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인터뷰] ‘힐러’ 지창욱 “송지나 작가 믿음에 즐겁고 행복하게 일했다”
[SS 인터뷰] ‘힐러’ 지창욱 “송지나 작가 믿음에 즐겁고 행복하게 일했다”
  • 승인 2015.02.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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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TV 이현지 기자] 다중이는 아닌데 한명도 아니다. KBS 2TV 월화드라마 ‘힐러’(연출 이정섭, 김진우|극본 송지나)에서 지창욱은 힐러, 서정후, 박봉수, 러시아 유학파 등 여러 인물을 연기했다. 서정후는 때론 돈이면 다하는 힐러였고 기자 박봉수였고 버릇없는 러시아 유학파였다. 이 모든 것을 보여준 사람은 서준석 아들 서정후였다.

서정후를 하면서 지창욱은 보여줄 게 많았고, 보여줄 게 많아서 신이 났다. 어려워서 재미있었고 즐기면서 할 수 있었다. 할 게 없다면 힘들었을 거라고.

“머리 아픈 적도 많았고 고민이 많았는데 고민 할 수 있다는 게 배우에게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 서정후, 힐러, 박봉수, 러시아 유학파 각자의 상황에 맞춰서 연기를 했어요. 재미를 위해서 아예 다른 인물로 생각하고 연기를 했어요. 봉수는 어리바리하고 순박한 애예요. 정후는 게으르고 늘어져있고 힐러는 철두철미하면서 시니컬하고 근데 안에 위트가 있는 인물이요. 러시아 유학파는 건들건들하고 풀어져있고 유학생활을 하면서 한국 정서로 이해 안 되는 ‘예의없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고요.”

   
 

송지나 작가가 20년 전, 1995년 집필한 SBS ‘모래시계’. 그 시대 자녀들의 이야기가 ‘힐러’였다. 지난 1992년 “민주야 어딨니”를 찾는 청춘들의 이야기에서 극은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세대들이 남겨 놓은 자녀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이야기다.

“‘힐러’가 기성세대와 신세대와의 소통이라고 생각했어요. 작가님이 서정후는 어른 없이 자란 신세대의 표본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이 말씀이 서정후란 인물 만드는 지표였어요. 정후 입장에서 문호는 기성세대. 서정후와 문호의 관계가 신세대, 기성세대의 관계였죠. 어린아이들은 ‘어른들과 소통이 안돼, 나를 잘 잘 몰라’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정후는 문호를 계속 밀어내고 미묘하게 엇갈려요. 정후는 문호와 술도 마시지 않았어요. 작품에서 친절한 설명은 없지만 후에 둘이 함께 술을 마신다. 정후가 삼촌이란 대사를 하고요. 많은 걸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소통하는 과정을 보여줬어요. 작가님 의도는 다를 수 있고, 저 혼자만의 생각이에요.”

기성세대가 싫은 정후는 극중 잠을 자주 잤다. 박봉수로 회사에 출근을 해서도 잠을 잤고, 어르신과의 만남 후에도 영신(박민영 분)에게 “너, 왜 자꾸 자”란 말을 들었다. 서정후에게 잠은 무관심이었다.

“힐러로 살아온 정후가 남들과 같은 생활에 들어왔을 때 한 번에 적응 했을까요? 이것도 제 생각인데 변하는 과정에서 오는 부작용이었어요. 출근했을 때 내레이션에 ‘계속 잔다. 표범이나 이런 애들처럼 잔다. 먹이를 쫓을 때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정후의 진짜 모습은 집에서 나와요. 게으르고 밥을 먹는 재미를 잘 몰라서 기계적으로 먹고 족발 시켜서 배 채우고…. 단지 거기서 정후가 좋아하는 건 무인도 사진. 정의나 도덕 없이 돈을 버는 거에만 관심을 가지는 아이가 한 여자를 만나서 사람을 이해하고, 우는 방법을 몰랐던 아이가 울게 됐고, 나는 평범한 사람과 달라서 도망생각을 하고. 영신이란 한사람에서 시작된 파장으로 인한 움직임이 재미있었어요.”

