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아가씨’ 박찬욱 감독 “망설임 없는 사랑, 철저한 억압에서 벗어나는 이야기”
[SS인터뷰] ‘아가씨’ 박찬욱 감독 “망설임 없는 사랑, 철저한 억압에서 벗어나는 이야기”
  • 승인 2016.06.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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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영화에는 항상 ‘파격’, ‘금기’와 같은 단어가 따라 붙는다. 15년 동안 감금된 남자, 살인 복역 후 복수를 꿈꾸는 여자, 뱀파이어가 된 신부 등 박찬욱 감독은 인물을 극한으로 몰아가며 그들의 본성을 쥐어짠다. 그렇게 힘겹게 나온 한 방울의 메시지는 무엇보다 강렬하다.

영화 ‘아가씨’는 거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와 그녀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 분), 백작의 사주를 받고 하녀가 된 숙희(김태리 분), 후견인 코우즈키(조진웅 분)의 속고 속이는 관계를 그린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개봉에 앞서 ‘아가씨’에 관해 “모호한 구석이 없는 영화”라며 해피엔딩이라고 못을 박았다. 확실히 ‘아가씨’는 감독의 전작과는 궤를 달리한다. 영화는 전작에 비해 명확한 구성과 주제를 갖고 있다.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그것이 인물들에게 큰 장애를 가져오지 않는다. 인물들을 극한까지 몰고 가지 않는다는 점과 명확한 결말은 이전 작품과의 큰 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달하는 영화의 매력은 여전히 강렬하다. 대사는 더욱 유려해졌고 박찬욱 감독 특유의 세밀한 미장센은 시각을 점령한다.

파격적인 소재를 다뤄 우려를 했을 텐데 호평을 받고 있다.

다행이죠. 흥행에 대한 부담이 컸어요. 제작비가 많이 들었어요. 이렇게 까지 많이 들어갈지 몰랐는데 예산을 짜고 보니 깜작 놀랐어요. 폭발 장면이나 자동차 추격도 없고 대규모 엑스트라도 없는데 말이죠. 19세 관람가라는 것도 작용을 해서 걱정을 했는데 호의적인 평이 많아서 손익분기점에는 도달하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생겼어요.

‘아가씨’에 관해 스스로 상업영화라고 지칭했다. 감독이 생각하는 상업영화는 무엇이고 이번 영화에서 친대중적인 요소가 무엇이 있는 지 궁금하다.

모호하지 않은 영화죠. 원래 그러한 기준을 갖고 있던 건 아니에요. 그전 영화들도 늘 상업영화라고 생각하면서 했고, 다르게 접근했던 적이 없었어요. 어떤 영화는 흥행되고 안 되고 그 차이가 뭔지 잘 몰랐어요. 예를 들면 ‘올드보이’는 근친상간을 다루고 있어서 상업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잘됐죠. 또 흥행이 잘 된 게 ‘친절한 금자씨’인데 외견상 상업적인 흥행이 어려워 보였어요. 같은 마음으로 만들었던 ‘박쥐’는 잘 안됐어요. 그때까지도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 칸 영화제를 보내기 위해 ‘아가씨’를 어느 섹션에 넣을까 고민하게 됐죠. 경쟁부문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모호한 구석이 없이 모든 게 분명히 해결되는 이야기라서 말이죠. 그래서 스스로 생각해보니 상업영화의 기준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원작이 영국소설 ‘핑거스미스’다. 각색하면서 원작과 달리하고 싶었던 부분과 가져오고 싶었던 지점은 무엇인가?

원작에는 뒷부분으로 가면서 출생의 비밀이 나오고 어머니 시대의 이야기가 등장해요. 분량 면에서 봤을 때나 흐름상 썩 재미있지 않았고 현대 관객들에게 호응 받을 내용도 아니었어요. 사라 워터스는 빅토리아 시대 통속 대중 문학을 연구한 학자출신의 작가고 ‘핑거스미스’라는 원작도 그런 전통에 입각해 쓴 소설이에요. 그 소설에서는 출생의 비밀이 자연스럽게 보이고 의도도 분명해요. 하지면 영화로 옮기면서 더군다나 한국영화로 옮기는데 이를 빅토리아 시대의 통속에 입각해 보시는 분은 없어요. 그래서 현대적인 각색이 필요했어요. 살리고 싶었던 건 첫 번째는 1부의 반전이었고 두 번째는 같은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었어요. 세 번째는 이를 갈아주는 장면이었고 네 번째는 두 여성의 첫 정사신에서 나누는 대화와 행동들이었어요. 뻔히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모습들이나 첫 관계에서 오는 부끄러움과 떨림을 감추려는 행위들이 교묘한 재미가 있어요.

원작 ‘핑거스미스’는 하녀를 지칭하는데 비해 영화는 아가씨를 지칭한다. 그리고 영어 제목은 다시 ‘하녀(The Handmaiden)’, 프랑스 제목은 ‘아가씨(Mademoiselle)’다.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제목을 바꾼 의도가 있나?

