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운기 칼럼]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드러난 세대갈등
[홍운기 칼럼]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드러난 세대갈등
  • 승인 2016.07.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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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인자산관리 대표 홍운기

세상에서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이혼은 무엇일까? 답은 6월 24일 하루에만 전 세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2조 800억 달러를 증발시킨 브렉시트다. 미국의 억만장자 투자가이며 WL로스앤코 대표인 윌버 로스가 영국의 EU탈퇴 과정을 비유한 말인데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브렉시트(Brexit)란 영국(Britain)과 탈퇴(Exit)의 합성어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뜻하는 그렉시트(Grexit)에서 따온 말이다. 브렉시트는 현재 세계 금융시장과 언론매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핵심 키워드가 되었다. 국민투표에서 EU탈퇴 찬성 51.9%, 반대 48.1%로 마무리되었다. 3.8%의 근소한 차이로 영국 국민들은 탈퇴를 결정했다.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지 43년만의 일이다.

탈퇴 배경에는 남유럽의 재정위기가 있었다. EU의 재정악화로 영국이 내야할 분담금이 증가하자 EU를 사실상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고 있다고 불만을 가졌던 브렉시트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여기에 영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와 난민 유입 증가도 탈퇴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잔류를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그러한 문제를 감안하더라도 EU에 속해 있는 것이 영국에 더 큰 경제 이득이라고 본다. EU 회원국과의 수출입이 자유롭고 영국인들이 다른 나라에 거주하거나 취업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 주도권을 빼앗기긴 했지만 세계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EU 회원국이라는 자격 덕분이라는 것이다.

국민투표로 브렉시트가 확정되었지만 EU조약 50조에 따라 탈퇴가 진행되려면 2년의 협상기간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행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영국 내에서도 재투표를 하자는 움직임 등이 일어나면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영국의 EU탈퇴 자체 보다는 이처럼 기한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시장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는 그동안 수면아래 보이지 않았던 영국 내 사회문제를 가시화시켰다. 바로 청년층과 노년층 간의 세대 갈등이다.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에 의하면 18~24세 유권자의 75%, 25~49세 유권자의 56%가 잔류를 지지한 반면 50~64세는 44%, 65세 이상은 39%만이 잔류를 지지했다. 구(舊)세대와 신(新)세대 간 극명한 의견 차이를 보여주었다.

EU 분담금과 이민자 증가로 영국의 연금복지 재원이 부족해지면서 은퇴 후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년층은 EU에 남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영국은 섬나라라서 역사적으로 유럽에 포함되기 보다는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했고 그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EU체제 이전과 이후를 모두 겪은 노년층은 EU회원국이 아닌 영국 그 자체로 과거의 영광을 위해 도약할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태어날 때부터 EU 회원국의 일원이었던 청년층은 현 시스템에 익숙해져있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국가 간 거래비용이 증가하고 해외 취업도 현재처럼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또한 EU에서 지원하고 있는 각종 연구비 등이 중단 될 위기에 처한다. 청년들은 우리의 미래를 어른들에게 맡길 수 없다며 17세 이하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라는 청원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그런데 비단 이러한 세대 갈등은 영국 한 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이웃나라 일본을 들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7년~1949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일명 단카이세대)는 이전 세대보다는 20%, 이후 세대보다는 26% 많은 인구수를 기반으로 1970년~19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냈다. 2007년부터 이들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면서 가뜩이나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의 재정 상태는 더 악화되고 있다. 물론 과거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주역들에게 은퇴 후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시스템은 필요하지만 그 정도가 미래세대가 감당 할 수 없는 정도라면 세대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 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일본은 노년층이 기득권과 인구수를 앞세워 정치권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청년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정권을 세울 힘이 없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구하기 힘들며, 세금 부담은 날로 늘어만 간다. 결국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버텨나가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3포니, 5포니 하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러다 일본과 똑같은 길을 걷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전쟁」에서 저자 박종훈씨는 지금 대한민국은 세대전쟁의 전야 상태라며 그 심각성을 꼬집는다. 기성세대가 자신의 노후를 위해 젊은 세대를 착취하는 전략을 지속한다면 청년층의 소득은 감소하고 이는 소비의 감소, 경제성장 둔화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현재의 삶이 버거운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마저 포기하면 기성세대의 노후를 지탱해주는 젊은 세대는 더 줄어들고 재원 확보는 어려워져 기성세대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청년 일자리나 가족, 출산을 위한 복지를 늘리면 청년층이 경제활동의 주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근간이 되어 기성세대의 노후에 필요한 비용을 지탱해주는 가장 효율적인 투자가 된다는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농사꾼은 굶어 죽어도 씨종자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오늘 하루 밥을 지어 먹으면 당장은 배가 부르겠지만 내년 농사는 없다. 미래를 구상 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세대 간 반목은 경제에 악영향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통계나 수치로 계산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기회비용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길을 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한 세대의 이익만을 위해 나머지가 희생해야하는 방향으로 타륜을 움직인다면 배는 타이타닉호처럼 빙하에 부딪혀 침몰하고 말 것이다. 그 때는 남녀노소,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지금 영국이 걱정해야 할 것은 브렉시트 그 자체보다는 이 문제를 통해 수면위로 드러난 세대 간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가 아닐까.

/청인자산관리 대표 홍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