   
 

송지나 작가는 배우 지창욱을 믿어줬다. 그리고 서정후를 멋있게 만들어 줬다. ‘힐러’를 통해 송지나 작가를 처음 만난 지창욱은 그 믿음에 행복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극에 녹아든 애드리브 역시 그랬기에 가능했다. 해커 민자(김미경 분) 아줌마를 처음 보고 한 “뭐 저런 옷을 입고 다녀?”란 소감 역시 지창욱의 애드리브였다.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머리,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아줌마와 첫 대면은 ‘해괴망측’이었다.

“대사를 해보면서 이상하거나 현장 분위기가 안 맞는 다거나 상대 배우 호흡과 어긋나는 느낌이 나거나 그러면 바꾸기도 해요. 아무 때나 막 바꾸는 것은 아니고요. 작가님이 대본을 쓰시지만 현장에는 저와 감독님이 있잖아요. 현장 분위기에 녹아들게 하려고 했죠. 항상 여쭤봤어요. 애드리브는 예민한 부분이라 감독님은 조금 부정적으로 생각하셨는데 저도 의견에 공감했어요. 애드리브 대한 위험성, 연출이나 작가의 의도에 벗어났을 경우. 목적이나 목표에 벗어나면 안되니까. 텍스트에 충실해야 하지만 텍스트 안에 갇히기 싫었어요. 거기에 갇히지 않게 노력하고 굉장히 노력하고 계산했어요. 때로는 그 이외의 자극이나 충동 때문에 새로운 반응이 오기도 하거든요.”

캐릭터에 정확한 이해도 필요했다. 지창욱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애드리브가 있다면 그건 상황에 안 맞잖아요. 그 캐릭터를 정말 많이 이해하고 있고 정후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정후의 말로 나오지 않을까? 초반에 공을 많이 들인 게 캐릭터. 진짜 잘 만들려고 확실하게 하려고 했어요. 뿌리가 튼튼해야 끝까지 굳게 자랄 수 있어요. 그게 캐릭터예요.”라고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1년, 52주, 365일 방영될 드라마는 정해져 있다. 그런 드라마에 꾸준히 얼굴을 비출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거다. 그래서 지창욱은 할 수 있는 것들은 해보고 싶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지금 고등학생 하면 자신도 없고 민망할거예요. 다른 배우들은 20대 초반일 텐데 30살 먹은 형이 와서 친구하는 거잖아요(웃음). 그래서 지금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역할을, 최대한 많이 하고 싶어요. 욕심이라기보다 재미있는 것을 보면 해야 돼요. 호기심일 수도 있고요. 스케줄에 지쳤다가도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안 힘들어요. 힘든 것을 잊을 만큼 하고 싶은 거죠.”

   
 

호기심에, 재밌어서, 작품을 채워 온 지창욱은 내년이면 벌써 서른이다. 지금 이십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 지창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에 대한 특별한 의미가 없어요. 내년이면 서른이야, 이런 생각도 안 들어요. 매년이 똑같아요. 서른이 되면 나는 정말 고민이 없어졌을까? 생각할 수도 있죠. 근데 결국 고민은 안 없어지거든요. 새로운 고민은 계속 생기고. 예를 들어 연기 잘하는 선배들은 연기에 대한 고민 안하겠지? 생각을 했어요. 조진웅 선배한테 고민을 털어놨는데 똑같은 고민을 아직도 하고 계셨어요. ‘10년, 20년이 지났는데 나도 그게 고민이야’ 하시더라고요. 내년이면 서른이지만 마흔이 돼도 계속 될 고민이겠죠?”

인터뷰의 마지막, 2월 17일 오후 4시 지창욱에게 서정후는 지금 뭘 하고 있을 것 같냐고 물었다.

“정후는 지금 자고 있을 거예요. 정후는 치킨이랑, 자는 거…. 지금 오후 4시인데 아무 때 나 잘 것 같다. 그런 게 제일 많이 떠올라요.”

사진=SSTV 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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