 디딘 손예진. 수많은 작품을 거진 손예진의 14년의 연기 경력에서도 영화 ‘덕혜옹주’는 특별하다.

“시사회 이후에 이 정도로 호평이 있었던 영화는 처음이라 너무 감사하고 얼떨떨한 마음이에요”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연애소설’ 등 굵직한 로맨스 영화에 출연하며 청순 가련의 대명사로 자리잡음은 물론, 연기적으로도 호평을 받아온 손예진이기에 호평에 얼떨떨해하는 모습이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덕혜옹주’에서 손예진이 받은 ‘인생 연기’라는 호평은 이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특히 ‘덕혜옹주’는 손예진에게 ‘첫 눈물’을 안겨준 출연작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언론시사회 당시 영화를 관람한 후 눈물을 흘린 손예진이 기자간담회장에 살짝 충혈된 눈으로 등장하면서 이후 모든 인터뷰에서 ‘손예진의 눈물’은 화두에 올랐다.

“전 작품들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어요.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고 하니까 더 배신감을 느끼시는 것 같더라고요. 지난 작품들을 시사회에서 봤을 땐 영화를 보면서 ‘저기서 내가 어떻게 했고, 이렇게 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느라 바빠서 울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덕혜옹주’는 아무래도 역사 속 실존 인물이고,  같은 여자로서의 아픔들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서 그랬는지 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안들었어요. 배우가 자기 작품을 보고 울면 부끄러운데, 눈물 나는 것이 컨트롤이 안되더라고요(웃음)”

손예진은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운 장면을 ‘공항 신’으로 꼽았다. 어느새 늙어버린 덕혜옹주가 굽은 어깨와 힘 없는 모습으로 조국 땅을 밟는 장면은 관객들에게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주요 장면이다.

“가장 많이 운 장면은 공항 신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귀국하는 덕혜의 모습이 세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여자에 대한 이야기니까 제 세월이 느껴지는 것 같고, 비극적인 삶의 마지막이 뭉클하고 거기서 오는 연민도 컸던 것 같아요. 저 자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지점도 있었던 것 같고요”

‘공항 신’은 촬영 당시에도 많은 스탭과 배우들을 한 차례 울린 바 있는 장면이었다. 손예지는 이를 ‘감정적으로 아팠던 장면’으로 설명했다.

“해당 장면을 공항에서 촬영했을 때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많은 궁녀 분들과 함께 했었는데 스탭분들을 비롯한 모두가 다들 숙연했던 것 같아요. 정신없이 찍긴 했지만 그 와중에 눈물을 참고 있었죠. 후에 감독님께서도 기분이 이상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감독님도 그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를 시작하셨기 때문에 남다르셨던 것 같아요.

촬영 할 때는 궁녀로 참여했던 미란 언니도 울고 계셨어요. 덕혜가 공항에서 그렇게 걸어나오는 것이 너무 슬펐대요. 당시 궁녀로 연기하셨던 분들도 정말 많이 우셔서 그 때의 분위기는 거의 실제 눈물바다였어요. 그래서인지 그 장면이 감정적으로 많이 아픈 장면인 것 같고, 실제로 보니까 많이 힘들었어요”

   
 

2015년 후반 크랭크인 한 ‘덕혜옹주’의 대본을 받은 건 이미 오래 전 일이었다. ‘덕혜옹주’는 그간 손예진이 출연했던 영화 속 주인공들과 달리 실존 인물의 인생사에 기반하고 있는 작품인만큼 시나리오의 각색 작업에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았다. 손예진의 출연 결심의 이유 역시 궁금해졌다.

“첫 대본은 몇 년 전에 만났고, 각색 과정에서 영화가 많이 달라졌어요. 책의 원작에 많이 기반했는데 영화화하면서 망명 장면이 많이 들어가게 됐고, 뒷 부분이 자막처리된 거죠. 사실 ‘덕혜옹주’의 대본이 어떤 지점에 중점을 두냐에 따라서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각색하는 과정에서 빼고 들어가고가 많았고, 지금의 영화가 탄생했어요. 첫 대본을 봤을 때는 ‘덕혜옹주’라는 인물이 역사적으로 관심이 엄청난 인물이잖아요. 그럼에도 그런 부분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건 감독님과 잘 만들어 가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허진호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해도 영화 ‘덕혜옹주’의 타이틀롤인 덕혜옹주를 맡아 연기를 하면서 손예진이 느꼈을 부담감은 남달랐을 법.