한국제목은 각본을 쓰기 전에 회의하다가 그냥 갑자기 튀어나왔어요. 하녀는 하녀인데 히데코쪽을 뭐라고 정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아씨’ 또는 ‘아가씨’, 시집 안 간 사람도 아가씨라고 하죠. 아가씨라는 단어가 생김새도 그렇고 발음도 좋았어요. 아가씨는 어찌 보면 오염된 단어이기도 아잖아요. ‘술집 아가씨’와 같이 남성으로 인해 오염된 단어죠. 그런 오염으로부터 되살리고 싶은 아름다운 말이었어요. 그리고 생각해보니 원작인 ‘핑거스미스’는 하녀를 지칭하는데 한국은 아가씨를 지칭하니 균형이 잡혀서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영어 제목은 다시 뒤집어 하녀를 지칭하니 재미있을 것 같았죠. 불어 제목이 ‘마드모아젤’이 된 건 제 의도는 아니었어요.

   
 

‘아가씨’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다. 일제강점기라고 무조건 억압이나 항일적인 메시지를 담을 필요는 없지만 ‘아가씨’에서는 특히 그런 부분이 드러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선택했다고 해서 항일만 이야기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어찌 보면 ‘아가씨’도 항일을 말하고 있어요. 이 영화에서 최고 악당인 코우즈키를 생각해보면 영화는 그 사람의 억압에서 벗어나고 그를 파멸시키는 이야기예요. 코우즈키는 보통 친일파를 넘어 ‘슈퍼 친일파’죠.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을 사랑하고 숭배하는 인물이에요. 그 사람과의 전쟁이죠. 반쯤은 말장난으로 볼 수 있지만 넓게 봐서는 그런 의미도 있어요. 항일영화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런 문제의식은 분명 갖고 만든 영화예요.

이번에 숙희 역을 맡은 김태리를 보면 ‘올드보이’의 강혜정이 떠오른다. 둘 다 박찬욱 감독의 선구안이 적중한 케이스다. 김태리는 어떤 부분에 끌려 캐스팅하게 됐나?

두 사람 다 오디션이 얼마 안 되서 직관적으로 임자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미있는 건 나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같이 있는 사람이 모두 그렇게 느꼈다는 거죠. 그때는 통합적인 느낌이었는데 나중에 따져보니 우선 외모가 자연스럽고 개성이 있고, 태도가 솔직하고 꾸밈이 없었고, 연기는 상투적이지 않았어요. 실제로 그러지 않았지만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심사 채점표 항목이 있었다면 외모, 태도, 연기 등의 모든 항목에서 우수했던 거죠.

동성 애정신이 화제가 되고 있다. 뜨거운 관심이 몰리는 만큼 평 역시 다양하다. 

남성적 시각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너무 쉽게 하는 말 같고요. 그런 표현은 그냥 감독이 남성이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럴 것이다’라는 선입견 이상을 넘는 진짜 주장이 되려면 좀 더 구체적인 장면에서 앵글에 관해 말하던지 분석적인 지적이 있어야죠. 그래야 나도 거기에 대해 ‘아니다. 이건 그런 의도가 아니라 이런 뜻이다’라는 식으로 해명할 수 있지 그냥 뭉뚱그려 이야기하면 뭐라고 답할지 모르겠어요. 저로선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아주 조심했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네요. 그리고 관음적이라서 남성적 시각이라는 평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여성감독이라고 여성주의 시각을 가진 감독이라고 해서 관음적인 장면을 찍지 말라는 것도 없는 거죠.

   
 

지금까지 감독의 전작은 사회적 금기를 통해 인물을 극으로 몰아세웠다. 이를 통해 극한에서 나오는 인간의 본성을 그리곤 했는데 이번에는 사회적으로 터부시한다고 볼 수 있는 동성애를 다루지만 이것이 히데코와 숙희 두 인물에게 어떠한 장애가 되지 않는다. 전작과는 달라진 부분이라 볼 수 있는데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었나. 

이번에는 금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극의 전개에 있어 자연스럽게 보이죠. 그게 제 의도입니다. 극이 흘러감에 따라 두 사람의 사랑은 어떤 망설임도 없어요. 망설임이 있다면 그건 다른 종류죠. 서로 속이는 부분들에 있어서는 망설임이 있지만 동성이라는 것에는 거리낌 없고 주저하는 것도 없어요. 심지어 ‘이래도 되나?’하면서 돌이켜보는 것도 없죠. 그런 것이 통쾌하다고 생각해요.

‘아가씨’는 관객들이 어떤 영화로 인식했으면 하는가? 영화의 의도를 명확히 말하자면?

‘아가씨’는 억압에 맞서는 사람의 이야기죠. 이 억압은 아주 구조적이고 내면화된 억압입니다. 이런 철저한 억압들을 마침내 벗어나는 사람들이 이야기죠. 그것의 아름다움과 용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스타서울TV 정찬혁 기자 / 사진= 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