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인터뷰] ‘펀치’ 김래원 “역할마다 다른 숙제, 그거 하나 잘하고 싶어요”
[SS인터뷰] ‘펀치’ 김래원 “역할마다 다른 숙제, 그거 하나 잘하고 싶어요”
  • 승인 2015.03.1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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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TV 이현지 기자] 사람이 변하는 건 큰 계기가 필요하지 않다. 돈 때문일 수도 있고 어느 날 가져온 생각의 변화일 수도 있다. SBS 월화드라마 ‘펀치’(연출 이명우 l 극본 박경수) 박정환은 정의로운 검사를 다짐하는 검사 선서를 대표로 했지만 결국은 이런 저런 나쁜 짓을 해 승승장구한다. 그런데 몇 달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는데 그 사이 이태준(조재현 분)은 전 부인을 감옥에 보낸다. 그래서 속죄하고 ‘정의를 위한’ 검사로 인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제가 박정환이면 그렇게 못 매달리죠. 박정환의 집착이에요. 후회는 후회고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낼 거예요. 박정환은 저보다 강한 인물이에요. 집착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잖아요. 죄없는 사람에게 죄 만들어 주고 부패 대가의 돈으로 딸 교육 시키고. 대사에도 ‘당신 그 더러운 손으로 예린이 안아줬어’ 이런 게 나와요. 그래서 죽음 앞에서는 더 집착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펀치’를 촬영하는 동안 박정환이 세상과 멀어져 가는 것처럼 김래원도 말라갔다. 시청자들은 그래서 더 박정환의 얼마 남지 않은 삶에 몰입했다.

“예민해서 영향을 많이 받아요. 제가 워낙 잘 붓는 체질이라 촬영하면서 잘 못 먹으니까 금방 살이 빠졌어요. 화면에 나쁘지 않게 보였어요. 아파가는 걸 표현하는 건데 박정환의 진정성에 도움을 줄 것 같았어요. 저녁을 조절하거나 샐러드를 먹기도 했어요. 밥 먹으면 늘어지는데 박정환은 졸리면 연기하기 힘들었어요. 촬영하면서 3kg 정도 더 빠졌어요. 체중 조절을 그만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더라고요.”

   
 

‘펀치’는 매 순간 순간이 명장면이고 명대사였다. 극을 이끌어간 김래원에게 있어 최고의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다 기억에 남아요. 한 가지를 꼽자면 시한부 인 것을 알고 꼿꼿하게 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이태준 총장 취임식에 같이 입장할 때요. 그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비릿한 웃음, 미소. 그때 그 표정이… 저를 중심으로 촬영한 게 아닌데도 기억에 남아요. 비주얼도 나쁘지 않았고요.”

‘펀치’를 보면 영원한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없다는 거다. 어제까지만 해도 ‘정의’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청렴한 검사도 하루아침에 내 이익을 위해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거다. 승자도 패자도 알 수 없었다. ‘반전에 반전’이라고만 하기에 부족할 정도로.

“저는 어렵지 않았어요. 굉장히 심플했거든요. 박정환이 연기하는 게 어려운 게 체력적으로 감기가 걸려 아팠다는 거. 과거에 제가 출연한 드라마들이 보기에는 쉬웠는데 그때가 힘들었어요. 힘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이번엔 괜찮았어요.”

“‘펀치’의 박정환은 래원씨가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전 래원씨가 만든 박정환을 따라간 것에 불과합니다. 정말 훌륭했어요. 래원씨.” 박경수 작가가 김래원에게 보낸 인사였다. 배우가 작가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 아닐까 싶었다.