“덕혜옹주는 일생이 너무나 비극적이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저는 사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라는 타이틀로 하다보니까 너무 힘들어서 ‘한 여자’로 생각했어요. 한 여자로서의 덕혜의 인생을 들여보면서 옹주로서의 덕혜보다 엄마를 생각하는 딸의 모습을 비춰주고 싶었어요. 실제 덕혜가 쓴 글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한 인간’으로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우리가 만들어야 할 덕혜, 관객들이 기대하는 덕혜, 실제 덕혜의 중간지점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고요”

많은 고민을 거쳐 완성한 캐릭터인만큼 완성 후에도 쉬이 거둬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진 않는지도 궁금해졌다. 하지만 예상 외로 손예진의 대답은 “아쉬운 점은 적다”였다.

“‘덕혜옹주’는 아쉬움이 정말 다른 작품에 비해서 많지 않은 영화인 것 같아요. 편집이나 촬영 각도 등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여러가지지만 저는 ‘덕혜옹주’에서는 그런 것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덕혜옹주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 뒷 모습을 보이며 울었던 것도 얼굴은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런 연출을 통해 충분히 관객분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좋았거든요. 최대한의 진정성을 가지고 가려고 했었고, 그런 부분에서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정말 아쉬움이 적은 것 같아요”

아쉬움은 적었지만 ‘덕혜옹주’를 촬영하면서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입되어 있던 탓에 찾아온 후폭풍은 꽤 컸다.

“영화 자체가 세월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저는 평소에 나이에 비해서 세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 세월이 흐른다는 게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이 있어요. 누구에게나 세월은 똑같이 흐르는 거고. 그러다보니 영화를 찍으면서 한 인간으로서도 생각이 많아지고, 숙연해졌던 지점이 있었어요. 그동안 너무 하나에 목숨걸고 살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생각이 많았던 영화였던 탓인지 지금은 촬영 당시보다도 더 몰입이 많이 돼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감정때문에 힘들어요. 아마 영화가 주는 애환이 깊게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누가 옆에서 조금만 자극하면 울 것 같은 느낌인거 있죠.(웃음)”

   
 

‘덕혜옹주’는 2005년 외출 이후 손예진과 허진호 감독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첫 만남 이후 어느새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다시 허진호 감독과 함께 호흡을 맞춘 손예진은 “역시 허진호”라는 말로 허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허진호 감독님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스타일이에요. 진짜 아닌 것은 이야기를 해 주시지만 굳이 ‘이렇게 만들어가자’하시는 스타일은 아니시거든요. 저희를 믿어주시면서 저희가 호흡을 맞춰가면서 찾아가게끔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역시 감독님을 많이 믿었던 것 같아요. 한 작품을 같이 했기 때문에 나오는 편안함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고요”

앞서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 ‘외출’ ‘호우시절’ 등 진한 멜로 감성을 담은 로맨스 영화를 연출해 온 허진호 감독. 그래서인지 허진호 감독 특유의 멜로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덕혜옹주’는 일부 관객들에게 팬심 섞인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손예진은 “‘덕혜옹주’는 또 다른 방식의 허진호식 멜로”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덕혜옹주 안에서 덕혜와 장한과의 지점이 애틋하다고 생각해요. 해변가에서 헤어질 때 이 들은 이 뒤로 오랜시간 못 만나는 것을 아니까 그게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또 비밀 가옥에서 감자를 먹고 모닥불 앞에 있는 장면이 정말 애틋했어요. ‘대놓고 멜로’는 아니어도 둘의 눈빛에서 오는 감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은 지점도 있었지만 영화 속에서 우리가 해야하는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던 것이 조금 아쉽긴 했었지만요. 이것 역시 또 다른 방식의 허진호 감독님 식 멜로가 아닌가 싶어요”

1999년 열아홉의 나이로 연예계에 발을 디뎠던 손예진은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든 여배우가 되었다. ‘믿고 보는’ 배우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을 부딪혀 온 만큼, 손예진에게서 풍겨나오는 배우로서의 자부심은 그녀를 단단하게 지탱하는 힘이었다.

   
 

“배우로서 오랜 시간 활동을 해오면서 여유도 많이 생기고 사람들을 만나면서의 부담, 작품에 대한 부담은 훨씬 즐기게 된 것 같아요. 감사하는 마음 역시 많이 생겼고요. 하지만 그만큼 주인공으로서의 책임감이 아주 많이 강해졌어요. 결과를 두고 좌지우지되면 안 되지만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은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은 편이고. 그러나 모든 직업이 힘들 듯이 저희 역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고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그런 무게를 견디는 것이 하나의 숙제인 것 같아요”

연기를 하는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는 손예진은 이제 ‘인생연기’라는 극찬과 함께 배우 생활의 제 2막을 열었다. 이번 터닝 포인트를 통해 손예진이 배우로서 또 한 번 성장한만큼,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연기들이 더욱 기대되는 바다.

[스타서울TV 홍혜민 기자/사진=영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