“글을 봤을 때 이게 뭐지? 비꼬신 건가? 글을 비꼬신 건가? 생각이 들었어요. 박정환을 더 풍부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박정환을 따라갔다 것 같아요. 종방연 때는 작가님이 안 오셨어요. 박경수 작가님 아마 한 달 동안 발을 뻗고 잔 적이 없을 거예요. 종방연 때는 뵙지 못했지만 중간에 좋은 팁도 주셨다. 사실 전화를 안 하려고 했는데 큰 선을 잘 잡아주셨어요. 사자의 왕은 죽는 순간까지 날이 서있다고 하셨어요. 날 세워서 하라고. 고통의 장면을 더 진정성 있게 했어요. 죽어가는 사람인데 쌩쌩하게 보일까봐서요. 그런 포인트가 있을 때는 정말 진짜처럼 하려고 핏대 세우고 얼굴 힘주다 실핏줄도 터지고 그랬어요. 그런데 또 과하면 안되고요. 아픈 척밖에 안돼요. 거짓말 같은 거요.”

   
 

부패의 상징인 이태준 검찰 총장은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한강에서 박정환과 만날 때는 깜찍한 귀마개를 하고 등장해 ‘씬스틸러’가 되기도 했다. 그때 박정환은 “각자 짐 지고가자”며 이태준과 따로 걷기를 선택했다. 조재현의 귀마개에 김래원은 ‘빵’터졌고 호흡은 완벽했다.

“귀마개는 ‘빵’ 터졌어요. 귀마개에는 깊은 사연이 있어요. 매 장면마다 중심을 잡고 가는 인물이 있어요. 두 사람이 대립을 하거나. 박정환이 이태준의 부름에 그 자리에 갔다는 게 억지스러운 것 같았어요. 그 재미를 부드럽게 커버하고 싶었어요. 귀마개를 안했으면 그 상황에 집중해 ‘이태준이 박정환을 왜 불러?’란 생각을 했을 수도 있죠. 조재현 선배와 연기할 때 준비가 없었어요. 밀당하듯 연기했는데 정말 완벽했어요. 제게는 요. 조재현 선배님은 다르실 수도 있고요.”

   
 

‘강남 1970’을 마무리한 김래원은 처음 ‘펀치’를 제안 받았을 때 망설였다. 하지만 이명우 감독의 선택은 김래원이었다.

“회사 관계자 분이 ‘펀치’ 이야기를 하셔서 박경수 작가의 전작을 봤어요. 만나보겠다고 말씀도 드렸고요. 근데 김래원이한다면 너무 무겁다고 하신 분들도 계셨어요. 그래서 저도 긴가민가 했는데 이명우 감독님이 김래원이랑 하고 싶다고…. 어떻게 보면 감독님에게 제일 고마워 해야죠.”

김래원은 남자들에게 남자다움의 ‘아이콘’이다. 2006년 개봉한 영화 ‘해바라기’의 명대사는 아직도 김래원에 대한 기사가 나면 그 아래 댓글에 등장한다. 또 다른 남자들은 ‘내가 10년 동안 울면서 후회하고 다짐했는데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를 줄줄 외운다. 젊은 배우들은 롤모델로 꼽기도 한다.

“남자배우들은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오디션에서 제일 많이 아노는 대사가 오태식 대사예요. 남자애들한테는 ‘해바라기’ 오태식이 영웅인 친구들이 많아요. 남자후배들이 좋아하는 건 썩 안반가워요(웃음). 남자들에게 인기 있는 것은 ‘해바라기’ 때문이죠.”

밝은 캐릭터를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작품에 대한 마음은 늘 열려있다. 차기작은 각이 좀 더 빠진 역할을 할 거다.

“하고 싶은 걸 해야죠. 여론 신경안쓰고 제가 느끼는 대로 하려고요. 잡으려고 한다고 잡히는 것도 아니고. 진정성 있게 간다면 당장 다음 실패하더라도 저는 똑같은 모습으로 연기하는 거니까요. 데뷔는 정말 오래됐어요. 그때 제가 무슨 생각이 있었을까요? 앞으로 이대로, 매 역할마다 주어진 숙제가 다를 텐데 그거 하나 잘하고 싶어요.”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박정환에게 제일 잔인한 사람을 물었다.

“제일 잔인한 사람은 박정환 본인. 쉽게 이야기 하면 윤지숙. 제일 미안한 사람은 엄마.”

사진=SSTV 고대현 기자, SBS ‘펀치’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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